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임진왜란 직후 17세기 불상 대표, 소중한 작품..도남동 보덕사목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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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임진왜란 직후 17세기 불상 대표, 소중한 작품..도남동 보덕사목조여래좌상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6.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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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주 불교 중흥기에 선봉 스님이 각 사찰에 모시고 다니면서 그곳 불사에 힘 실어준 일화로 더 유명

도남동 보덕사목조여래좌상

 

위치 ; 제주시 도남동 80-2번지 보덕사에 있다.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불교유물(불상)

도남동_보덕사대웅전(디제문)

 

도남동_보덕사목조여래좌상(디제문)

 

 제주시 도남동에 있는 보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말사이다. 1943년 초가에 18평의 법당을 지음으로써 창건되었다.(제주불교문화대학 카페에는 보덕사가 1941년 속칭 독짓골 구남천 인근에 창설되었으며 지형이 쌍혈로 내려오다 합해지는 곳이어서 수덕이 좋고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고 한다.) 창건주는 선봉이다.(제주불교문화대학 카페에는 창건주가 안봉려관 스님의 맏상좌인 이화선 스님과 이화선 스님의 상좌인 고선봉 스님이라고 되어 있다.)

당시 사찰명은 남순사였다. 1958년에 선봉과 상좌인 법연, 법현, 그리고 손상좌인 혜전을 비롯한 신도들의 합심으로 증축 불사에 들어가 법당을 새로 짓고 요사를 건립했다.


1967년 2월에는 현재와 같은 28평 규모의 법당과 일·이층 60평 규모의 선방과 종각을 건립하였다. 1975년 이후 10여 년 동안 삼존불 개금불사와 함께 요사를 증·개축하였고, 단청 및 기와 불사를 마무리했다. 1992년 10월에는 27척의 지장보살 석상을 안치하였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보덕사에는 창건 당시 안봉려관이 대흥사에서 모셔온 17세기 목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은 근대 제주 불교 중흥기에 선봉 스님이 각 사찰에 모시고 다니면서 그곳 불사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일화로 더 유명하다.

2004년 9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66cm, 머리 높이 24cm, 무릎 너비 39.5cm, 무릎 높이 9.5cm이고, 어깨 너비는 28.5cm로 비교적 큰 불상이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불상의 얼굴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는 나발이 빽빽하게 표현되었고, 머리 위에 볼록 솟은 육계가 유난히 높고 큰 편이다. 이마에는 최근에 개금불사하면서 보완한 수정으로 만든 백호가 있다. 양쪽 귀는 그다지 긴 편은 아니다.

법의는 양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 형태로 두툼하며, 군의는 띠매듭 없이 일자형을 이루고 있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웠으며 손에는 아무런 지물이 없다. 이 불상이 조성된 시기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조선후기인 17세기나 18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불상 바닥에 북장공(腹藏空)이 있으나 최근의 개금불사 때 복장물을 도난당한 것이 확인되었다. 복장물(腹藏物)을 도난당하여 조성시기를 알 수 없지만(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최근에 선방의 대대적인 내부 정리를 진행하며 목조여래좌상도 신축한 대웅전 내에 주불로 봉안하기 위해 개금불사를 계획, 복장(服藏) 내부를 깨끗이 하던 중 복장의물(服藏儀物) 중에서 5매(枚)의 관계 자료가 발견조사되었다.

5매(枚)의 복장기(服藏記)는 모두 한지에 묵기(墨記)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광무오년십월초구일점안기(光武五年十月初九日點眼記)(크기 22cm× 57cm)
㉡ 전라도나주목지금성산다보사조기(全羅道羅州牧地錦城山多寶寺造記) (크기 32cm× 149cm)
㉢ 도분불사독축원문기(塗粉佛事獨祝願文記)(크기 21cm× 13.5cm)
㉣ 시주질기(施主秩記)(크기 18cm× 24cm)
㉤ 불기이천오백이십구년을축삼월삼일제주도한라산보덕사불상개금...기(佛紀二千五百二十九年乙丑三月三日濟州道漢羅山普德寺佛像改金...記) (크기 43cm× 45.5cm)


첫 번째에서는 '나주다보사', '개금중수대웅전삼존주불'이라 되어 있어 본래는 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보사 불상으로 봉안하였으며 광무오년십월(光武午年十月, 1901)에 개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복장기에서는 다보사의 불상으로 조성하였으며 이때에 아미타불을 조성 봉안한 내용이다.
세 번째 복장기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등상(等像) 존전(尊前)이라 하였으므로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이 분명하며 이때의 정묘년(丁卯年)은 1927년이다.


네 번째 복장기에서는 말미에 「장원지원아미타불존상(長願之願阿彌陀佛尊像)」이라 하였고 이때의 경자년(庚子年)은 1960년이며 '보덕사봉안개금불사'라 하였으므로 보덕사에 이안 봉안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 복장기에서의 불기이천오백이십구년을축(佛紀二千五百二十九年乙丑)은 1985년이며 이때에 보덕사 선방의 아미타여래좌상을 개금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귀중한 목조 불상이나 언제 이 목불이 제주에 모셔졌는지 정확한 연대는 확언할 수 없으나 한말에 봉려관 스님이 제주의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전라도 지방을 왕래하며 여러 불상을 모셔올 때 이곳 보덕사의 목불도 함께 봉안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불상에서 복장기 5매가 발견 조사되어 일찍이 나주 다보사에서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조성 봉안하였고 100여 년 전에 개금 불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인 17세기 불상을 대표하는 소중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 불상의 형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학술적 가치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제주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작성 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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