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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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7.3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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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이해하는 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한다!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27일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편집자주)

 

 

아리랑 연구의 최신 동향

On the new and recent research of Arirang

조용호(趙容晧)

 

Ⅰ. 서 론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아리랑 연구는 어떤 것일까?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새롭게 연구된 내용을 모르면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될까?

아리랑이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이지만,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의 뜻을 비롯하여, 언제 어떠한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기록과 자료를 고찰해 보면, 아리랑이 처음부터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근대의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 와다텐민(和田天民),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 등은 매우 특별한 노래로서의 아리랑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내국인에 의한 연구로는 최영년,, 최남선, 이광수, 김소운 등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민요 연구로서의 아리랑이 학술적 논의의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연구는 김지연의 ‘아리랑 발생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김재철, 김태준 등의 언급과 인용을 거치면서 아리랑 연구의 중심설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1945년의 해방과 1950년의 6.25 동란 등 민족적 변혁기를 거치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신문 방송 등 매스컴에서 언급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접 학문과의 교섭이라는 측면에서 이병도, 양주동, 심재덕, 등에 의해 학술적 논의가 재개되었으며, 이후에 임동권(任東權), 정익섭 등 다양한 주장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뜻조차도 밝히지 못함으로써 아리랑은 뜻 없는 후렴구의 노래이고, 최초의 발생 시기는 근대이며,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생각으로 고착되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기록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황현, 임동권, 어영(於英)설, 고권삼, 님 웨일즈, 등의 기록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학술적 범주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거나 배제된 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중 2002년,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기록인 『매천야록』에 나오는 아리랑의 뜻이 여자라는 내용을 대입하여 아리랑 노랫말이 신성염곡인 것을 밝히고,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말선초의 암호문인 것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2014년, 『호박 목걸이 (CHAIN OF AMBER)』라는 책이 번역 출판됨으로써 확인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영문으로 간행된 후 국문으로 번역된 것인데, 아리랑을 패스워드(password) 암호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뱃노래를 연상시킨다고 하였다. 1918년에 이미 강원도 금강산 깊은 곳에서도 불리고 있었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될수록 『아리랑 원형연구』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선행 기록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본고는 최근 20여 년간 아리랑의 원형을 재구하는 과정에서 정립한 학문적 성과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제어 : 아리랑 정의, 기록 비평, 본조아리랑, 신아리랑, 메리 린리

 

Ⅱ. 아리랑의 개념 정의

아리랑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중요 개념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립과 이해의 문제이다. 다양한 아리랑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발생시기 등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1 아리랑

아리랑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한 한국의 노래이다. 애조를 띤 아름다움 속에 우리 민족의 깊은 정서를 표현하고 있어서 한국 노래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는데, 영문으로는 아리랑(A ri rang), 중국어로는 아리랑(阿里郞 A li lang), 일본어로는 아리랑(アリラン A ri ran)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노래를 아리랑이라고 하지만, 한 곡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종류는 비교적 다양하다. 노래 곡명으로서의 아리랑 외에 여러가지 있다.

가창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해주 아리랑 등 전국적으로 다양하다. 중국 일본 미국 카자흐스탄 등 해외에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또한 곡조가 오래된 것은 구아리랑, 구조 아리랑 또는 긴아리랑이라 한다.

출현 시기를 기점으로 하면, 이전부터 불리어 온 것을 전통(傳統) 아리랑, 1920년대 이후에 새롭게 변형된 신민요(新民謠) 아리랑, 현대적인 모습의 대중가요(大衆歌謠) 아리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리랑의 종류는 다양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세계적으로 불리는 자랑스러운 노래, 한국은 아리랑의 나라이다. 다양한 아리랑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를 아리랑의 나라라는 개념으로도 정립하였다.

 

2.2 전통아리랑

전통아리랑이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요로서의 아리랑을 뜻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지만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이전에 발생하여 지속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오래된 노래라는 측면에서 구아리랑, 구조아리랑, 긴아리랑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향토민요적 성격이 있다는 측면에서 정선 일대의 아라리 타령(1912년) 등과 같은 지역 아리랑을 뜻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이라는 측면에서 아리랑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기록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896년 헐버트(H. B. Hulbert)가 「조선의 성악」, 『조선노래모음집(The Korea Repository)』에서 채보한 것이다.

아리랑은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서 주식인 쌀밥에 해당하며, 뱃노래의 전통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동일한 내용의 노래가 1929년 『조선민요집』에서 경기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나타난다.

아리랑의 연원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조선정치사』(1930년), 『아리랑 노래』(님 웨일즈, 1941년), 『정선 아리랑』(1977) 등에서는 발생 시기를 여말선초로 기록하고 있다. 『매천야록』(1894년)에 나타나는 신성염곡(新聲艶曲)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아리랑은 전래되는 과정 속에서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920년대에는 일부 노래에 변형이 일어나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1930년대에는 기존에 없던 신아리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곡명이 출현하기도 한다.

또한 신민요 아리랑에 대한 유행이 약해지면서 현대적인 대중가요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기도 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전통아리랑으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헐버트(H. B. Hulbert)가 채보한 아리랑(1896년), 앨리스 플레처가 녹음한 아리랑(1896년), 영월군에서 채집된 아리랑 타령 등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1912년)에 나오는 전국의 아리랑, 경셩 아르렁 타령(1913년), 독일에서 한국인이 부른 아리랑(1916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채집한 아리랑(1918년) 등과 같이 1920년대 이전에 만들어져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아리랑이다.

다른 형태로는 토속 민요적 성격의 향토아리랑이 있다. 이전의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각 지역에 따라 자생적으로 전승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부는 신민요 아리랑에 편입된 경우도 있고, 대중가요로 바뀌기도 한다.

전통아리랑은 1920년대에 이르러 곡조와 가사에 변형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아 원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게 된다. 전통아리랑은 역사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문화적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2.3 신아리랑

신아리랑이란 전통 아리랑이 신민요 형태로 변형되어 불린 아리랑의 한 종류를 말한다. 한국 민요사에는 1920 ∼1930 년대에 걸쳐 독특한 형태의 노래가 유행하였다.

기존에 불리던 전통적인 민요와 다르다는 측면에서 새롭다고 하여 신민요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대중에게 친숙한 전통 민요를 시대적 상황에 맞게 응용한 새로운 민요풍의 유행가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리랑에도 일어나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930년에 신아리랑이라는 곡목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형태의 신아리랑이 나타나면서 신민요 아리랑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대중적인 유행을 바탕으로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인기를 누렸다.

왕수복은 신아리랑, 봄맞이 아리랑 등을 불렀고, 선우일선의 그리운 아리랑, 장일타홍은 아리랑의 꿈, 김선영의 아리랑 세상, 백난아의 아리랑 낭낭, 김용환의 꼴망태 아리랑, 이화자의 아리랑 삼천리, 백년설의 아리랑 만주, 김봉명의 아리랑 술집 같은 노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아리랑이나 신민요 아리랑 등이 현재는 새롭게 창작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당시에 불리던 노래들은 유성기 음반 속에서 한국 음악사의 일정한 위치를 점하며 존재하고 있다.

아리랑과 신아리랑, 전통아리랑 등에 대한 개념 정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에 수록되어 운영되고 있다.

 

Ⅲ. 본질적 특성

아리랑 연구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선행기록을 통해 아리랑의 본질적 성격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문장이 동시에 여러 개로 변환되는 다중의시 형태이며, 중세시대 참요 성격의 암호문이다.

 

님 웨일즈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조선시대에 왕조의 압정에 대항해 싸운 한 젊은이가 옥중에서 만들었는데, 노랫말에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비밀결사의 노래가 되었다. (님 웨일즈, 『아리랑 노래』, 1941)

 

메리 린리 테일러

 

 

1918년 가을, 커다란 일주문을 통과하여 영원한 안식처라는 뜻의 장안사로 들어섰다. 저녁상은 한 참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저녁상이 들어왔다. 이미 늦은 식사였고, 너무 배가 고파서 우리는 젓가락을 들고 말도 없이 밥만 먹었다. 그때 바로 옆방에서 낮고 구슬픈 가락이 들려왔다.

저 곡은 옛날 조선 실향민의 노래라오. 왠지 나는 저 노래만 들으면 볼가강의 뱃노래가 연상되던데, 아무튼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한 해석은 수십 가지가 넘소. 어떤 가사를 붙여 부르든 곡조 자체에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오. 일종의 암호 같은 거랄까. (메리 린리 테일러, 『호박목걸이』, 2014)

 

 

시노부 쥰페이

조선에서 불리어지는 대중가요 중에 특히 이 노래를 좋아한다. 한밤중에 달빛을 밟으며 남산 기슭 왜장대 주변을 산책하노라면 순진무구한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와 잘 어우러져, 역사의 흥폐와 세상살이의 비애를 이야기하는 듯하여 무량한 감개를 느끼게 된다. (시노부 쥰페이, 『한반도』, 1901)

 

와다 텐민

온돌 지피는 연기 온 동네 가득하고, 조선 약주의 짙은 내음이 코를 찌르는 초저녁 무렵의 주막집 앞을 지나노라면 종종 맑고 가는 음절의 장단으로 들려오는 노래를 듣게 된다. 슬픈 가락이 노래 속에 가득하고 여운은 끊어질듯 말듯 길게 늘어져, 어쩐지 사람을 비참하고 처량한 느낌에 빠뜨려 견디지 못하게 한다. (와다 텐민, 『조선의 향기』, 1921)

 

나운규

나는 국경 회령이 고향으로, 내가 어린 소학교 때에 청진서 회령까지 철도를 놓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롯길 둑을 닦으면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 가다 그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었어요. 그러고는 애연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외어 보았답니다. 그러다가 서울 올라와서 나는 이 노래를 찾았지요. 그때는 도무지 찾아 들을 길이 없더군요. 기생들도 별로 아는 이 없고 명창들도 즐겨 부르지 않고…… 그래서 내가 예전에 듣던 그 멜로디를 생각해서 가사를 짓고 곡보는 단성사 음악대에 부탁하여 만들었지요 (나운규,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 1937)

황현

1894년 정월, 매일 밤마다 궁궐에 전등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광대와 재인들을 불러들여 아리랑 타령(阿里娘 打令)과 같은 신성염곡(新聲艶曲)을 연주하며 연회를 하고 있다. 타령한다는 말은 민간에서 가극하고 노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이제는 다름 아닌 궁궐에서도 하는 것이다. (황현, 『매천야록』, 1955).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추구하는 지향점은 하나로 일치된다. 그간의 연구를 통해 역사 속의 기록을 고증하게 된다. 특히 매천야록에서는 아리랑이 뜻 없는 후렴구의 허사가 아니라 실사이며, 여자를 뜻하는 랑(娘)으로 기록하고 있다. 궁궐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었으므로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었다.

 

(다음에 계속)

 

조용호 박사는..

조용호 박사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 문학박사 文學博士, Ph.D, Harry Cho.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아리랑 원형연구》저자. 하버드대학 서울대학교 등 세계 500대 도서관 소장. 암호학 음운학 고전문학 갑골문 연구. 숭실대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국악방송 아리랑 연구의 명저자. 안전행정부 대한민국 국가 인재. 전자회사 정보통신 총괄기획. 모바일 반도체 그룹 수석 부사장(Group VP). 한국지사장. 민요학회 임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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