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재일교포들 학교부지 제공.. 난산리 난산국민학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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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재일교포들 학교부지 제공.. 난산리 난산국민학교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8.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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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난산초등학교 터(난산로26)에는 난산리 경노당과 보건진료소가 자리하고 있다.

난산리 난산국민학교터

 

위치 ; 난산리 324-1번지(난산로26), 1109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교육기관

난산리_난산국민학교터공덕비

 

난산리_난산국민학교터

 

난산리에서는 1927년 김규림씨에 의해 난산리 327-3번지에 서당이 개설되어 지역 아동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간이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성산이나 신산까지 다녔다.


재일교포들이 학교부지를 제공하고 마을 주민들이 학교설립자금을 모아 교실을 건축하여 1934년 5월 1일 성산공립보통학교 부설 2년제의 난산간이학교를 개설하였다.


1941년에는 학교실습지 등이 추가로 확보되면서 1944년 4월 1일 난산공립국민학교로 승격, 1950년 5월 1일 난산국민학교로 교명이 개칭되어 운영되었다.


4․3사건 당시에는 학교 옆에 있던 관사(난산리327-3번지)를 민보단과 의용대 본부 사무실로 이용하며 토벌 중 붙잡아온 주민들을 취조하기도 했다.

1948년 겨울과 1950년에 1,2차로 마을을 두르는 성을 쌓고 교대로 보초를 서며 군인과 경찰의 통제 속에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무장대가 거의 궤멸 상태였던 1951년 4월 5일 무장대의 기습으로 난산국민학교가 전소되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 해 8월에 학교를 난산리 1109번지로 이전해 2개 임시교실이 지어졌고 마을 주민과 재일동포들의 지원으로 학교의 본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최초 난산초등학교 터(난산로26)에는 난산리 경노당과 보건진료소가 자리하고 있다.


학생수 감소로 1992년 3월 30일 신산국민학교 부설 난산분교장으로 개편되어 운영되다가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들어 1995년 3월 1일 신산국민학교에 통폐합되기까지 61년 동안 112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지금도 학교 건물은 있으나 여러 차례 증개축한 건물이며 학교는 폐교되어 2002년부터 대안학교(문화교육 들살이)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제주4․3유적Ⅱ 431~432쪽, 제주일보 141021, 향토문화전자대전)


교정에는 배움의 옛터 표석과 학교 설립과 관련된 공덕비들,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장군 동상, 시멘트로 만든 동물 모형들이 남아 있다.



배움의 옛터 표석


〈이곳은 난산국민학교의 배움의 옛터입니다. 학구민의 불타는 교육열과 정성으로 부지와 건물을 마련 1934년에 개교하여 61년 간 1,120명의 어린이들이 푸른 꿈을 키우며 배움의 꽃을 피우다가 아쉽게도 학교에 다닐 어린이가 줄어들어 1995년 3월 1일자로 문을 닫으며 신산국민학교에 통합되었습니다. 이에 이곳이 오랫동안 배움의 횃불을 밝혔던 자리임을 길이 남기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 1995년 2월 일 신산국민학교장〉
《작성 140609, 보완 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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