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탐방) "제주의 오헨로를 만들자"..인연 따라 걷는 불교순례길, 처음 걸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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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탐방) "제주의 오헨로를 만들자"..인연 따라 걷는 불교순례길, 처음 걸어보니..
  • 고현준
  • 승인 2022.03.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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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정사-극락사-혜능사-우리절까지..제대로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불교 순례자의 길

 

 

일본 시코쿠에는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길이가 1200km-1400km에 달하는 쿠카이 스님이 만든 오헨로라는 순례자의 길이 있다.

이 길을 다 걸으려면 40-45일이 걸린다고 한다,

사찰에 들릴 때마다 납경이라는 것을 받는데 88개를 다 받으면 공덕을 쌓는 것이라서 죽을 때 함께 하면 극락왕생 한다는 길이기도 하다.

쿠카이 스님은 921년에 일본 조정이 쿠카이에게 코보(弘法, 홍법) 대사란 시호를 내려, 지금 일본인들은 흔히 쿠카이를 '코보다이시(홍법대사)'라고 부른다.

일본은 불교국가라 불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절에는 납골당이 있어 일본인의 생활에서도 결코 멀어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11월 제주올레 걷기를 시작한 후 지난 2월, 장장 6년 동안의 4번째 완주를 마치고 이제 다른 길을 찾아 걷고 싶었다.

제주에는 올레길 만이 아니라 한라산둘레길은 물론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 관련 순례길이 있다. 기회가 되면 둘레길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분들과 함께 한라산둘레길을 걸어볼 예정이지만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우선 불교 순례길인 절로 가는 길을 먼저 걸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올레를 함께 걸었던 고광언 선생이 불교인이라 불교와 절에 관한 많은 지식이 있어 다시 함께 길을 걷게 됐다.

관음사 외에는 절에 별로 가 본 적이 없고 불교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라 궁금한 일이 많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접하기 힘든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여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불교 순례길은 물론 앞으로 다른 종교 관련 순례길도 차례대로 탐방할 계획이다.(편집자주)

 

 

 

 

“부처는 깨달은 중생, 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

불교에 대한 얘기 중에 강삼 선배가 생전에 불교 관련 신문에 잠시 있을 때 한 스님에게 들었다며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 당시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불교는 신비한 종교다.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을 찾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종교인들의 수행은 그런 길을 찾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20여년전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있는 달라이라마궁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했던 적이 있어 불교와 깊은 연이 닿아있기는 하다.

달라이라마는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가 50세일 때 달라이라마는 76세였다.

불교는 전생과 현생, 후생 등 인연을 중시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연 따라 가는 불교순례길은 또 어떤 새로운 만남이 생길까 하는 기대감도 크다.

불교 순례길은 ‘절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을 정하고 있다.

제주도에 있는 절을 하나하나 순례하듯 걷는 길이다.

 

 

사실 처음 걷기를 생각했을 때는 일본 시코쿠의 순례자의 길처럼 절마다 도착하면 스님을 만나 얘기도 하고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해주는 그런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절에 가면 당연히 주지스님이 계실 것이고 그러면 함께 한담이라도 나누면서 혹시 인생에 도움되는 말씀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같은 거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아니 함만 못했다.

지난 3월12일 불교 순례길을 처음 걷기를 시작한 날..

애월읍 항파두리 토성 앞에 자리한 극락사에서 처음 만난 절에서는 절을 찾은 사람도 없었고 스님도 만날 수 없었고 더욱이 절로 가는 길에 대한 지도조차 비치돼 있지 않았다.

 

 

 

 

슬슬 실망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곳을 나와 수산리에 있는 대원정사로 가는 길은 올레 16코스와 함께 절길이 이어져 있어 또한 아쉬웠다.

절로 가는 길은 올레길과 같은 코스로 이어지는 길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미 만들어진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리본은 달려 있었지만 이 절로 가는 길 리본도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해 주진 못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수산봉을 향해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리본은 앞으로 향해 가는 곳을 향해 늘 보이도록 달려있어야 한다.

하지만 절을 안내하는 리본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대원정사에 도착했을 때 절 입구에는 주렁주렁 열린 감귤이 우리를 반겼다.

둑길을 따라 걸어서인지 한라산을 보고 정면으로 선 대원정사는 참으로 웅장해 보였다.

이 절에는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고광언 선생은 “아마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다”고 했다.

첫날 두 개의 절을 찾았지만 스님은 한분도 만나 보지 못했다.

두 번째 걸었던 지난 19일도 극락사에서 출발했다.

극락사에서 나와 토성을 향해 올라갈 때는 리본이 보이더니 아무리 올라가도 그 다음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올레길을 따라 예전에 봤던 절을 향해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그곳 절에 도착해 절 앞에 놓인 지도를 보니 중간에 3개의 절이 있었지만 다 지나쳐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내 리본을 찾지 못해 다른 길로 올라와 버린 것이다.

결국은 두 번 째 걸을 때는 중간 중간 몇 개의 절은 찾아보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수 밖에 없었다.

향림사는 아주 조그만 절이었다. 사람은 없고..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나와 버렸다.

 

 

 

제주도가 지원하는 순례길이라지만 아직 절로 가는 길은 갈 길이 참 멀어 보였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다음 절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었다.

리본은 앞으로 가는 길, 가야할 방향에 붙여놓아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큰 길가에 나오니 길 양쪽에 리본이 붙어 있어 어느 쪽으로 가라는 것인지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냥 감으로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혜능사..

이곳 절에서 처음으로 주지스님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혜능사 도반스님

 

혜능사 주지 도반스님은 토굴에서 10년 정진을 하다가 현몽을 해서 “자신이 전 전생에 혜능스님과 연이 닿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혜능사로 이름을 붙였다”는 절 이름에 대한 동기를 설명해 주셨다.

마침 고광언 선생과 아는 사람이 함께 이 절을 만들었다고 해서 작은 인연이 생겼다.

절을 몇 번 다녔지만 어떤 스님도 만날 수 없었는데,,

이날 처음 만난 스님이라 너무 반가웠다.

혜능사의 특이한 점은 보통 절에 있는 삼신각이 아니라 4신각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도반 스님은 “보통은 3신각을 절에 모시는데 우리 절에는 용왕님을 함께 모시는 사신각을 만들었다”며 “아마 전국에서 유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은 우리에게 “차 한잔 대접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셨지만 “우리는 다음 절을 향해가야 한다”며 밖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 나타난 절은 우리절이었다.

우리절은 비구니스님들이 계시는 곳이라고 한다.

절 입구에는 장미꽃이 돌틈에 피어 우리를 반겼다.

불쑥 아무나 마음놓고 들어갈 수 있는 우리나라 절..

절은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늘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다,

절로 들어서서 보니 큰 공터 옆에 유리온실이 있었다.

보리수나무가 심어진 이곳에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서 있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입니다.

명상수행으로 삼업이 청정하여져서 부처님 닮아가는 수행처로 삼으시기를 발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명상수행중인 불자님이 계시면 조용히 들어가셔서 묵언으로 함께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절은 우리가 걷는 이 날의 종점코스라 그곳에서 잠시 쉬며 스님을 기다렸다.

진명스님이 나오시더니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보고 매우 반가워 하셨다.

사진은 다음에 찍겠다고 극구 사양하셔서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

절 이름은 물론 절 기둥에 새긴 글조차 모두 한글로 되어 있는 점이 궁금했다.

연유를 물으니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 절이라 모두 한글로 쓰여졌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포근한 느낌이 드는 아늑한 절이었다.

 

 

 

우리는 나그네처럼 절을 찾아 길을 걷는 것이지만..

절을 찾는 마음은 세상의 평화와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찾는 길일 것이다.

내면의 문제를 풀지 못할 때 절을 찾기도 하고, 세상보다 종교에 많이 의지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절로 가는 길을 순례하는 동안 누군가 자원봉사자라도 모여서 불교 순례길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낀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아니지만, 앞으로 올레길을 다 걷고 나면 다른 길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질텐데..

이런 특별한 길은 더욱 특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쓴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자연농법으로 유명하다.

그가 운영하는 농장에 한 젊은 여자가 방문했다.

그가 물었다.

“그대 같은 젊은이가 왜 이런 곳에 오게 됐는가?”

“살다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게 됐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가 또 말한다,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것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아주 당연한 일이지..잘 왔네”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궁금하고 궁금할 때 종교를 찾지만 종교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면 머리가 멍해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순례길은 그런 깨달음을 얻는 작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제주불교 순례길은 334.3km 정도를 걷는 길이지만, 불교계가 나서서 제주도의 모든 절을 잇는 제주도의 오헨로길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불교인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도반스님과 함께 한 고광언 선생

 

 

 

 

참고로 시코쿠 88개 절을 걷는 오헨로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다.

 

시코쿠 88개 절을 걷는 오헨로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쿠카이(空海, 774-835) 대사와 관련된 사찰 88군데를 가리키는 총칭이다.

이 순례길은 쿠카이 대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시코쿠의 해안가를 따라 1200-1400 km 정도를 도보나 자전거, 버스, 택시 등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순례길의 역사

예로부터 시코쿠는 나라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지는 곳이었기에 여러 수행자들이 모였다.

쿠카이 대사는 774년 사누키, 즉 오늘날 시코쿠의 카가와현에 있는 젠츠지(75번 절) 자리에서 태어나 일본 내의 온갖 학문을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쿠카이는 어느 시점에서 불교에 입문하여 시코쿠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던 중, 804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자 견당사와 함께 배에 올라탔다.

805년에 당나라 장안의 청룡사(靑龍寺)에서 밀교의 고승 혜과(惠果)를 만나 반 년 정도 밀교의 가르침을 전수받고 관정을 받았다.

그해 말에 혜과 대사가 열반에 들자 이듬해(806) 쿠카이는 일본으로 귀국하여 진언종을 창시하고 835년에 입적했다.

쿠카이는 승려가 된 뒤 사용한 법명이고, 921년에 일본 조정은 쿠카이에게 코보(弘法, 홍법) 대사란 시호를 내려, 지금도 일본인들은 흔히 쿠카이를 '코보다이시(홍법대사)'라고 부른다.

시코쿠에서 쿠카이와 관련된 사찰 88곳을 도는 행위를 오헨로(お遍路)라 부른다. 그렇다면 헨로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종교학자 호시노 에이키(星野英紀)가 4가지 설을 정리했다.

•815년, 쿠카이 대사가 42세 때 자신이 88개 영장을 하나하나 수행하면서 개창했다.

•쿠카이 대사가 죽은 후 제자 신제(真済, 800~860)가 스승의 유적을 돌아다닌 데서 시작했다.

•에히메현 마츠야마시의 호족 에몬 사부로(衛門三郞)가 쿠카이 대사를 박대한 죄를 깨닫고 대사에게 사죄하고자 헨로를 떠난 데에서 비롯했다.

•사가 천왕의 아들로 쿠카이 대사의 제자가 된 신뇨(真如) 스님에게서 유래했다.

당연히 신앙상으로는 쿠카이 대사가 개창했다는 설이 중시되지만, 정확히 누가 시작했는지는 불명확하다.

헤이안 시대(794~1185/92) 후기에 원형이 완성되어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 정착했고, 에도시대 17세기 말 겐로쿠(元禄) 년간에 전후에 민중에게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이 오헨로에 나섰다.

예전에는 헨로가 수도자들이 중심이었고 때로는 헨로 중 죽음까지 각오해야 했지만, 지금은 쿠카이 대사를 존숭하는 많은 일반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찾아온다. 현대에는 종교와 관련없이 여행을 목적으로 길을 걷는 사람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에는 납경(納経)이란 절차가 있다. 신사나 사찰에 참배하면 해당 시설에서 '이 사람은 언제 우리 사찰/신사에 참배했습니다.' 하는 의미로 써 주는 일종의 확인서인데, 이 또한 부처나 신령의 영험이 있다 하여 일본인들은 소중하게 간직한다.

주인(朱印, 슈인)이라고도 하고 납경(納経, 노쿄)이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주인'이란 말이 더 자주 쓰이지만, 시코쿠 순례에서는 거의 모두 '납경'이라고 한다. 물론 아무나 다 해주지는 않고 따로 소정의 이용료를 내면서 신청해야만 한다.

원래 일본의 사찰에서 '납경'은 문자 그대로 '불경을 헌납하는' 절차였다. 참배자 자신이 필사한 불경을 사찰 본존불 앞에 올리는 것이다.

지금도 과거처럼 이렇게 손수 필사한 불경을 올리는 사람들이 흔하지야 않지만 있다. 이렇게 불경을 사찰의 본존불 앞에 올리면 절에서 확인증을 써주었는데, 이것이 돈을 내고 확인증을 받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납경을 신청하면 모년 모월 모일 모 시설을 참배했다고 붓글씨로 직접 쓰고 도장을 찍어준다. 더러는 해당 사찰에서 모시는 본존불을 상징하는 종자자(種子字)를 범자(梵字)로 적어주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주인/납경을 받는 전통 책자를 따로 파는데, 특정한 신사/사찰에 다녀왔다는 기념품 역할도 한다.

물론 시코쿠 88개소 사찰들도 납경을 해주고, 순례용품 판매점에서도 88개 영장 순례 전용 납경장(納経帳)을 판다.

납경을 순례용으로 입는 하얀 옷에 받기도 하는데, 죽을 때 이 옷을 수의로 입으면 저승길을 쿠카이 대사가 인도해준다고 한다.

(발췌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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