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밭을 가는 틈틈이 글을 읽는 집'..신풍리 경독재(耕讀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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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밭을 가는 틈틈이 글을 읽는 집'..신풍리 경독재(耕讀齋)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8.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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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경작과 독서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사상경독(士尙耕讀) 구절에서 따온 말

신풍리 경독재(耕讀齋)

위치 ; 성산읍 신풍리 816-14번지.
시대 ; 조선(1890)

 

 

신풍리_경독재 편액

 

신풍리_경독재


경독재(耕讀齋)는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밭을 가는 틈틈이 글을 읽는 집이라는 뜻이다. 곰곰이 뜻을 되짚어보면 밭을 갈 듯 공부를 하고, 농사를 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농사나 공부나 본디 서로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속뜻이 읽혀진다. 오롯이 한문 번역과 후학 양성과 향토사학 연구에 바쳐진 素農 오문복 선생의 한평생이 드러난 서재이다.(서귀포신문)

경독(耕讀)이라는 이름은 '선비는 경작과 독서를 숭상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사상경독(士尙耕讀)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라고 생각된다.

소농 선생은 옛 사료 번역, 창작 한시집 발간, 제주도 마애명 조사, 제주향교사 정리, 소암선생추모시집 발간 등 제주 유학(儒學)의 맥을 잇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특히 제주 유맥의 뿌리로 평가받는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 선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발품을 마다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고, 4년간의 작업 끝에 최근 부해 선생의 저서 《부해문집》을 후배들과 함께 완역하는 등 꾸준히 실천적 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소농 선생의 말씀이다.(제주의소리 160915)

“다른 지방도 비슷하지만 제주의 경우 특히 조선 말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기간의 인물이나 작품이나 자료가 거의 다 잊혀졌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더욱 가난해지고 무식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창작할 자격은 되지 않고 단지 없어지면 안 될 것들을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옛 분들의 문화적 자산을 단절됨 없이 이어받으려면 적어도 10명의 전문가는 필요합니다. 명색이 문화문족이라면서 고작 춘향전이나 홍길동전, 시조 천 여수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작품과 기록들을 잘 번역해서 누구나 읽고 보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원래 素農 선생의 집터는 성읍리 일관헌 부근 폭낭 옆집이었는데 1960년대에 버스가 다니기 시작할 때 버스를 돌리지 못한다고 집을 헐게 되어서 기와는 향교에 팔고 목재는 그대로 가져왔다가 이곳 신풍리 816-14번지에 목수 두 사람이 하루만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원래의 상량문을 다시 붙여 놓았는데 광서16년(1890)이라고 되어 있다. 지붕은 우진각이며, 전통 한옥의 격자문, 퇴에는 마루를 놓지 않았고,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제주의 전통 민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본래의 건물을 두어 번 고치기도 했지만 마침내 내려앉아버린 기와를 아예 털어내고 슬레이트 지붕을 씌우고 서재 겸 사랑채로 쓰기 시작한 것이 1995년 전후이다. 마당의 작은 연못은 이때 흙을 파내 쓰면서 생긴 물웅덩이라고 한다. 2008년 12월 수리했다.(서귀포신문 2008.12.06.)
《작성 1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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