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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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51)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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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설의 논리구조 연구 - 2(제24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스물 네번째 주제는 아리랑설의 논리구조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Ⅳ. 기록의 변형과 왜곡

아리랑의 뜻을 노랫말에 대입하였을 때 아리랑 발생설에 나타나는 설화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자료들 간의 결합에서 나온 오류가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어원 자체만을 보아서는 안 되며 발생설을 만들기 위해 참조한 자료, 만들어진 배경이나 추구하는 목표,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사상(思想)까지 알아야 진정한 의미에서 발생설이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상은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동시대인의 세계사적인 생각의 뭉치이며, 당대 가치관의 집대성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발생설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에서 고찰해 보면 숨겨져 있던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발생설의 원문에는 제보자의 인적사항과 함께 배경설화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된 배경설화와 아리랑 어원 간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확정되지 않은 여러 개의 설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아리랑은 뜻이 없고 유사한 발음을 갖는 설화나 비슷한 뜻이 있으면 그럴듯하게 될 수 있는 노래라는 논리체계를 만들고 있다. 이는 아리랑을 뜻 없는 후렴구로 희화화(戱畵化)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심(朝鮮心)을 대표하는 노래인 아리랑에 대한 존엄성을 상실케 하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더구나 단순히 아리랑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발생설에 나타나는 다른 화소(話素)인 대원군, 경복궁 부흥공사, 강제노역, 백성들의 고통,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 잔인하게 살해된 후 한을 품고 밤에 나타나는 아랑, 아랑위의 기원(起源)이 중국에 있다는 것,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에서 발생되었다는 설 등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설들이 하나로 종합되었을 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며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형태상으로는 아리랑이라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이롱, 아리랑, 아난리 등은 경복궁 부흥공사에 대한 강제 노역을 통해 대원군(大院君)이 백성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제시하는 바는 대원군을 비롯한 조선 집권층이 백성들을 압제한데에 조선망국의 원인이 있다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은 1926년 호소이 하지메(細井肇)가 조선이 망한 이유를 대원군과 연결시키려한 점과 같다.

또한 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1911년), 붕당⋅사화의 검토(朋黨⋅士禍の檢討)(1921년) 등에서 당쟁의 원인 등을 들어 조선인의 심성을 비난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한 논리는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사상과 같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진화론에 입각한 우등과 열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朝鮮の俚諺集附物語)(1914년)을 통해 철학과 종교적 입장에서 조선사회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특성을 “1.사상(思想)의 고착성 2.사상(思想)의 무창견(無創見) 3.무사태평 4.문약(文弱) 5.당파심 6.형식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조선인(朝鮮人)(1921년) 등을 통해 세분화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또한 무라타 시게마로(村田繁麿)는 '조선생활과 문화(朝鮮の生活と文化)'(1924년)에서 동일한 논리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병합 3년을 맞는 시점에서 향후의 통치 방향에 대하여 논의한 '조선 제1집(朝鮮 第1輯)'(1913년)에 나타나 있다.

이들이 사용한 자료 중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수집한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1912년)와 '조선 민담집 부록 속담(朝鮮の物語集附俚諺)'(1910년) 등이 있고, 민요나 속담 등의 변형을 통한 조선 민족성의 교화(敎化) 방안의 기초가 되는 식민사관은 韓國倂合紀念史(1911년) 등에 나타난 식민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발생설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당시의 실증적 학술 태도를 무시한 연구 결과라는데 있다.

즉 아리랑의 어원이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 19세기 말을 기점으로 유사한 형태의 명칭이 이미 있었고,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가 있어왔는데도, 기록에 대한 언급이나 제기된 수많은 논의들은 누락하고, 단순히 몇 개의 설과 아리랑의 종류만을 나열하고 있다.

이는 고의적으로 자료를 누락한 것이며, 동시에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발생설을 만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특정한 역사적 상황(歷史的 狀況)을 만들어 결정적인 내용을 누락하거나 조합하는 논리체계이다. 그러한 논리는 「朝鮮民謠 아리랑, 朝鮮民謠의 硏究(二)」의 머리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第一次로 주은 바둑돌은 이 「아리랑」이올시다 맨든 것이 안이고 주은 것이에요 이에 對하야 여러 先輩의 말삼도 들엇슴니다만은 아즉 明確치 못한 점이 만코 採譜라든지 謠旨解釋이라든지 相互의 比較調査라든지는 後期를 두고 未完成인 이대로 씀은 퍽 미안함니다. 이것은 死馬骨을 五百金으로 買入하는 格이니 千里馬를 자랑하실분이 만이 기심을 바람니다.

 

아리랑 연구를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주웠으며, 선배의 말을 들었고, 직접 채보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자료를 줍는 방식과 말을 전해준 선배 등에 대한 다른 예가 있다. 발생설을 기고하고 나서 6개월 후인 12월호에 쓴 「앙모안회헌 선생(仰慕安脢軒先生)」의 말미에 자료를 만든 배경과 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다.

 

此는 恩師 高橋博士 드른 講義 一部을 土臺삼아 大槪譯함에 不過하니 誤謬가 잇스면 나의 잘못임을 告함

 

강의에서 들은 자료를 번역하여 기고하였다는 것은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박사의 강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 후 대신하여 기고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기고문이 갖는 문제점은 자료를 강의했거나 설명해준 사람이 당시의 사상과 역사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거나 강의한 내용이 개인적 성향에 의해 변형되어 있을 경우 또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조한 자료의 원천적인 내용에 대한 고찰과 당시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아리랑의 어원과 관련 설화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주웠다고 하는 자료가 어떤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그와 같거나 유사한 화소(話素)가 있는 자료를 통해 변형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발생설에 나오는 화소들과 같거나 유사한 내용인 어유하(魚遊河)⋅아이롱(啞而聾)⋅아아이롱(我啞而聾)⋅아롱(啞聾)⋅아랑(阿郞),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는 내용이 나오는 자료는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1912년)이다.

조선총독부에서 전국경찰조직과 보통학교를 통해 비밀리에 간접 채보한 형태로 만든 자료로 민요에 대한 논문집인 '조선민요 연구(朝鮮民謠の硏究)'(1927년)를 편찬한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 같은 일본인에게 조차도 보여주지 않았을 정도로 비밀리에 취급한 자료인데, 아직까지도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비교해 보면 아이롱(我耳聾)과 관련된 것은 아이롱(啞而聾) 또는 아아이롱(我啞而聾)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아이롱 타령(啞而聾 打詠)>에서는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말고, 말하지 말고, 놀다가는 의미에서의 아이롱(啞而聾)이다. <아롱가(啞聾歌)>, <아리롱 타령(啞利聾 打令)>에서는 기차(汽車) 소리가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떠나는 님을 잡고서 낙루하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는[聾] 의미이다.

이를 통해 아이롱(我耳聾)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대원군이나 경복궁 부흥공사, 백성들이 원납 소리에 귀가 아픈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발생설에 나오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어유하(魚遊河)와 관련된 것은 <모내기>, <김매기요(謠)>와 <타맥가(打麥歌)> 등에 나온다. <모내기>, <김매기요>에서 어유하의 의미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옆에서 노는 물고기를 본다는 뜻이다.

<타맥가(打麥歌)>에서는 보리타작 농사를 힘들게 하는데 물고기는 논다는 뜻이며, 또 다른 노래에서는 인생도 때 만나면 좋은 시절이 오니 물고기처럼 놀아 보자는 내용이다.

경복궁 공사에 동원된 역군들이 불렀는지의 여부를 떠나 원래의 의미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아난리차역(我難離此役)이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어유하는 대원군과 관련이 없는 농사에서 나온 노래인데 상황을 무리하게 대원군 연결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원군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민요에 나온다. <방아 타령(打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경복궁을 짓는 것이 역사(役事)이며, 팔도 부자가 원납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부로 백성들이 원납 소리에 귀 막는다거나 일하던 곳을 떠나기 어렵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자료가 변형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는 무엇일까? 발생설에서 제기되는 방향성은 당시의 집권자인 대원군을 공격함으로써 조선의 통치자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압제하는 정치를 하였다는 논리를 통해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를 통해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총독부가 추구하던 목표가 무엇인지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1912년)와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년)에 공통적으로 나온다.

조선의 통치자들이 압제 정치를 해서 조선이 망했는데, 식민지가 되고나니 백성들의 삶이 요순시대와 같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난 것을 통해 민요 조사 시작 전부터 이미 일부의 자료에 대해서는 특정한 의도를 갖고 끼워 넣어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일제를 찬양했거나 아부성을 보이는 것은 조작된 것일 수 있으므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게 된다.

한편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년)에는 이와 동일한 내용이 속담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즉 1910년에 없던 내용이 1914년 자료에 추가된 것이다.

이것은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 있는 민요를 속담이라는 형태로 변형(變形)시킨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함으로써 요순시대가 되었고, 이를 통해 총독부 정책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 속담집(朝鮮俚諺集)(1926년)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총독부를 노골적으로 예찬하는 내용은 개인의 저술에만 한정하고 공식 문서에서는 제외한 것이다.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를 일본 민간인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변형이 가미된 자료였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비밀자료 취급을 한 것이다.

아랑(阿娘)과 관련된 것은 <아랑가(阿郞歌)>, <애아랑가(愛我娘歌)> 등이 있다. <아랑가(阿郞歌)>는 술을 잘 마시는 장안의 호걸이나, 노름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아랑가(愛我嫏歌)>는 젊었을 때 재미있게 놀고 지내자는 내용이다.

아랑(阿郞)과 아랑(阿娘)의 관계가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밀양 전설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정조를 지키려다 통인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여 꿈속에 나타나는 아랑(阿娘)에 대한 내용은 없으며, 이는 같은 자료에 나오는 <밀양 아리랑>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랑 전설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가? 그것은 젊은 여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민족성을 부각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朝鮮の俚諺集附物語)(1914년)에 나오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 내린다는 속담과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속담의 원래 뜻은 여자에게 한 맺힌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를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에서 임금이 정치를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속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속담이 목표로 하는 것은 조선 위정자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식민통치를 정당화시키는 논리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아랑위(兒郞偉)에서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 단순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아랑위가 나온 배경에 대해서는 한자로 병기되어 있다. 아랑위로 축문을 하는 풍습이 중국의 육조시대에 기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건축할 때 아랑위를 하는 행위는 중국에서 받아들인 사상을 조선에서 사용한다는 논리이며, 이는 조선인의 민족성을 분류할 때 지적한 ‘사상(思想)의 무창견(無創見)’과 연결시키고 있다.

무창견이란 철학 및 종교에 있어서 중국사상 외에 조선에서 독립적으로 창조된 사상이 하나도 없음을 말한다. 이는 진화론에 입각한 우등과 열등의 논리에 근거를 두며, 그러한 이유로 열등한 민족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구조이다.

그러나 식민사관에 의해 편찬한 역사책에서 조차도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 등 수많은 고대의 한국인들이 왜국(倭國)에 건너가 문명을 일깨우고, 사상을 불어넣어 주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알영(閼英) 이야기는 어디에서 주은 것일까? 발생시기와 관련하여 이광수가 민요소고에서 제시한 삼국시대 기원설과 일부 관련이 있을 수 있으나, 삼국시대 중에서 신라에서 발생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당시의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보는 신라(新羅)와 박혁거세(朴赫居世)라는 측면이다.

식민사관에 의하면, 임나일본부를 비롯하여 신라는 일본에 의해서 식민통치를 받았다는 논리체계에 있었고, 더구나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가 일본 왕족이라는 사관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신라의 노래는 결국 고대 일본 식민지의 노래이고, 이는 일본의 노래이며, 일본 왕족 출신으로 신라에 건너와 박혁거세로 이름을 바꾼 일본사람의 아내인 알영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논리를 통해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라는 시조인 박혁거세부터 일본 왕족에 의해 다스려진 식민지라는 논리도 성립된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알영(閼英)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발음상의 특이성은 당시의 논리와 결합되어 김알지(金閼智)를 연상시키는 작용을 한다. 즉 식민사관에서의 김알지(金閼智)는 일본 호족인 기무오치(金閼智)로, 또 다른 일본지역 호족 출신인 석탈해(昔脫解)가 박혁거세를 몰아내고 왕이 되자 바다를 건너와 신라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석탈해를 물리치고 왕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비슷한 이름의 알영(閼英)을 등장시킴으로써 알지(閼智)를 연상시키는 과정을 통해 아리랑을 일본 왕족을 찬양하는 노래로 유도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종류의 아리랑에 대한 뜻을 노랫말에 대입해 보았지만 아리랑 발생설에 나타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자료들 간의 결합에서 나온 오류가 아니라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자료를 변형하고 왜곡하였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Ⅴ. 결론

아리랑 발생설은 아리랑의 어원이나 기원과 관련하여 비교적 널리 회자되고 있는 내용이므로 이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상황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사상적 배경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리랑 발생설에 나오는 화소(話素)를 총독부 자료와 대비해 보면 차이가 나타난다. 즉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물론 그와 유사한 아르랑, 아리랑가(歌), 아리랑 타령, 아리랑 타령(打令), 아라랑, 아르렁 타령(打令), 아라리 타령 등이 이미 있었는데도 언급하지 않는 대신, 아이롱, 아난리, 아랑, 아랑위, 알영 등을 수집하여 발생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본래의 내용과 다른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아리랑에 나타나는 다양한 역사 기록을 정리하고 분석해 보면 노랫말과 아리랑 발생설 사이에 어떠한 관련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아리랑 발생설에 나타나는 6개의 설 중에서 아이롱(我耳聾)설⋅아리랑(我離娘)설⋅아난리(我難離)설⋅아랑(阿娘)설은 조선 망국의 책임을 위정자들의 압제에 돌림으로써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전개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아랑위(兒郞偉)설은 자체적으로 만든 사상이 없는 무창견(無創見)의 민족이므로 일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 알영(閼英)설은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일본 왕족이고 신라는 고대로부터 식민지였기 때문에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구조이다.

아리랑 발생설은 조선 총독부에 의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논리구조로서 식민사관의 결정체였다.

이제 아리랑 연구라는 학술적 포장 속에 숨겨져 있던 식민사관을 거둬내고 원래 아리랑이 갖고 있는 숭고한 의미를 찾아 민족적 자존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제24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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