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한국전쟁 참전, 전사한 수산리 출신 기리는 비석..수산1리 충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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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한국전쟁 참전, 전사한 수산리 출신 기리는 비석..수산1리 충혼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4.12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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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지원입대, 징집 등 각 전선에서 용전분투하였다

수산1리 충혼비

위치 ; 성산읍 수산리 703-1번지(수산서남로 17). 수산1리사무소 마당
시대 : 대한민국(1956년)
유형 : 충혼비
규격 : 높이 110㎝, 너비 41㎝, 두께 21㎝

수산1리_충혼비


수시로10번길36의 앞(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을 이사무소로 옮겨 세웠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수산리 출신 군인들을 기리는 비석이다.

수산리에서는 1950년 8월 5일 청년 20여명이 해병대에 지원입대했으며, 9월 1일에는 만17세 이상 35세 미만의 젊은이 대부분이 육군으로 징병되었다.

10월 1일에 20여명이 징집되어 각 전선에서 용전분투하였다. 전공을 세워 훈장을 받은 사람도 많은 반면 혁혁한 공을 세우고 산화한 용사도 많았다.

(수산리지) 비문은 다음과 같다.


〈嗚呼 壯哉라 同志勇士諸君은 大義로 싸우고 忠誠에 죽으니 名譽 山보다 무겁고 功績이 바다보다 깊도다.

六二五事變은 戰史에 밝혀 있거니와 敵軍이 南侵에 百萬戰友 總力을 集中하여 總擊退를 시켰으니 戰火는 더욱 熾烈하였다.

이 때 勇士諸君은 忠憤에 불 일고 義慨에 날뛰어 生死超越한 勇戰敢鬪中 悲極慘極의 最後로 快絕壯絕의 大韓獨立萬歲를 高唱하고 千秋歷史에 꽃다운 이름을 남기면서 드디어 散華하였다. 嗚呼 壯哉로다.

이에 片石을 다듬어 數行記念辭를 記錄하여 朝夕往來에 追憶이 새로우려 하며 尙且將來愛國志士의 龜鑑이 되어 忠義의 精神을 길이 發揮하리라. 檀紀四二八九年十二月日 水山里在鄕軍人 一同〉


〈陸軍中尉 高泰昊 海兵一等兵曹 康順鳳 海兵二等兵曹 康文範 陸軍二等中士 康千昱 海兵三等兵曹 吳丁休 海兵三等兵曹 康壽澤 陸軍下士 康承逑 陸軍一等兵 高夢良 陸軍一等兵 高昌保 陸軍一等兵 吳南崑 陸軍二等兵 韓景河 陸軍二等兵 梁仁權 陸軍二等兵 金泰景 陸軍二等兵 高甲出 陸軍二等兵 韓奉孝 陸軍二等兵 韓順範 陸軍二等兵 康聖武 陸軍二等兵 高千重 陸軍二等兵 康好鉉 陸軍二等兵 康癸澤 陸軍二等兵 趙明春 總二十一名〉
《작성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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