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큰 돔베(도마)를 젯상(祭床)으로 정성 ..어음2리 돔베물(봉천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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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큰 돔베(도마)를 젯상(祭床)으로 정성 ..어음2리 돔베물(봉천수연못)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4.19 0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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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이 지난 후 당시 제사를 지냈던 돔베가 물 위에 떠오르자 신통히 여겨 돔베물로 불러

어음2리 돔베물(봉천수연못)

 

위치 ; 애월읍 어음2리 2937번지
유형 ; 수리시설(연못)
시대 ; 조선시대

어음2리_돔베물下
어음2리_돔베물

 

어음2리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연못이다. 위쪽 100여 평의 물은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식수용으로 이용하였으며, 아래쪽 200여 평 되는 연못은 가축급수용으로 이용하였다.


1700년 경 고응삼(高應三)이라는 풍수사를 마을에 초청해 물이 잘 고이고 생수가 나올 만한 곳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여 답사하던 중 그는 이 일대를 지목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이곳을 파내었다. 사람 키의 3배 정도를 파낸 공사 마지막 날에는 돔베(도마)를 크게 만들어 젯상(祭床)으로 삼고 그 위에 제물을 잔뜩 올리고 정성으로 제를 지냈다.

그러자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돔베젯상도 철거하지 못하고 집으로 철수하였다. 이튿날 이곳에 와 보니 연못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물 위에 떠올라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돔베와 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 물 밑에서 소량이지만 생수가 계속 솟아 아무리 가물어도 언제나 연못에는 물이 가득 차서 주민들이 물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당시 제사를 지냈던 돔베가 물 위에 떠오르자 사람들은 이를 신통히 여겨 이 연못을 돔베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응삼은 목자(牧者) 출신이지만 풍수에 밝아 신안으로 통하였으며 어음1리의 공새미라는 물도 발견한 사람이라고 한다.


전에는 연못 둘레에 풀과 나무가 우거지고 가운데에는 물풀과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나, 2012년에 아래 연못 둘레를 자연석으로 말끔히 단장하였다.
《작성 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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