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내가 늦게 온 것을 깨달았다’.. 오등동 방선문 임태유(任泰瑜)마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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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내가 늦게 온 것을 깨달았다’.. 오등동 방선문 임태유(任泰瑜)마애명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0.0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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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은 떠나 버렸지만 훗날 다시 오면 내가 왔다간 것을 알겠지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

오등동 방선문 임태유(任泰瑜)마애명

위치 ; 제주시 오등동 방선문(들렁귀) 입구 주변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마애명

오등동_방선문임태유마애모조
 오등동_방선문임태유마애

 

壁間纔一路(벽간재일로) 암벽 사이로 겨우한 가닥 길이 뚫려 있고
自作石門開(자작석문개) 저절로 만들어진 돌문이 열려 있네.
騎鹿遊仙去(기록유선거) 흰 사슴 타고 놀던 신선은 이미 떠났으니
我行覺後來(아행각후래) 나의 이번 발걸음이 늦었음을 깨달았네.
乙酉暮春 任泰瑜(을유모춘 임태유) 을유년 늦은 봄 임태유


방선문 입구 서쪽 벽면에 새겨져 있는 임태유의 시이다. 기구(起句) 3째 글자는 거느릴총(縂)인 것 같은데 『濟州島 磨崖銘』이나 〈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의 숨결〉이란 블로그(운영자 김치년)에서는 纔(겨우 재)로 판독하였다.

김치년의 자료에서는 조선후기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시문집 《가오고략》에 정5품 통덕랑 품계가 나와 관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이유원 활동 당시의 을유년이 1825년과 1885년인데 여기에서 을유년은 고종22년(1885)으로 추정된다.

선인들이 쓴 시에 차운하였으며 전구(轉句)와 결구(結句)는 한정운의 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김치년은 結句를 ‘내가 늦게 온 것을 깨달았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또 다른 해석(현장의 안내판)으로는 방선문에 와 보니 신선은 떠나 버렸지만 훗날 다시 오면 내가 왔다간 것을 알겠지 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을 나타낸 내용이라 하였고, 『濟州島 磨崖銘』에서는‘신선이 떠나면서 훗날 내가 올 줄 알았을까?’라고도 하였다.
《작성 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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