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 오늘 그대의 사려니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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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 오늘 그대의 사려니가 되리라..
  • 김은주
  • 승인 2023.07.1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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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김은주(제주송서율창보존회원, 탐라국악학원 문화생)

 

향연 김은주(제주송서율창보존회원, 탐라국악학원 문화생)

 

비 내리는 7월의 오후, 사려니 숲을 찾는다. 맑은 날 녹색 숲의 청량함도 좋지만 우중의 사려니가 내비치는 내밀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그 무엇과 비교할 것인가?

그러나 이 또한 우문이다. 어느 날의 사려니가 아름답지 않았단 말인가.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의 사려니를 그대는 아시는지?

비와 눈이 함께 숲을 휘감던 날의 감동은 또 어찌하고? 어느 날 어느 때, 어떠한 날씨든 상관없다. 사려니는 사려니를 찾는 이에게 사려니를 온전히 안겨 준다.

어떤 모습으로 사려니를 찾아도 좋다. 홀로 와도 좋고, 여럿이 와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사려니 그늘에 가려 혼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군가와 동행한 이들은 모두 함께 숲의 일원이 되어 더욱 친밀해질 것이다.

그뿐인가? 혼자이되 혼자임이 싫은 이에게는 ‘혼자 걸으면서 함께’가 되는 마법까지도 펼쳐 준다. 그런 사려니에 왔다. 입구에는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려니를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선물이 준비되어 있단다.

‘에코 힐링’ 자연, 생태와 치유를 말하고 있다. 힐링은 요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중요 관심사임이 분명하다. ‘힐링’은 이미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들어와 있다. 힐링하려 먹고, 힐링하려고 마신다.

힐링을 위해 운동하고 힐링하려 쉰다. 힐링하려 만나고 힐링하려 사려니에도 온다. 왜 이처럼 힐링이 우리 삶의 주요 화두가 되었을까? 그야 당연히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치유의 시간’이라고 모두가 말하고 있다.

사려니는 슬픈 마음, 억울한 마음, 외롭고 지친 그 어떤 마음도 품는다. 숲길을 걷다 보면 슬픈 마음은 위로받고 지친 마음은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그 어떤 가난한 마음도 그 어떤 슬픈 마음도 사려니가 품지 못할 것은 없다.

왜? 사려니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문명 생활로 다친 우리네 몸과 마음이 회복할 방법은 자연뿐이기 때문이다. 탁하고 이지러진 작은 자연은 큰 자연 속에서 자연스레 정화된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힘이다.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들고, 듣고 보고 냄새 맡고 접촉하는 것들은 내 마음의 재료가 된다. 내가 사려니를 걸으며 접하는 자연은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된다.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아니겠는가!

자연의 오행(목, 화, 토, 금, 수) 기운은 나의 부족한 오행을 지지해 주고, 건강한 자연의 기운은 바로 나의 생명력과 연결되어 활기가 생긴다. 쉼이 있고, 위로가 있으며, 치유의 과정이 진행된다. 그러니 오시라! 자연이되 자연이지 못한 자연인들이여.

사려니는 나의 자연이다. 숲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쉴 곳, 그리고 입을 것까지 내주는 귀하고 감사한 대상이다. 그러나 한 편, 나는 사려니의 이웃인 자연이다. 나는 사려니에게, 세상의 모든 숲과 물과 생명에게 어떠한 이웃이었는가? ‘......’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연을 대하는 인류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고 그 영향력이 번지고 있다. 과거의 우리 잘못은 어쩔 수 없다. 그때는 자연 파괴적 행동 양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것이 잘사는 길인줄 알고 한 것 아니었던가. 그간의 인류 행태가 너무너무 부끄럽지만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가 없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자. 우리가 저지른 그간의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하고 바꾸자. 지체할 수 없다. 시간이 많이 남지도 않았다. 나를 치유하고 살리는 자연을 망가뜨린 후에 나는 도대체 어디서 치유 받고 어떻게 살 것인가?

사려니 ‘에코힐링 숲체험 프로그램’에는 이러한 우려에 대한 노력이 깃들어있다. 음악과 춤, 놀이 그리고 생활 활동들에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였고, 우리가 자연 속에서 얼마나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는지 말한다.

사려니에서 노래한다. 춤을 춘다. 흙을 밟고 걸으며 흙이 되고, 나무를 보며 나무가 되었다. 빗방울을 맞으며 비가 되고, 꽃을 보며 꽃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려니가 되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각자의 관계 속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올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이미 사려니로 물들었다. 나의 부모님께, 나의 배우자에게, 나의 형제에게, 나의 친구에게, 나의 동료에게--- 나는 그들의 사려니가 되리라. 사려니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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