[향토문화] 전형적인 도시 하천.. 건입동(일도1동) 산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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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전형적인 도시 하천.. 건입동(일도1동) 산지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1.27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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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짓물(山地泉), 금산물, 지장깍물 등 용천수들은 제주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었다

건입동(일도1동) 산지천

 

위치 ; 제주시 일도동과 건입동 사이
유형 ; 하천

건입동_산지천건물(1960년대)
산지천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관음사 남쪽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제주시의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차례로 흘러 하구(河口)인 건입동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이 산지천은 과거에 큰 비만 내리면 하류 구간이 곧잘 범람하여 부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초래했던 하천이다.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誌)』 등 여러 고문헌에는 산지천의 이름이 ‘산저천(山低川)’으로 등장하는 것이 많은데 이 이름은 산지천 하류(건입동)에 금산(禁山)이라는 낮은 산이 있고, 이 금산 아래를 흐르는 ‘내(川)’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총 유로연장이 13.2㎞, 유역면적이 12.2㎢이며, 하천차수(河川次數)는 3차수를 보인다. 오늘날의 지형도에는 해발 520~720m 지점까지가 하천 발달이 미약하고 강우 시에만 형성되는 소류(小流)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하천의 발원지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산지천의 유역은 서쪽으로는 소룡천(小龍川) 유역과 동쪽으로는 화북천(禾北川) 유역과 접하고 있다.


산지천은 도시지역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서 유로 연장이 유로폭(流路幅)에 비해 가늘고 길게 나타난다. 따라서 중·상류는 하상(河床) 경사가 급한 산지계곡의 특성을 보이나, 하류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전형적인 도시 하천의 특성을 보인다.

산지천 유역의 표고별 변화량은 아주 큰 편이고 하상은 암반과 큰 자갈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기(乾期)에는 유량이 전혀 없는 건천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지천은 하류 구간에서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나는 하천으로도 유명하다. 산지천의 하류 구간과 그 주변에서 용출하는 용천수, 즉 산짓물(山地泉), 금산물, 지장깍물 등의 용천수들은 제주시에 상수도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이전인 1960년대 초까지도 많은 제주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었다.


산지천은 과거에 산짓내(山地川), 산젓내(山低川) 또는 가락천(嘉樂川)이라고도 불려 왔으며, 제주의 역사를 기록한 여러 고문헌에도 많이 등장하는 하천 중 하나이다. 예로부터 특히, 산지천 하구는 ‘산포조어(山浦釣魚)’라 하여, 낚시를 즐기는 것 자체가 영주10경에 속할 정도로 운치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였다.


산지천의 하류 구간은 조선 시대 때 제주목의 읍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산지천의 하류 구간은 최초의 읍성 축성 과정에서는 성 밖에 두었으나 전쟁 수행 시 식수 조달이 어렵다고 하여, 1565년에는 곽흘 목사가 성을 산지천 밖으로 확장축성한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

1599년 성윤문 목사는 산지천의 물을 이용하기 위해 남수구와 북수구 2개의 수구(水口)를 축조했다. 그런데 산지천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 수재(水災)가 발생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산지천변 서쪽에 밀집한 민가에서 침수 피해가 컸다.

1780년 김영수 목사는 산지천 서쪽과 민가의 경계에 제방용 성곽인 간성(間城)을 쌓았다. 일제시대인 1927년 8월 7~8일 이틀간에 걸친 대홍수는 산지천의 물길조차 바꿔 버렸다. 곡선으로 약 200m를 동쪽으로 회류하던 물줄기를 거의 직선인 정북 방향으로 뚫어버렸다.

당시 남·북수구와 무지개다리인 홍예문도 허물어져 버렸다. 역사를 한층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산지천은 탐라역사의 발상지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산지천 하구는 영주십경의 하나인 산포조어(山浦釣漁)의 무대였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지고 오리 떼가 헤엄치는 포구에서의 고기잡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산지천은 병문천(屛門川) 및 한천과 더불어 제주시의 3대 하천이라 할 수 있으며 하류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구간이다. 현재 산지천의 하류에는 뱀장어, 은어, 숭어, 학공치, 밀어 등의 어류가 서식하며, 또한 해오라기, 쇠백로, 흑로, 왜가리, 청둥오리, 괭이갈매기 등 많은 종류의 새들이 찾고 있다.


산지천 주변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였기 때문에, 하천 주변에 많은 유적지를 비롯한 관광 명소들이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상류부에는 관음사를 비롯하여 탐라목석원(이설), 산천단,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신산공원, 삼성혈, 제주성지 등이 있다.


제주와 육지부를 잇는 산지항과 인접해 있는 특성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많은 주거시설이 산지천 주변으로 몰려들며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이에 행정당국은 산지천 정화와 개발의 상징으로 산지천의 하류 구간인 일도1동 동문교에서 건입동 용진교 구간(길이 474m, 너비 21~36m)은 1966년 10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약 30여 년 간 복개되어 주상 복합지구로 이용돼 왔다.


그러나 복개로 인한 하천 생태계가 파괴되고 각종 오물투기와 폐수유입으로 도시오염지대로 전락하고 심지어 1990년대초에는 건물마저 붕괴위험이 나타나 시민들의 뜻에 따라 결국 1995년 철거를 시작하여 1997년 건물 소유주와 세입자의 시청 점거 농성과 시위 등 진통 속에서 보상 합의가 이뤄져 1996년 3월부터 2002년 6월까지(복원공사는 2000년 6월부터 2002년 6월까지) 약 6년 동안 총 사업비 365억 원을 들여 복원 정비함으로써 생태 하천으로 거듭났다.

하천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길이는 500~600m에 이르고 아치형 다리가 하천의 중간중간에 놓여 있다. 하천의 끝은 바로 앞에 있는 부두 근처 바다로 바로 연결된다. 오늘날에는 제주시민들의 친수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길이 600m, 폭 20m의 하천에 맑은 물이 흐르면서 은어·숭어와 백로가 돌아왔다.


2013년에는 원도심 활성화와 생태 복원을 위해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착수됐다. 탐라문화광장은 산지천 주변 4만5845㎡에 3개의 광장과 공원, 산지로 보행환경 개선, 도심 생태하천 조성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도1동의 기업은행에서부터 과거 남수각(南水閣)이 있었던 현 시영(市營) 주차장까지는 아직도 복개된 상태로 이용되고 있다.
《작성 130604, 보완 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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