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조성 추정..상귀리 월영사 목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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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조성 추정..상귀리 월영사 목조여래좌상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6.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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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 이해하는 데 학술적 가치 및 문화재적 가치 높은 작품

상귀리 월영사 목조여래좌상

 

月瀛寺 木彫如來坐像
제주도 문화재자료 제6호(2004년 9월 9일 지정)
위치 ; 애월읍 상귀리 329번지[하귀동남2길 40-16]
유형 ; 불상
시대 ; 조선 후기(17~18세기)
소유자 ; 정우 스님

상귀리_월영사목조여래좌상

 

상귀리 월영사 소장 목조여래좌상은 1950년경 정용하가 남선사를 창건하면서 백양사에서 모셔와 봉안한 것이다. 이후 남선사가 폐사되면서 월령사의 전 주지인 설우가 월령사를 창건하면서 모셔왔다.


크기는 전체 높이 51㎝, 어깨 너비 22.5㎝, 상호 높이 18㎝이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다. 눈은 반개하여 정면을 응시하고 상호(相好)는 원만하다. 양쪽 눈과 코, 입 등이 정제되었다.

양쪽 귀는 긴 편은 아니나 목에 돌린 삼도(三道)와 잘 어울려서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에는 목에는 三道가 표현되지 않았으며 백호가 형식적으로 나타나 있고 귓불이 길게 늘어져 있다고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도 삼도가 표현되지 않은 것 같고 귀도 턱 아래쪽까지 내려왔으니 길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불상의 귀가 턱보다 더 내려온 것이 많으므로 이 불상의 귀는 긴 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하여 왼쪽 무릎으로 길게 흘렀으며, 오른쪽 가슴 밑으로 유려한 의문(衣紋)이 흐르고 있다. 왼쪽에 걸친 법의와 제하(臍下)로 늘어진 법의는 양쪽 무릎을 덮었으며 법의의 앞자락도 양 무릎 사이 앞으로 흘러내렸다.


무릎은 오른발이 올라가는 길상좌(吉相坐)이며 결가부좌한 양쪽 무릎 위에는 양쪽 발바닥이 노출되어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왼쪽 무릎 위에 높아 상장(上掌)하고 중지와 모지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놓았다.

하면(下面)은 널찍한 목판으로 막음하였다. 최근에 개금불사할 때 복장물이 도난당한 것을 확인하였다. 복장물이 유실되어 정확한 연대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불상의 양식으로 볼 때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호의 표현과 균등한 동체의 작풍(作風), 의문(衣紋)과 수인(手印) 등이 아름다운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 가치 및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작성 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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