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논문) 고양부(高梁夫) 3을나는 어데서 왔을까?-어원분석에 의한 탐라의 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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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논문) 고양부(高梁夫) 3을나는 어데서 왔을까?-어원분석에 의한 탐라의 새역사
  • 이 문호(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24.01.30 21: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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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호/전북대 초빙교수(일본 동경대 및 전남대 공박, 미국 미네소타대 포닥,기술사)

제주도가 탄생한 역사적 비밀을 풀고자 제주도를 집중연구하고 있는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가 최근  ’고양부(高梁夫) 3을나는 어데서 왔을까?-어원분석에 의한 탐라의 새역사'라는 제목의 제주관련 논문을 본지에 기고해 왔다. 이문호 교수는 이 논문에서 '가파도는 부처의 ‘가피(加被)’ 입고, 마라도의 마라(魔羅)는 ’번뇌(煩惱)‘를 ‘깨라(悟)‘ 불법어를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본지는 이문호 교수가 발표한 이 논문을 2회에 걸쳐 전문 게재하기로 했다. 제주도 연구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편집자주)

 

 

종달리 패총
종달리 패총

 

인도의 북부지방의 탐몰라주는 토양특징인 ‘물 잘 빠지(沒)는 흙갈색 돌이 널려(羅) 있는 지역’이다. 탐라는 탐몰라주(耽沒羅洲)에서 왔다.

‘몰’자와 ‘주’자가 탈락되어 탐라(耽羅). 법주기에 의하면 불교의 16존자 중 6번째 아라한인 발타라(跋陀羅, Bhadra) 존자는 BC 563-483년에 900명의 아라한(阿羅漢)과 같이 탐라 왕국 ‘존자암’에 왔다.

그는 신성한 물(神聖性, Heiligkeit, 4대원소인 물, 불, 공기, 흙의 하나)을 통한 불교의 전파와 나한 등신불(等身佛)을 찾기 위해서다. 또한, 불교의 물질(4대 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 중 물(水)을 생명수로 가장 신성시(神聖性, Heiligkeit)했다.

중문 대포리(大浦里) 포구엔 발타라 존자가 마셨던 용천수 물인 ‘존자물(尊者水)’과 영실 ‘존자암(尊者庵)’에서 대포리까지에 오는 ‘중질(僧路)’이 오늘 날에도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중문리 어원은 스님이 용천수 물을 찾아주어 ‘중물(僧水)’이고 변음되어 ‘중문(中文)’이다.

예로부터 제주인은 한라산이 남녁에서 불어오는 재해를 막아준다는 뜻으로 ‘진산(鎭山)’이라 불렀다.

한라산 폭발 시에 마그마는 백록담 바위로 변했고 분화구 굼부리에는 봉천수 물이 고여 있다. 백록담은 나한이 등신불로 굳어버린 모양새로 한라는 나한(拏漢:漢拏)이고 한라산은 나한산 이다.

탐라의 역사는 나한불교(羅漢 佛敎Arhat Buddism))에서 출발한다.

한라산 이름에 이어 오늘날 제주에서 발타라 존자의 가장 ‘큰 숨결’은 올레길에서 찾을 수 있다. 올레길은 총 26코스, 성산포 시흥리(始興里)가 올레길의 시작점이고 구좌면 종달리(終達里)가 26코스의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기원전 1-4세기 종달리 지미봉(地尾峯160m) 사면(斜面)에 문화 유적지 1-5지역에서 발굴된 고대 유적품이 증거다.

성산포 시흥리의 ‘시(始)’와 종달리의 ‘종(終)’을 살펴보면 천부경(天符經)의 무시무종(無始無終)과 불교의 윤회론을 연상하게 한다.

무시무종과 윤회론은 ‘시작은 곧 끝을 말하고(始卽終), 끝은 곧 시작(終卽始)’임을 암시하고 있다. ‘올레길(道路, Way)’은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와 같다.

또한, 성산포 인근 우도(牛島)는 소머리섬으로 불가에서는 진리의 상징으로 바다에 심우도(尋牛圖)를 그려 놓았다.

인도 발타라 존자 일행의 뗏목배는 기원전 1-4세기 경에 탐라의 동쪽 끝에 뾰족히 나온 높새바람이 늘부는 성산포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제주에서는 섭지코지 지명을 ‘지혜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오봉 전 6선 국회의원 원내총무가 시흥리 출신이다.

섭지 어원은 지혜의 신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의 섭(葉), 지혜의 지(智), 코지는 곳(Place)이란 의미의 합성어로 보이며 발타라 존자 일행이 처음으로 당도한 곳이란 뜻이다.

같은 시기에 서귀포 보목리는 볼래낭개로 불교가 들어왔다는 불래포구(佛來浦口), 지명은 보목포구(甫木浦口)이고 한라산 영실에도 불래악(佛來岳 1280m)이 있다.

보목리 앞바다 ‘지혜의 섬 섭섬(葉島)’의 ‘섭’자와 성산포 섭지코지에 “섭”자가 같은 글자다. 보목리 동쪽 오름이 절오름(제지기오름寺岳洞窟85m), 원래 보목리 오름은 벌목伐木)리, 스님들 목욕터인 ‘정술내(川’僧筒‘)’가 오늘도 흐르고 있고, 마을사람들은 마을 동서를 가로 지르는 ‘보살길’ 옛길을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

지혜의 섬 ‘섭섬(1442.612m)’ 안에 문필봉(文筆奉150m) 3개 산 봉우리가 있어 그 기를 받아선지, 보목리에는 서울대 하운진, 연대 이필욱 교수등 300여명의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인근 서귀포 중문리(中文里) 원래 이름은 승물(僧水 스님이 샘물을 찾아준 물)이 중물(僧水)-중문(中文)이다.

또한 사계리 산방굴사(山房窟寺) 마당 용머리 바다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있는데, 가파도는 부처의 ‘가피(加被)’ 입고, 마라도의 마라(魔羅)는 ’번뇌(煩惱)‘를 ‘깨라(悟)‘ 불법어를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

사계리 이웃마을인 화순리도 속칭’번뇌(고인명교장은 ‘범내(川이 넘침’으로해석)‘다. 벌랑(碧浪 푸른파도)공주는 ’쿠루시오해류‘를 의인화한 이름으로 본래는 ’버랑‘ 그 이름이 지명에 남아 있는 곳은 3을나의 제2 집성촌인 제주시 삼양3동 해변가 마을이 ’벌랑(伐浪 파도가 치다)‘, 3사석이 있는 화북1동 한천어귀가 ’벌랑포‘, 제주시 3도동과 용담2동 사이가 ’벌랑포구(伐浪浦口)‘에 역사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벽랑공주의 초기 이름은 ’벌랑공주‘, 그 후 입맛에 붙는 ’벽랑공주‘로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북방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372년에 전래되었다.

하지만 인도의 발타라 존자는 BC 563-483년경에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직접 탐라에 넘어온 남방불교(Sea Silk Road)에서 왔다고 본다. 탐라국에 불교가 전해진 시점은 이보다 약 855년 앞선(372년+483년=855년) 것으로 추정된다.

(본 논고 관련은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불교학회 50주년기념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대회(2013.11.3.-4일)에서 부분적으로 발표됐고 부만근 제주대 전 총장의 자문을 해 주셨다.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계속)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

 

제주도 서광서리 출신, 1990년 일본 동경대 정보통신 공박, 1984년 전남대 전기과 공박,1985년 미국 미네소타대 전기과 포스트닥, 1981년 통신기술사, 한림원 정회원, 2008년 이달의 과학자상,제주,전북문화상 및 2015년 국가연구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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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형 2024-02-06 21:43:56
@ 고양부 3씨 성이 제주도의 시조다. 인도 발타라 존자께서 나한 구백명을 데리고 신대륙 포교 활동을 떠나서 표류하게된 곳이 제주도인가. 하멜보다 선구자적 식견으로 항해하다가 도착한 탐라. 그곳에서 나한 300명씩 나누어 각자도생으로 살기 최적의 명당을 찾아 자리잡은 곳이 3성의 시조지다. 지인중에 고씨가 있어 제주도 제자 고제성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른적도 있다. 아마 제주도민 종교는 불교가 맥을 같이 하겠다. 인도 불교, 나한, 존자. 지명이 모두 유래깊어 그렇게 느껴진다. 지명 자체가 어렵지만 그 참뜻 의미를 따져 알게되면 신기하다. 제주도의 뿌리와 어원, 근간을 찾아 계속 심지를 파내려가는 교수님의 열정이 부럽다. 369 오름과 굼부리, 삼성, 밭담, 김구 판관, 올레길

문현수 2024-01-31 15:52:48
제주의 역사는 불교와 함께해왔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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