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사평마을에 속한 작은 마을..오라2동 고지레(잃어버린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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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사평마을에 속한 작은 마을..오라2동 고지레(잃어버린마을)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4.18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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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레또는 곶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라2동 고지레(잃어버린마을) 터

위치 ; 제주시 오라2동 968-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없어져 버린 마을 터

오라2동_고지레마을터

 


고지레는 오라2동 사평마을과 인접하여 12가구에 50여명이 주민이 살았던 마을이다. 사평마을에 속한 작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의 세대주로는 강태운, 문경길, 양석현, 이명학, 홍순검 등이 알려져 있다.

1949년 1월 1일 죽성에 주둔했던 제2연대(연대장 함병선 대령) 3대대(대대장 정준철 소령)의 초토화 작전에 따라 일시에 마을이 소각되었고, 주민들은 강제로 피난생활을 해야 했다. 3년 후에 연미마을과 사평마을이 복구될 때에도 고지레는 북구되지 않았다.

표석은 오라2동 966-1번지(오남로82) 길가에 세워져 있다. 표석에는 〈옛 마을 터(고지래 마을) 고지래라는 말은 원래 곶 올레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예로부터 숲과 나무가 무성하여 한라산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이용하였고, 사람들이 나무하러 갔다 오다가 이곳 하천에서 잠시 쉬어 갔다고 해서 고지레또라고 하였다.

고지래 마을은 한천(漢川)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4·3 사건 이전에는 모두 12가구가 거주하였으나 4·3사건으로 인하여 마을이 소개(疏開)되면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버렸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고지레또는 곶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이 유배가 풀리자 한라산에 오를 때에도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표석이 있는 곳 바로 동쪽에 고지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마을은 고지교 서쪽 일대에 있었다.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였다는 소로기샘은 소로기바위와 함께 고지교 다리 공사 때 멸실되었다.

마을 터에는 전기차충전소, 산후조리원, 견인공사, 교회 등이 최근 2010년을 전후하여 들어서고 있어서 마을의 흔적은 거의 없고 경작지로 남아 있는 밭에 대나무숲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한천으로 합류하는 지류인 토천 서쪽은 사평마을에 속한다.
《작성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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