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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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완)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4.0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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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해석(解釋)】 (31)

更誇物産荊揚富(경과물산형양부) 물산(物産)의 풍부함이란 형양(荊揚)을 뺨치고

珎寶精華那可數(진보정화나가수) 진귀하고 정화로운 보배들 어찌 다 셈하리오.

玳瑁蠙珠貝與螺(대모빈주패여라) 대모(玳瑁) · 빈주(蠙珠), 조개와 소라며

靑皮白蠟石鐘乳(청피백랍석종유) 청피(靑皮) · 백랍(白蠟)과 석종유(石鐘乳)라.

※ 운자 : 상성(上聲) ‘麌(우)’운 - 數, 乳

 

【해설(解說)】

“물산의 풍부함이 형주(荊州)와 양주(揚州)를 뺨친다.”란 말은, 하(夏)나라 시절의 형주(荊州)와 양주(揚州)를 두고서 일컫는 말로서, 특히 그곳의 공물(貢物)의 풍부함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서경(書經)》 <우공(禹貢)>편에 보면, “양주에서는 금(金)ㆍ은(銀)ㆍ동(銅) 3가지와 옥돌ㆍ가는 대[篠]ㆍ왕대[簜]를 바치며 …… 형주에서는 살대[菌簵]ㆍ싸리나무를 삼방(三邦)에서 유명한 것을 골라 바친다.”라고 하고 있다.

한편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실린 정조(正祖) 임금의 <제주 ‧ 대정 ‧ 정의의 부로와 백성들에게 하유한 윤음>에서도, “공물(貢物)로 귤을 바치는 것은 하(夏)나라의 양주(揚州)와 유사하다.[包貢橘柚 有似乎夏后之揚州]”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특별히 탐라 백성들이 겪는 여섯 가지의 고역(苦役)의 윤회(輪回)를 혁파하라는 명을 이미 하달했음을 밝히고 있다.

제주는 예로부터 조정에 진상품을 마련해 올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큰 과제였다. 그로 인해 고통스런 역할을 담당해야만 했던 여섯 부류의 종사자를 두고서 ‘육고역(六苦役)’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곧 말을 키우는 목자(牧子), 미역을 따는 잠녀(潛女), 전복을 잡는 포작(鮑作), 귤을 키우는 과직(果直), 진상품을 운반하는 선격(船格), 관청의 땅을 경작하는 답한(沓漢) 등 여섯 부류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해석(解釋)】 (32)

乃知仙藥百千般(내지선약백천반) 선약(仙藥)이 백천(百千) 가지나 됨 이내 알기에

箇裡分明有煉丹(개리분명유연단) 개중엔 분명 불사약의 연단(煉丹)도 있으리라.

收拾鐺中九轉後(수습당중구전후) 모아다가 솥 안에 넣어 아홉 번 굴리고 나면,

定應白日可飛翰(정응백일가비한) 대낮에도 응당 우화등선(羽化登仙)할 수 있겠지.

※ 운자 : 평성(平聲) ‘寒(한)’운 - 般, 丹, 翰

 

【해설(解說)】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금단(金丹)>편에 보면, “단(丹)을 아홉 번이나 (솥에서) 굴린 후 그것을 복용하면 3일 만에 득선(得仙)하게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림 (38)>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상상도

 

【해석(解釋)】 (33)

我來得覩神仙宅(아래득도신선댁) 내가 여기 와서 신선 세계 볼 수 있었으니

採了天台劉阮藥(채료천태유완약) 천태산에서 약초 캔 유완(劉阮)과 같으리라.

願學麻姑看海桑(원학마고간해상) 해상(海桑)의 바뀜 본 마고 비법 배우련다면

應將此身壺中托(응장차신호중탁) 응당 이 몸 호중 별천지에 맡겨야만 하리라.

※ 운자 : 입성(入聲) ‘藥(약)’운 - 藥, 托

 

【해설(解說)】

작은 천태산(天台山)이라고도 불리는 한라산에는 신비한 약초들이 예로부터 많이 자생하는 걸로 유명하다. 불로초(不老草), 시로미, 영지버섯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유신(劉晨)과 완조(阮肇) 두 사람이 함께 천태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두 여인을 만나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10세대가 지나가 버렸다는 이야기에서 생겨난 게 바로 ‘유완반도(劉阮返棹)’의 고사이다.

<그림 (39)> 청(淸) ‧ 황산도(黃山壽)의 <유완채약도(劉阮採藥圖>

 

참고로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해 바다로 이어지는 한내[大川] 같은 계곡에는 웅장하고 기괴한 바위들이 많이 있어 시인 묵객들의 화유(花遊) 장소로도 인기가 높아 즐겨 찾으면서 이들이 남겨놓은 석각명(石刻銘)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방선문(訪仙門) ‧ 은선동(隱仙洞) ‧ 환선대(喚仙臺) ‧ 우선대(遇仙臺) ‧ 선유담(仙遊潭) 등과 같이 공통으로 신선 사상을 암시하는 제명(題銘)들도 여럿 보이기도 한다.

 

【해석(解釋)】 (34)

紫殿九重憶聖君(자전구중억성군) 자신전(紫宸殿) 구중궁궐의 성군을 생각하고

白雲千里戀雙親(백운천리연쌍친) 흰 구름 천 리 밖의 양친 부모를 연모하네.

此身猶未全忠孝(차신유미전충효) 이 몸 아직도 온전한 충과 효 못다 이뤘으나

不忍堪爲方外人(불인감위방외인) 차마 방외인 신세가 됨을 감당하진 못하리라.

※ 운자 : 평성(平聲) ‘眞(진)’운 - 親, 人

 

【해설(解說)】

충효(忠孝) 사상을 고취(鼓吹)시키기 위한 취지를 담아 조선조 세종 때에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란 책이 있다. 그림책과 같이 모든 사람이 알기 쉽도록 매편마다 그림을 넣어 사실의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는가 하면, 본문 끝에는 원문을 시구(詩句)로 요약해 놓고 있기도 하다.

<그림 (40)>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체계

 

최부는 제주에서 경차관 임무를 수행하던 차에 부친상을 당했다는 급한 전갈을 받고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서 제주를 떠나가게 되었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제일 실천 덕목으로 삼는 조선조 유가의 전통상 부친상을 치르는 일만큼 달리 중대한 일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식 된 도리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선 나머지 기상 여건이 최적이 아닌 상태에서 배를 탄 게 화근(禍根)이 되었다.

추자도를 채 못 미쳐감에 일기 시작한 풍랑을 만나 표류가 시작되면서 거의 10일 가까이 해상에서만 사투를 벌이다가 겨우 중국의 절강성 연안에 닿으면서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처음엔 왜구로 오인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최부 자신의 해박한 지식과 한문 소통 능력에 힘입어 중국의 관리, 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면서도 조선 선비의 자존심을 굳게 지켜나갈 수 있었다.

중국으로 보내졌던 조선 사행단의 사행길에서 전혀 내왕이 허용되지 않았던 중국 강남지역의 사정을 육로와 운하길을 따라 북경에 이어질 때까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음은 큰 소득이자 흥미로움을 자아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했다.

특히 중국 자금성에서 황제를 알현하게 될 때, 자신의 복장을 상복(喪服) 차림인 채로 하겠노라고 고집하다가, 중국식 예법에 따라 황제를 알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그들 요구에 잠깐만이나마 따를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는 글에서 그의 효심(孝心)이 얼마나 지대했던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해석(解釋)】 (35)

豈獨瀛洲在此地(기독영주재차지) 영주(瀛洲) 땅, 어찌 유독 이곳에만 있으리오

求之人世不難致(구지인세불난치) 인간 세상에서 찾아도 얻기 어렵진 않으리라.

莫如還向華山陽(막여환향화산양) 삼각산 양지쪽으로 다시 돌아감만 못할지니

保我平生伊尹志(보아평생이윤지) 내 평생 이윤(伊尹)의 뜻 지키며 살아가리라.

※ 운자 : 거성(去聲) ‘寘(치)’운 - 地, 致, 志

 

【해설(解說)】

대개 산(山)과 강(江)의 위치가 풍수적 음양(陰陽) 논리를 적용해 상징화할 때면, 그 위치가 대조적으로 나타나게 되곤 한다. 예컨대 ‘산음(山陰)’이라 하면 산의 북쪽을 지칭함이 되고, ‘수양(水陽)’이라고 하면 강의 북쪽을 두고 일컫는 말이 된다.

조선의 수도를 한양(漢陽)이라 호칭함도 한수(漢水)의 북쪽을 의미하는 말로서 생겨난 지명인 셈이다. 따라서 위의 시구 중 ‘화산양(華山陽)’은 ‘화산의 남쪽’이라 풀이된다.

화산은 본래 중국 서안(西安)에 위치한 서악(西岳)을 두고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조선 조정의 경복궁 뒤쪽에 있는 삼각산을 ‘화산(華山)’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최부는 경차관(敬差官)으로서의 제주에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한양으로 돌아가서 임금님을 보필하면서 재상의 표상(表象) 격인 이윤(伊尹)의 삶을 닮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을 이 시문에 담아 피력하고 있다.

한편 이윤(伊尹)은 은(殷)나라 탕왕(湯王)을 도와 재상 아형(阿衡)의 지위에 오른 사람으로서 중국 최초의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달리 이지(伊摯)라고도 하는데 은허의 갑골문에서는 간략하게 이(伊)라고만 씌어져 있기도 하다. 윤(尹)은 본래 이름이 아니고 관명(官名)으로서 달리 아형(阿衡)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천자문(千字文)》의 문구 가운데, ‘반계이윤(磻溪伊尹) 좌시아형(佐時阿衡)’이란 게 있다. 여기서 반계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을 도와 재상의 반열에 오른 강태공으로도 유명한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두고 이름이다. 본래는 이윤이 반계보다 시기상 앞선 인물임에도, 운율 구조의 특성으로 뒤로 놓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림 (41)> 이윤(伊尹) 상(像)

 

이윤은 본래 요리사 출신의 재상으로도 유명하다. 곧 요리하는 방식에 비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탕왕에게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 역할을 들어 상징화한 사례로 ‘소금과 매실[鹽梅]’이 있다. 이들 재료는 음식을 만들 때 짠맛과 신맛을 조화시킨다. 이렇게 알맞게 간을 맞춘다는 의미로 전(轉)하여 신하가 이러한 두 가지를 조화시켜 군주(君主)의 덕치(德治)를 보좌하는 것을 말함에도 비유되어 왔다.

이는 ≪서경(書經)≫ <상서(商書) ‧ 열명편(說命篇)>에서 “그대는 짐의 뜻에 훈계하여 만일 주례(酒醴)을 만들면 그대는 바로 누룩이 되고, 만일 화갱(和羹)을 만들거든 염매(鹽梅)가 되어 주오.[爾惟訓于朕志 若作酒醴爾惟麴蘖 若作和羹爾惟鹽梅]”라고 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제주에서 경차관의 임무를 수행하던 작자인 최부가 자신의 앞에 놓인 귀로(歸路)의 험난함을 어찌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었으리오. 그가 제주를 떠나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열사흘간의 표류 끝에 겨우 목숨을 보전해 살아서 돌아왔다. 그의 꿈과는 크게 벗어나긴 했지만, 그 대신에 그는 ‘표류기(漂流記)’를 남긴 작자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일본 승려 옌닌(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이태리 상인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과 더불어 최부의 《표해록(漂海錄)》은 이들과 나란히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는데 세계 학계가 공히 인정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염두에 두어 살펴봐야 할 사항이 있다.

예상컨대 최부는 이 당시 제주에서 쓴 <탐라시 35절>의 원본을 행장에 지니고 돌아가다가 표류로 인해 이 작품을 분실했던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기에 그의 유고 문집인 《금남집(錦南集)》에는 이 <탐라시 35절>이란 시가 실릴 법도 한데 빠져있다.

그렇지만 불행 중 다행한 일은, 최부가 이 작품을 제주에서 완성하고 난 뒤, 제주목의 서리에게 베껴 쓰도록 해 그 한 부를 제주목에 보관토록 남겨두었다는 사실이다.

그 뒤로 110여 년이 지난 뒤인 선조 34년(1601)에, 제주에서 발생한 ‘길운절(吉雲節) ‧ 소덕유(蘇德裕) 사건’에 따른 안무어사로 제주를 찾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선생에 의해 그 작품이 제주목관아에 남아있는 걸 발견하고, 이를 《남사록(南槎錄)》에 소개함으로써 이 시의 존재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어려운 시기에 제주를 찾아 탐라의 역사에 대한 문헌자료가 거의 없는 형편에서, 이처럼 장편 서사시적 형태로 귀중한 작품을 써낸 금남(錦南) 최부(崔溥)란 작가의 학문적 양식과 훌륭한 노고를 잊을 수 없다.

더불어 하마터면 그 존재가 묻혀버릴 뻔했던 소중한 이 작품을 발굴해내어 《남사록》이란 책에 실어 세상에 알린 청음 김상헌 선생의 노고 또한 값진 일임을 새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끝>

 

<각주모음>

1) 금남(錦南) 최부(崔溥, 1454~1504)는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文臣)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고 전라남도 나주(羅州) 출신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그의 나이 29세 되던 성종 13년(1482)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었고, 33세 되던 성종 17년(1486)에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과 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역임했다. 제주에서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업무를 수행하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배를 타고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 열사흘간의 표류 끝에 중국의 절강성 해안에 표착하게 되었다. 최부 일행 43명은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 조선임이 밝혀져 항주(杭州)로 이송되었고, 이어 대운하를 거쳐 북경에 이르렀다가 요동을 경유해 조선으로 귀환하였다. 귀국후 곧바로 성종의 명을 받아 《표해록(漂海錄)》을 3권으로 기록해냈다.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붕당을 이뤄 국정을 비난했다는 죄목으로 함경도 단천에 유배되었다가 6년 뒤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처형되었다. 미암(眉庵)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은 최부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2) 校讎(교수) : 서적을 대조하여 틀린 것을 바로잡음. 여기서 ‘校(교)’는 혼자서 교정하는 일을 뜻하고, ‘讎(수)’는 두 사람이 대조 ‧ 교정하는 일을 두고 이름이다.

3)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 지리지로서, 지리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을 담은 종합 인문 지리서의 성격을 지녔다. 국가적 사업으로 세조(世祖) 때부터 진행되어 온 이 책의 편찬 및 간행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추진되었다. 따라서 다른 편찬 사업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지식층을 대표하는 명망 있는 관원들이 대폭적으로 참여하였고, 최부 또한 그 일원으로 이 대열에 참여했다. 성종 17년(1486)에 이 책의 완성을 본 이후 두 차례의 교열이 있은 뒤에 중종 25(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총 55권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최부의 시편을 소개하는 《탐라시 35절》의 각주를 비롯한 역자의 해설에선 최부가 교열자로 참여해 완성을 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란 책명으로 일관해 소개할 것이다.

4) 閱歲(열세) : 한 해를 보냄.

5) 講究(강구) : 연구하여 대책을 세움.

6) 襟帶(금대) : 본래 ‘옷깃과 허리 띠’라는 뜻이지만, 산과 강이 옷깃과 허리띠처럼 둘러막음이란 의미로 쓰여지면서 험요(險要)한 지세의 비유로도 쓰인다.

7) 詳悉(상실) : 빠짐없이 상세히 앎.

8) 舊乘(구승) : 옛 역사서. 보통 ‘乘志(승지)’라고 하면 ‘乘(승)’은 진(晉)의 사서(史書)를, ‘志(지)’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제각기 의미하기도 한다.

9) 竊念(절념) : 사사로이 여러모로 생각함. ‘竊(절)’은 본래 훔치다란 의미이지만, 여기선 겸사(謙辭)로 쓰여 가만히, 혹은 슬며시란 의미로 쓰였다.

10) 意表(의표) : 뜻 밖. 언외(言外)의 뜻.

11) 鰌潮(추조) : 파도가 세차게 읾. 참고로 ‘鰌(추)’는 ‘鰍(추)’와 같은 자로서 참고래를 뜻함. 보통 ‘鰌海(추해)’라고 해서 ‘파도가 세차게 이는 바다’라는 의미로도 쓰임. 참고로 《태평어람(太平御覽)》(권68)<지부(地部) 33편>에 보면, 해추(海鰌)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곧, “<풍토기(風土記)에서 밝히길, ‘세속에서 말하는 예(鯢)란 일명 해추(海鰌, 곧 바다고래)라고 한다. 예는 길이가 수천 리이고, 바다 밑의 동굴에 산다. 동굴에 들어가면 바닷물이 불어나 밀물이 되고, 동굴에서 나오면 바닷물이 들어가 썰물이 되는데, 출입에 절도가 있어서 조수(潮水)가 규칙적이다.[風土記曰俗說鯢一名海鰌鯢長數千里穴居海底入穴則水溢爲潮出穴則水入潮退出入有節故潮水有期]”라고 함이다.

12) 鼉浪(타랑) : 악어[鼉] 같이 격렬한 물결.

13) 靑螺(청라) : 본래 ‘푸른 소라’의 뜻이지만 한편 멀리 바라보이는 푸른 산의 비유로도 쓰임.

14) 巨靈擘破勢周遭撑(거령벽파세주조탱) : “거령(巨靈)이 손바닥으로 깨뜨린 형세 널리 퍼져있네.” 이 구절은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 중 “거령(巨靈)인 비희(贔屭, *곧 하신(河神))가 있는 힘을 다 써서 높은 곳은 손바닥으로 치고, 먼 곳은 발로 밟아서 둘로 나눴다.[巨靈贔屭高掌遠蹠]”’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여 참조한 듯하다.

15) 㗸蛤(함합) : 대합조개를 물다.

16) 白雪(백설) : ‘白雲(백운)’의 오기인 듯하다.

17) 東巫峽(동무협) : ‘동무소협(東巫小峽)’을 두고 이름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주목(濟州牧) ‧ 고적(古跡)>조에 보면, “고기(古記)에 이르길, ‘한라산의 일명은 원산(圓山)이니 곧 바다 가운데 있다는 원교산(圓嶠山)이고 그 동쪽은 동무소협(東巫小峽)인데 신선이 사는 곳이다. 또 그 동북쪽에 영주산(瀛洲山)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탐라를 일컬어 동영주(東瀛州))라 한다.’라 했다.”라고 함이다.

18) 第幾疊(제기첩) : 몇 번이나 울렸던가. 여기서 ‘疊(첩)’은 양수사로서 악곡 연주의 횟수를 세는 단위로 쓰였다.

19) 繚繞(요요) : 연기가 빙빙 돌며 올라가는 모양.

20) 秦童漢使(진동한사) :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서복(徐福) 일행과 함께 온 동남동녀(童男童女)들과,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보낸 사신(使臣)을 두고 일컬음. 진시황이 신선술에 빠져 동해에 불로장생약을 구하러 사람들을 보낸 뒤로, 한 무제(漢武帝, 기원전 156~기원전 87)가 또 황로사상(黃老思想)을 좋아하자 이소군(李少君)을 시작으로 방사(方士)들이 들끓었는데, 이들이 동해를 오가다 봉래산(蓬萊山)에서 신선 안기생(安期生)을 보았다고 하자 무제는 이들을 파견하여 신선을 찾도록 하였다고 한다.

21) 朱陳(주진) : 본래 주(朱)씨 성과 진(陳)씨 성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현재 중국 강소성(江蘇省) 서주시(徐州市) 풍현(豊縣) 조장진(趙莊鎭)이 여기에 해당한다.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주진촌(朱陳村)>이란 오언고시에 보면, “서주의 옛 풍현에 마을 하나 있는데 주진촌이라 하네. 현에서 가자면 백여 리인데, 뽕나무 삼나무 푸르고 향기롭네. … 살아서는 주진촌 사람으로 살고, 죽어서는 주진촌의 흙으로 돌아가네. … 한 마을에 오로지 두 성씨만이 있어서 대대로 두 집안이 혼인을 하네.[徐州古豊縣 / 有村曰朱陳 / 去縣百餘里 / 桑麻春氛氲 … 生爲村之民 / 死爲村之塵 … 一村有兩姓 / 世世爲婚姻 … ]”라고 소개하고 있다.

22) 鷄林(계림) : 신라 왕성인 김씨(金氏)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강설화(誕降說話)가 전하는 숲. 곧 신라(新羅)를 상징한 말이다.

23) 已艤(이의) : 이미 배를 댐. 이미 배가 닻을 내리고 머무름.

24) 梯航款叩(제항관고) :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 정성으로 머리를 조아림.

25) 松岳龍興(송악용흥) : 고려(高麗)의 창업(創業)을 이룬 왕건(王建)의 고사를 빗대어 표현했다. 왕건의 부친인 왕융(王融)의 초명이 용건(龍建)이었다.

26) 黑金(흑금) : 흑금(黑金)이란 철(鐵)의 이명으로서 곧 철원(鐵原)을 지칭한다. 이는 철원을 중심으로 태봉(泰封)을 개국한 궁예(弓裔)의 고사를 상징함이다.

27) 候風島(후풍도) : 추자도(楸子島)의 이칭(異稱)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주목 ‧ 산천>조에 보면 추자도에 대한 설명에서 보인다. 본래 ‘후풍(候風)’이란 배를 타기 전 순풍을 기다림의 뜻이다. 역사적으로 삼별초 토벌 차 제주로 향하던 김방경(金方慶)이 몽고 흔도(忻都)와 더불어 추자도에 머물며 바람을 기다렸다가 바람이 잦아지자 진격하여 크게 물리쳤는데, 이로부터 탐라 사람들은 추자도(楸子島)를 두고 후풍도(候風島)로 칭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28) 金方慶(김방경) : 삼별초 토벌을 위해 여몽연합군이 쳐들어온 고려 원종(元宗) 14년(1273)의 시기를 말하며, 이때 고려군의 장수가 김방경(金方慶)이다.

29) 都統瑩(도통영) :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고려 공민왕(恭愍王) 23년(1374)에 명월포(明月浦)로 진입한 도통사(都統使) 최영(崔瑩)을 두고 이름이다.

30) 通精(통정) : 삼별초의 장수 김통정(金通精)을 두고 이름이다.

31) 池隍(지황) : 성시(城市)와 같은 말이다.

32) 劍鋩(검망) : 칼끝. 검봉(劍鋒)과 같은 말.

33) 鱣鯨(전경) : 철갑상어와 고래. 곧 반란의 무리를 상징한 표현이다.

34) 弋獵(익렵) : 사냥함.

35) 贏得(영득) : 이윤으로서 얻음. 또는 그 소득.

36) 丹詔(단조) : 칙명(勅命)이나 조서(詔書). 보통 붉은 글씨로 씌어 지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37) 跋涉(발섭) :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길을 감. 여행길이 힘들고 어려움의 비유.

38) 膽相照(담상조) :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준말. 간과 쓸개를 서로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39) 卸征鞍(사정안) : 출정의 길에 오른 말을 풀어 놓다. 여기서 ‘卸(사)’는 ‘수레를 멈추고 말안장을 풀어놓다’란 의미이다.

40) 槎浮(사부) : 뗏목을 타다. 본래 ‘槎(사)’는 뗏목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사신(使臣)이 타는 배’의 상징으로 쓰였다

41) 鵬摶(붕단) : 붕새가 비상함. 여기서 ‘摶(단)’은 빙빙 도는 것.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붕이 남극 바다로 옮아갈 적에는 물을 쳐서 삼천 리나 튀게 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나 올라가며, 6개월을 날아가서야 쉬게 된다.[鵬之徙於南冥也水擊三千里摶扶搖而上者九萬里去以六月息者也]”란 표현이 있다.

42) 驀地(맥지) : 돌연. 갑자기.

43) 掣(철) : 잡아끌다.

44) 迓船(아선) : 영접하는 배.

45) 梭(사) : 베틀 부속품의 하나인 북. 북이 왔다 갔다 함처럼 그 왕래가 빈번하거나 빠름의 비유.

46) 影蘸(영잠) : 그림자가 물에 잠김.

47) 逸興(일흥) : 세속을 벗어난 풍류 있는 흥취.

48) 日暈(일훈) : 햇무리.

49) 巉嵓(참암) :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은 바위. 여기서 ‘嵓(암)’은 ‘巖(암)’과 같은 자이다.

50) 磊落(뇌락) : 돌이 많이 쌓여있는 모양.

51) 拜跪(배궤) :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음.

52) 聒耳(괄이) : 시끄러워 귀가 따가움.

53) 齁齁(후후) : 코 고는 소리의 형용.

54) 杖皆鳩(장개구) : 지팡이가 모두 구장(鳩杖)이다. 여기서 ‘鳩杖(구장)’이란 지팡이 손잡이 부분인 꼭대기에 비둘기가 새겨진 지팡이로서 대개 나이 70이 넘은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하사품이다. 곧 지팡이가 모두 구장(鳩杖)이라 함은 결국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음을 빗대어 표현함이다. 참고로 《예기(禮記)》<왕제(王制)>편에 보면, “50세에 집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60세에 고을에서 지팡이를 짚고, 70세에 도성에서 지팡이를 짚고, 80세에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다. 90세가 된 자는 천자가 문안할 일이 있으면 그 집으로 찾아가되 진수성찬이 뒤따른다.[五十杖於家六十杖於鄕七十杖於國八十杖於朝九十者天子欲有問焉則就其室以珍從]”라 했다.

55) 抛擲(포척) : 내던짐. 내버림. 버려 둠.

56) 土人田頭起墳稱照里戱役使平民(토인전두분기칭조리희역사평민) : “본토박이들은 밭머리에 무덤을 쌓는 일을 조리희(照里戱)라고 칭하는데, 일반 백성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한다.” 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소개된 ‘조리희’ 관련 기록과 비교할 때 차이를 드러낸다. 이는 아마도 청음 김상헌이 자신의 저술인 《남사록(南槎錄)》에 옮겨 소개하는 과정에서 《동국여지승람》과의 기록과 착오를 일으킨 듯하다.

57) 鞦韆(추천) : 그네뛰기.

58) 騈闐(병전) : 모여 있음. 매우 많음의 형용.

59) 負甁(부병) : 병(甁)을 짊어지다. 여기서 ‘병(甁)’이란 허벅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는 ‘목통(木桶)을 짊어졌다’라고 한 표현이 있어 이것과 비교가 된다. 결국 이 기록에 의하면 최부가 제주를 찾았던 15세기 후반에도 허벅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흥미 있는 사료인 셈이다.

60) 鄒魯(추로) : 맹자(孟子)의 고향이 추(鄒)나라이고, 공자(孔子)의 고향이 노(魯)나라이기에 공맹(孔孟)을 상징하는 말로 ‘추로(鄒魯)’라고 빗대어 표현한다.

61) 杏壇(행단) : 공자(孔子)가 뭇 제자에게 글을 가르친 곳으로, 원래 지명(地名)이었으나 후일에 공자의 묘중(廟中)에 단(壇)을 만든 것을 이름. 보통 향교(鄕校)로 통칭된다.

62) 天台劉阮(천태유완) : 천태산(天台山)의 유신(劉晨)과 완조(阮肇). 《소오부지(紹奧府志)》에 이르길, “후한(後漢) 때 유신(劉晨)과 완조(阮肇)가 천태산(天台山)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길을 잃고 13일 동안 복숭아를 따먹고 물을 마시는 사이에 무 잎과 호마반(胡麻飯) 한 그릇이 물에 떠내려왔다. 그래서 멀지 않은 곳에 인가(人家)가 있음을 짐작하고 그 물을 건너 또 하나의 산을 넘어가니, 두 미녀가 나타나 두 사람을 친절히 맞이하여 반년동안 동거하였다고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63) 麻姑看海桑(마고간해상) : 해상(海桑)을 본 마고(麻姑). 이른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로도 유명하다. 갈홍(葛洪)이 찬(撰)한 《신선전(神仙傳)》 <왕원(王遠)>편에 보면, “마고(麻姑)가 스스로 말하길 ‘그대를 만난 이래 동해 바다가 세 번 뽕나무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麻姑自說接待以來已見東海三爲桑田]’라고 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64) 壺中(호중) : 신선 호공(壺公)의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본래 ‘호중지천(壺中之天)’으로 별세계(別世界)를 일컫는다.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호공(壺公)>편에 보면 여남인(汝南人)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 파는 노인 호공(壺公)을 만났던 고사의 내용이 실려 있다. 한편 당(唐)나라 때 시인 원진(元稹)의 <유서시(幽栖詩)> 중에 ‘壺中天地乾坤外(호중천지건곤외)’라는 시구가 있다.

65) 紫殿九重(자전구중) : 자신전(紫宸殿)의 구중궁궐(九重宮闕). 본래 자신전(紫宸殿)이란 궁정(宮殿)의 한 이름으로서 당(唐)나라나 송(宋)나라 때에도 이 이름을 습용(襲用)했다. 한편 ‘구중(九重)’ 또한 궁궐을 상징하는 말로서 왕성(王城)의 문이 아홉 겹으로 만들어져서 붙여진 명칭이다.

66) 還鄕(선향) : 본래 ‘환향(還鄕)’이란 ‘고향으로 돌아감’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의 독음(讀音)이 ‘선향(還鄕)’이라 할 때는 ‘방향을 돌림’의 뜻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새김이 시어의 문맥상 자연스런 해석이 된다고 본다.

67) 華山陽(화산양) : 화산(華山)의 볕드는 곳, 곧 화산의 남쪽을 지칭함. 참고로 화산(華山)은 중국 고대의 오악(五嶽) 중 하나인 서악(西嶽)으로 칭해져오기도 했는데, 섬서성(陝西省) 화음(華陰)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화산양(華山陽)’이란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곳이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한양의 삼각산(三角山) 남쪽의 의미로 해석된다. 이의 사례로 남효온(南孝溫)의 《추강집(秋江集)》에 실린 오언고시 <낮잠 자다가 어머님 꿈을 꾸다[晝寢 夢慈堂]>란 시에 보면, “꿈속의 맑은 영혼 두 강을 건너가[爽靈渡二江], 삼각산 남쪽에서 어머님 문안했지.[定省華山陽]”라고 한 대목이 보인다.

68) 伊尹(이윤) : 중국 고대 은(殷)나라의 어진 재상. 이윤(伊尹)은 명현(名賢)으로서 그가 탕왕(湯王)을 보좌하여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傑王)을 멸망시킨 일은 유명하다. 그래서 그를 두고 존칭(尊稱)하여 ‘아형(阿衡)’이라 불리곤 했는데, 《천자문(千字文)》에도 ‘磻溪伊尹(반계이윤) 佐時阿衡(좌시아형)’이란 문구가 실려 있기도 하다.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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