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논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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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논고악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4.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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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843m 비고: 143m 둘레: 2,789m 면적: 567,616㎡ 형태: 원형

 

논고악

별칭: 논고오름. 논고름. 論古岳

위치: 남원읍 신례리 산2-1번지

표고: 843m 비고: 143m 둘레: 2,789m 면적: 567,616㎡ 형태: 원형 난이도: ☆☆☆☆

 

 

세 봉우리를 거느리고 원형분화구를 지진 특별한 산 체 ...

 

한라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오름이다.한자(論古岳)로 표기한 내용이 말해주듯 산 체의 전반적인 상황을 두고서 명칭을 붙이는데 고민이 따랐던 것 같다. 옛 모습에 관한 내용이나 주변 환경을 논하는데 있어서 쉽지가 않았던 때문인지 이와 관련한 자세한 유래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논고악을 줄여서 논고름이라고도 하나 보통은 논고오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논고’는 선비가 학문을 논하던 장소라고도 전해지고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정확한 어원은 알 수가 없고 한자(論古岳) 표기 역시 훗날에 붙여진 것이다.성널오름, 바늘오름, 어후악 등과 함께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에 걸쳐 분출된 화산 활동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한라산을 주봉으로 그 기슭에 이루어진 화산체 중 하나이다.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의 논고교(橋) 북쪽 약 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 상 남원읍 신례리와 한남리의 경계에 걸쳐져 있으며 한라산 국립공원에 포함이 된다. 8부 능선에 위치하면서 면적이 말해주고 비고(高) 등에서 나타나듯 규모가 큰 산 체임을 알 수가 있다. 원형의 오름이면서도 특별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북쪽과 남쪽, 동쪽에 세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면서 그 안에 원형 분화구가 둥그렇게 패어 있는 산정 화구(습지)를 이루고 있는데 그 깊이가 53m나 된다.

이 화구 내부의 사면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은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 잡목들과 습지식물들이 식생하고 있다. 세 봉우리를 지녔지만 정해진 탐방로와 전망대가 없는 데다 울창한 숲으로 가려져 전망이 용이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트인 공간을 통하여 남쪽 멀리로는 서귀포 해안을 포함하여 제지기오름과 섶섬(숲섬)이 마치 형제처럼 이어져 있는 모습 등을 관찰할 수가 있다.

제주도의 봉우리라 할 수 있는 한라산을 부악(釜岳)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라산의 정상에 깊고 넓은 분화구가 못(淵)을 이루고 있어 마치 솥에 물을 담아 놓은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이 연못을 백록담(白鹿潭)이라고 한 것은 한라산의 신선들이 흰 사슴을 타고 노닐다가 물을 마시게 하던 곳이라 하여 붙었다. 이 부악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과 북쪽의 형세는 확실히 다르게 나타나며, 소화산체인 오름들의 분포나 환경 역시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특히나 한라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오름들은 계곡을 끼고 있거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이뤄져 있으며 깊은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깊고 그윽한 숲을 따라 탐방의 묘미를 갖추고 있지만 출입금지 지역으로 구분이 된 만큼 오르미들로서는 하나의 로망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성널오름을 비롯하여 쳇망오름, 이스렁오름, 볼레오름 등은 이러한 환경과 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논고오름 역시 오르미들로서는 탐방의 표적이 되면서 그리움을 느끼는 곳이라 할 수 있다.울창한 수림과 수풀을 지나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계곡을 통과하는 동안 만나는 천연림 지역 자체가 이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노출을 거부하면서 자연이 베푸는 환경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공생과 기생으로 이어가는 대자연의 숲은 낙원 그 자체이다.

어쩌면 자연의 환경을 의지한다기보다는 이들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까지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논고오름 탐방기-

 

논고악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대의 사라오름이나 성널오름 등을 거치는 경우도 있으나 진입로의 선정에 따라서는 보리악을 연계해도 된다. 보리악과 함께 이어 갈 경우 그나마 어려운 난관을 적게 만나게 되며 묘하게도 보리악은 한라산국립공원 내의 출입제한 구역이 아니다.

근처에 위치한 논고악이 출입제한 구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이러니하지만 보리악의 어깨를 짚고 가는 것이 정로(路)가 된 상태이다. 결국 오르미들로서는 실상 보리악 하나만을 탐방하거나 논고악만을 위한 여정을 잡는 어리석은 실수나 위대한 착각을 하지는 않는다.

현장 조사차 탐방을 하는 취재단에 동행을 할 기회가 된 여정이라 보람도 있었고 진행 역시 별 탈이 없이 마무리를 했다. 보리악과의 짧은 인연을 뒤로하고 바야흐로 논고악을 향해 전진을 했다. 어느 오름이든 초행길은 기대와 설렘을 안게 되지만 논고악을 향하는 과정은 덧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낮은 조릿대가 군락을 이룬 숲을 지나는 동안에는 앞선 오르미들의 족적이 있어 이를 따라서 이동을 했다. 이미 탐방 제한 구역에 진입을 했지만 뚜렷하게 난 길의 흔적이 있는지라 별 어려움은 없었고 취재단과의 호흡도 비교적 잘 맞았다.얼마 후 계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곳에 도착을 했다.

집중호우 때나 볼 수 있는 건천 폭포이며 2단으로 흘러내리는 곳이다. 기암 층이 이뤄낸 걸작이면서 화산 폭발 당시 빚어진 계곡과 지형이기에 자연미와 웅장함이 함께 느껴졌다. 암벽 너머로는 보리악을 비롯하여 울창한 산세가 펼쳐지면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계곡을 지나고 다시 숲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묘가 있던 자리를 만났다.

 

이미 천리(이장)를 해간 상태이지만 산담과 더불어 신문(神門)까지 만들어 놓은 모습이라 분명히 묏자리였다.그 옛날 이곳까지 상여를 메고 왔었다는 것을 상상하니 놀랍기만 했고, 보리악을 두고서 신성시했다는 구전 속의 이야기나 논고악의 기(氣)를 연상할 때 이곳 역시 명당을 운운했었을까 하는 추측이 나왔다.

계곡을 지나고 논고악 기슭으로 향하는 과정은 좀 더 깊은 산중으로의 진행이라서 약간의 어려움도 따르고 환경의 변화 역시 시각적인 차이를 느끼게 했다. GPS와 나침판과의 눈싸움은 더 횟수가 늘어났지만 희망과 도전을 함께 하는 과정이라 논고악을 향한 기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고 자유롭게 흩어진 수풀을 헤집으며 논고의 허리를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웬만한 오름은 비고(高)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경사면이 부드럽게 이어지는데 논고의 기세는 만만치가 않았다. 논고의 어깨를 짚었을 때쯤은 거친 숨소리가 나올 만도 하건만 추스를 겨를도 없이 탄성이 먼저 나왔다.

정복자에게 있어서 고지의 도달은 지나는 동안에 소비한 에너지를 곱셈으로 충전을 받는 경우가 된다. 쓰러진 고목은 정상부의 포토 존이 되어줬는데, 묘하게도 최적의 자리를 차지하여 쓰러져 있으면서 전망대 역할을 해주었다. 숲이 우거져 조망권을 닫은 상황이었지만 쓰러진 고목이 도우미가 되어줬기에 그나마 일부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논고오름은 사라오름이나 성널오름 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허나 더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하여 부러움으로 자존심을 내던지지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기세와 철저한 방어벽을 치면서 신비와 영험함 마저 노출을 거부하며 꿋꿋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논고에서의 일 막 이장은 성널오름의 성널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미 신록의 계절로 들어선 일대는 숲이 울창하여 널빤지 기암 층을 가려버려 아쉽기만 했다.이어지는 정상부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부분적으로 빽빽한 나무들이 좁은 길을 막아서서 유연한 몸놀림을 요구했지만 이미 정상에 다다른 이상 헤쳐 나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논고악의 또 다른 매력은 신비스러운 분화구이다.

원형의 분화구가 패어 있는 산정화구로 이뤄졌기 때문에 탐방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습지식물 등을 포함하는 일대의 곳곳에는 오래된 잡목들과 일부 고사목들이 차지를 하고 있으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구의 한쪽에는 거목을 중심으로 돌로 에워싼 모습이 보였는데, 어떠한 과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의 상황으로 봐서 움막이나 숯가마 터와 관련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오래전에 테우리들의 출입을 허락한 곳도 아니고 보면 행여 과거 제주 4.3과 관련하여 피난처로 이용했던 흔적은 아닐까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혹시나 이곳의 신기(神氣)를 얻기 위하여 누군가 임시 거처로 삼았을까. 일찍이 선비들이 학문을 논하던 곳이라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는데 그 거처가 필요했다면 어울릴 법도 하지만 이 역시 근거가 되지는 않았다.

화구를 빠져나오면서 다시 뒤돌아 봤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찾은 이로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며 순서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비로소 오름의 화구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기(氣)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무게도 크기도 알 수 없는 신비의 기를 가능한 배낭 안에 가득 담으면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체오름이나 왕이메에서 느낌만으로 전율을 품었던 기(氣)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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