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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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57)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11.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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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 바르게 알리기 세계화 운동의 이론연구 - 4(제26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스물 여섯번째 주제는 아리랑 바르게 알리기 세계화 운동의 이론연구'이다.(편집자주)

 

 

(이이서 계속)

 

Ⅳ. 식민사관과 동북공정 극복

중국의 방송 매체들은 2002년부터 사회과학원을 중심으로 동북공정을 통해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틈나는 대로 아리랑을 중국의 것이라 주장하며 홍보하고 있다. 아리랑은 조선족의 것이며, 조선족은 중국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중국의 것이 된다는 논리이다.

또한 일본은 일찍이 1930년 6월, 조선총독부에서 개발한 논리로 아리랑 발생설을 만들어 놓았다. 즉 아리랑이라는 말은 원래 아이롱이나 아리랑, 아난리, 아랑, 아랑위, 또는 알영 등에서 변형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으로 보아도, ‘내 귀가 먹었다’는 뜻의 아이롱(我耳聾) 등이 변하여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은 노래의 격을 낮춰보며 희화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땅히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있어야 한다.

 

4.1 아리랑 발생설

아리랑의 뜻이나 발생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었지만 대표적인 것은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 조선민요의 연구(2)」(『조선』, 조선총독부)에 소개된 아리랑 발생설(發生說)이다.

아리랑의 어원과 함께 몇 개의 노랫말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본격적인 아리랑 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중에 나오는 6개의 아리랑 발생설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금까지 연구의 기본설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롱설

대원군이 경복궁 부흥공사를 시작할 때에, 글자깨나 하는 이가 단원아이롱 하야 불문원납성이란 가시(歌詩)를 작한 것이 부역군의 입으로 노래를 창하게 되였다. 아이롱(我耳聾) 한자음을 무식한 부역군이 떠들어대는 음이 전변하여 아리랑이 되어, 즉 노래에 선소리 괘성이 되었다 한다.

 

아리낭설

경복궁 부흥공사를 할 때, 역군들은 각기 지방 소장인 노래든가 혹은 자기 소회를 술하는 탄성과 병출하는 노래도 있었다. 즉 몇 개월을 각지 봉누방에서 새우잠을 자니 이가지회(離家之懷)를 못 이기어 아리낭 아리낭(我離娘) 곡을 불렀다고 한다.

 

아난리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축할 때에 부역민이 휴식치 못하고 노노역역함을 자탄위가왈(自歎爲歌曰) 어유하(魚游河) 아다고(我多苦)라 하였나니 경복궁 공사가 이러한 축성에 비등하며 노래도 이를 모방하야 어유하 아난리(我難離)라고 하였다 한다.

즉 고기는 물에서 자유롭게 놀건만 이놈의 팔자는 고기만도 못하여 이 고통의 역사에서 몸을 빼내지 못하는고? 즉 아난리 차역(我難離 此役)고 하는 아난리가 음전으로 아라리가 되였다 한다.

 

아랑설

몇 백 년 전 밀양군수 이모의 영양은 아랑(阿娘)이라 칭하였다. 아랑은 년방 이팔에 용모극미한데 내아심규(內衙深閨)에서 침공을 힘쓰며 내측편을 관독(慣讀)하니, 어떤 자가 아랑을 일견에 심취하야 야욕을 채우고자 하였으나 정조의 관념이 강한 아랑은 통인을 통매(痛罵)하고 종시불응(終是不應)하니 차즉 통인 단도하(短刀下)에 죽전(竹田) 고혼이 되는 비극이었다. 밀양 인민이 아랑의 정열을 사모하야 아랑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아랑위설

가옥을 건축할 시에 상량문을 지음은 항례인대 즉 포량상, 포량하, 포량동, 포량서, 포량남, 포량북의 육구로 작시하나니, 즉 상량을 축하하는 뜻이라. 그리고 아랑위(兒郞偉)라 글을 쓰나니 아랑위는 즉 터주가 이 집을 잘 지키어 세세번창 하도록 하여 달라는 축문이다. 아랑위라는 음이 변하여 아리랑이 되었다 한다.

 

아리랑 고개와 알영설

석굴암 부근에 알영정이 있고 불국사 부근에 알영천이 있는데 석굴암에서 불국사로 가자면 한 험준한 고개를 넘나니 그 고개가 즉 지금의 아리랑 노래의 괘성 아리랑고개라는 고개가 그로부터 기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며 삼국사기를 보건데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이름은 알영이니 왕이 육부를 순무할 제 왕비가 배종하야 친히 농상을 권장하였음으로 백성들이 그 혜택을 노래하노라 알령(閼英) 알령(閼英)한 것이 아리렁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는 아리렁을 발음상으로 보아서 음편관계로 알(閼) 영(英)이 변하야 아령이 되고 아령이 변하야 아리렁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사상적 배경

아리랑 발생설의 가장 큰 문제는 제기된 내용이 단순히 아리랑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러 개의 발생설이 하나로 종합되었을 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며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형태상으로는 아리랑이라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아이롱, 아리랑, 아난리 등은 경복궁 부흥공사에 대한 강제 노역을 통해 대원군(大院君)이 백성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제시하는 바는 대원군을 비롯한 조선 집권층이 백성들을 압제한데에 조선망국의 원인이 있다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상은 1926년 호소이 하지메(細井肇)가 조선이 망한 이유를 대원군과 연결시키려한 점과 같다. 또한 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1911년), 붕당⋅사화의 검토(朋黨⋅士禍の檢討)(1921년) 등에서 당쟁의 원인 등을 들어 조선인의 심성을 비난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한 논리는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사상과 같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진화론에 입각한 우등과 열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朝鮮の俚諺集附物語)'(1914년)을 통해 철학과 종교적 입장에서 조선사회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특성을 “1.사상(思想)의 고착성 2.사상(思想)의 무창견(無創見) 3.무사태평 4.문약(文弱) 5.당파심 6.형식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조선인(朝鮮人)'(1921년) 등을 통해 세분화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또한 무라타 시게마로(村田繁麿)는 '조선생활과 문화(朝鮮の生活と文化)'(1924년)에서 동일한 논리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병합 3년을 맞는 시점에서 향후의 통치 방향에 대하여 논의한 '조선 제1집(朝鮮 第1輯)'(1913년)에 나타나 있다.

자료 중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수집한 '이요⋅이언 및 통속적 독물 등 조사'(1912년)와 '조선 민담집 부록 속담(朝鮮の物語集附俚諺)'(1910년) 등이 있고, 민요나 속담 등의 변형을 통한 조선 민족성의 교화(敎化) 방안의 기초가 되는 식민사관은 '한국병합기념사(韓國倂合紀念史)'(1911년) 등에 나타난 식민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사관 극복

최초로 제기된 김지연의 설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유사한 형태의 발음과 이에 대한 설화적 설명을 곁들이면 아리랑이 된다는 연구방법의 기원과 그것이 갖는 사상적 배경 및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결코 단 한 번도 학술적인 회의(懷疑)의 대상이 된 바 없으며,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없었다.

뜻 모르는 후렴구로 판정한 당대의 아리랑에 대하여 다양한 종류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며, 의도하는 목표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후에 나타난 설들도 최초에 제기된 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근본원인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때이다.

조선총독부가 제기한 아이롱설, 아리랑설,아난리설, 아랑설은 조선 망국의 책임을 대원군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압제에 있다고 함으로써,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전개하려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아랑위설은 조선 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사상이 없는 무창견(無創見)의 민족이므로 일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며, 알영설은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일본 왕족이며 신라는 고대로부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선이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논리 구조이다.

아리랑 발생설은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구조로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놓은 조선민요 아리랑 연구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연구의 연원이 되는 것처럼 인식되어져 왔다. 아리랑 연구에 숨겨져 있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할 때이다.

결국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인의 공통 심성인 조선심과 민족성을 파악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인의 핵심이 아리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해 희화화하여 뜻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조선민족의 혼 아리랑에 대한 존엄성을 박탈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리랑 연구의 목적이었다. 한민족의 혼이 크게 훼손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한 숨겨진 의도를 모르고 지금까지 단순한 아리랑 어원에 대한 기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는 조선총독부가 진정으로 아리랑의 뜻을 찾으려는 열정과 조선인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해 아리랑에 숨겨져 있던 식민사관을 탈피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아리랑 바르게 알리기 세계화 운동의 이론 확립(アリランを正しく知らせるグローバル化運動の理論確立)을 통해 제대로 된 아리랑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4.2 아리랑 동북공정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만주 등 동북지방의 지리, 역사, 민족 문제 뜽을 연구하는 국가 연구 사업으로, 동북 변강사 및 현장 계열 연구 공정(東北 邊疆史 與 現狀 系列 硏究 工程, Northeast Borderland History and the Chain of Events Research Project of the 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2002년부터 사회과학원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들어 한복, 민요, 김치, 아리랑 등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중국에 포함시키려는 '문화 방면의 동북공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아리랑의 경우, 지난 2009년 8월 문화재청은 정선아리랑의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지만 다른 무형문화유산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심사 대상이 되지 못했다. 등재가 시급해진 것은 2011년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阿里郞)를 자국의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발표하면서부터다.

문화재청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해 다음해 1월 아리랑을 등재 우선심사대상으로 선정했다. 6월에는 정선아리랑의 범위를 확대해 등재 대상을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전 국민의 아리랑’으로 수정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초 문화재청은 남북 공동으로 아리랑의 등재를 추진하려 했으나 일정이 촉박한데다 북한과의 교류가 원활치 않아 이 계획은 무산됐다.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12년 5일 유네스코 제7차 무형문화유산위원회가 한국의 대표 전통민요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발표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등을 비롯해 총 15건에 이르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아리랑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리랑이 단지 한국 일부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가 아니라 북한은 물론 중국의 조선족 등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까지 공유하는 민족 전체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몇 년 후, 북한도 독자적으로 아리랑을 등재했다. 즉 2014년 11월 2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북한이 신청한 '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리랑 민요)를 등재했다. 이는 북한의 첫 인류무형유산 등재다.

 

아리랑 동북공정

뉴스 매체 등에 의하면 중국 매스컴에서 조선족이 등장하는 무대에 한복, 아리랑, 부채춤 등이 중국 문화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이 국내 누리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한국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거나, '한국 전통 민요인 아리랑에 맞춰 춤을 추는데 한국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중국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 동북공정이 아니고 뭔가라든지, '아리랑과 한복은 엄연히 한국 고유의 것인데 중국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한국 전통문화가 조선족 문화와 '공유'되는 측면이 있지만, 중국 예능에서 마치 중국 것인 양 소개되는 것은 세계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중국 행보에 대해 역사 문제를 정치화하기보다 학술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리랑 원형연구로 정면 돌파

아리랑이 중국의 것이냐 아니냐로 국민적 정서가 혼란스러운 모양새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의 본질을 정확히 알면 혼란스러울 것도 없고, 중국의 것이다 아니다 할 필요도 없다. 아리랑은 왜 중국의 것이 아닌 한국의 노래이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아리랑 원형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즉 중국이 아리랑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거나,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 스스로 자기 부정(自己 否定)을 하는 모양새가 된다. 중국은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기 등록한 아리랑을 "기원이 같고 공유하는 무형문화유산은 주변국과 공동으로 신청, 협력과 연구를 강화하고 선린우호 관계도 증진"한다는 측면에서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고 한다.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떠나 오해(誤解, 誤会)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정이다.

물론 모든 형태의 아리랑에 대한 등록이나 지정 신청을 반대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에는 다양한 각편(version)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중국 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불리는 장백산 아리랑 등 변이 형태에 대하여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고, 유네스코에 지정 신청 하는 일은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는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지정 신청하는 일은 중국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된다.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이며, 중국을 포함한 어떠한 나라도 아리랑을 소유할 수는 없다. 아리랑의 본질을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오해이다.

아리랑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인 만큼 역사적으로도 왜곡과 오해가 존재해 왔다.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은 오해(misunderstanding)의 문제이다. 중국은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아리랑이 "기원이 같고 공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기록을 통해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유행가가 아니라 여말선초에 만들어진 참요이다. 아리랑의 원형을 재구하면 젊은 남녀가 남녀혼성 듀엣이라는 형태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여말선초에 재구된 아리랑은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애국과 충성의 노래로 “내 조국은 고려다!” 라는 충신들의 애국심이 담겨있다.

고려의 멸망과 더불어 아리랑은 금지곡이 되었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조선의 궁궐에서도 아리랑을 부르게 됨으로써 국가적으로 공인받게 되었다. 고려의 노래가 조선의 노래로 인정되는 과정을 통해 민족의 노래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아리랑은 현대국어가 아니라 14세기 중세국어로 되어 있으며, 고려에 대한 충성의 노래임을 알지 못한데서 나오는 중국의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다양한 민족의 문화전통을 계승하려는 측면의 노력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아리랑은 상황과 역사적 전통이 다르다. 일련의 상황들은 아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므로, 오해를 풀고 더 이상 중국의 노래라고 주장하지도 말고, 유네스코 신청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의 조국은 언제나 영원한 고려(高麗)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해 아리랑에 숨겨져 있던 동북공정을 해결하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될 될 것이며, 아리랑 바르게 알리기 세계화 운동의 이론 정립(确立正确宣传阿里郎的世界化运动理论)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아리랑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아리랑은 왜 중국의 노래가 될 수 없는가? 韩国的阿里郎为什么不能成为中国大陆的歌曲? Why Korean Arirang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can't be a song of mainland China?” 등의 내용으로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다.

지난 20여 년 세월, 아리랑 원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의 아리랑이 다른 어떤 나라의 노래가 아닌 한국(Korea)의 노래임을 증명하고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민족 노래를 대표하는 아리랑의 본질적이고 숭고한 의미를 세계에 바르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Ⅴ. 결론

아리랑은 한민족 정신세계의 중추신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민족의 노래이지만 주변국의 무례와 왜곡으로 인하여 민족적 존엄성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해야 할 것이나 아직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틈나는 대로 아리랑을 중국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아리랑의 원형을 재구하면 아리랑은 무너져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애국과 충성의 노래로 “내 조국은 고려다!” 라는 충신들의 애국심이 담겨 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조국은 고려가 되고, 대한민국이 되는데, 과연 중국은 아리랑을 자국의 노래라고 할 것인가? 아리랑이 고려에 대한 충성의 노래임을 알지 못한데서 나오는 중국의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의 조국은 언제나 영원한 고려(高麗)이며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찍이 조선총독부에서 연구한 논리로 아리랑 발생설을 만들었다. 아이롱(我耳聾)설, 아리랑(我離娘)설, 아난리(我難離)설, 아랑(阿娘)설은 조선 망국의 책임을 위정자들의 압제에 돌림으로써,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전개하려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아랑위(兒郞偉)설은 자체적으로 만든 사상이 없는 무창견의 민족이므로 일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알영(閼英)설은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일본 왕족이고 신라는 고대로부터 식민지였기 때문에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 구조이다.

아리랑 발생설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구조로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권을 빼앗겼던 1910년으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족 노래 아리랑은 식민사관의 틀에 갇힌 채 뜻 모르는 노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리랑 연구라는 학술적 포장 속에 숨겨져 있던 식민사관을 걷어내고 원래 아리랑이 갖고 있는 숭고한 의미를 찾아 민족적 자존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앞으로 아리랑의 선행기록과 원형연구에 대한 투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적 자존을 더욱 굳세게 지켜나가면서, 한국의 아리랑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 나가야 할 것이다.(제26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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