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돌담 밭 속 제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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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돌담 밭 속 제주인
  • 임광철
  • 승인 2013.06.0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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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철 서귀포시 기획담당

임광철 서귀포시 기획담당
제주인은 돌담 밭에서 태어나 돌담 밭에서 자라다 돌담 밭 안에서 죽는다.
 

이 말은 50년 전까지 제주사람 거의 모두가 해당되었던 말이다.
 

과거 우리 제주인은 돌담으로 둘러 쌓인 집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돌담으로 쌓여진 밭에서 농사를 지었다. 100평에서 500평 사이의 우영 밭에서 나물을 키우고 지슬을 갈고, 고구마를 키웠다.
 

또한 목축도 하였는데, 소를 몰고 마을 공동목장으로 테우리가 되어 가축을 돌봤다.
말테우리들도 상잣담 안쪽에서 말과 소를 키웠다.
 

바다에서도 원담이라는 것을 만들어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
 

과거 우리네 제주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담과 연결되어 있었다.
 

또 임야를 밭으로 만들고, 그곳에 밭담을 새로 쌓기도 하였다.
 

임야를 개간하여 밭이나 과수원을 만들면서 나무를 베어내었다.
 

베어낸 나무는 아주 좋은 땔감으로 썼고, 또 나무 뿌리도 캐어내여 땔감으로 썼다.
 

40여 년 전 과수원 주변에 돌을 모아 담을 쌓던 풍경이 그려진다.
 

담은 스스로 쌓는 경우도 있었고, 잘 쌓지 못하는 분은 동네 석공에게 부탁하여 담을 쌓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밭과 과수원에는 감귤 나무를 심고, 무도 갈고 배추도 갈고 유채도 갈면서 우리네 제주인은 살아왔다.

 

바람 많고 돌 많은 제주에는 돌을 쌓아 만든 돌담들이 많다.
 

그 돌담들이 어떤 장소에 있고 어떤 기능들을 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
 

제주 전통 초가집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은 '축담'이고 집까지 골목으로 길게 이어진 돌담은 '올렛담', 밭과 밭을 경계로 하는 '밭담'이다.
 

이렇게 우리네 제주 사람들은 돌에서 태어나 돌담 속에서 생활했다.
 

또 죽으면 또 산담 안으로 돌아간다.
 

과거 제주인은 돌담 안에서 나고 돌담 안에서 생활하다 돌담 안으로 돌아가는 숙명이었다.
 

그런 돌담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국가에서 농어업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돌담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신청 중이다.
 

우리가 늘 보고 늘 같이한 돌담. 돌담이 신화가 되고 보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과 같이 하였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돌담이 아름다운 보물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조상이 남긴 문화이면서 최고의 유산인 돌담.
 

자긍심으로 얼싸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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