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능화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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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능화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5.1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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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975.5m 비고: 91m 둘레: 1,811m 면적: 194,370㎡ 형태: 원형

 

능화오름

별칭: 능하오름. 능하름. 능화악(菱花岳)

위치: 제주시 오라동 산107번지

표고: 975.5m 비고: 91m 둘레: 1,811m 면적: 194,370㎡ 형태: 원형 난이도: ☆☆☆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고고한데 처하기를 원하는 산 체...

 

참으로 궁금한 점도 많고 베일에 가려진 채 노출을 거부하는 산 체이다. 그렇게 많은 오름들이 한라산 기슭을 차지하고 있지만 능화오름만은 다른 산체와의 결합을 포기하고 혼자 쓸쓸하게 버티고 있다. 탐라 계곡 줄기를 따라(西) 이어지는 오름 중에서는 유독 외롭게 떨어져 있는 오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조차 인색하게 드러나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역시 쉽게 허락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라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를 한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차라리 고고한데 처하기를 원하는 오름인지도 모른다. 오름의 모양새가 능화처럼 생겼다고 하여 능화오름이나 능화악이라 하였는데, 능화(菱花)는 마름꽃을 일컫는 다른 말이며, 부르기 쉽고 편한 변이음으로 능하오름이라고도 한다. 한자 역시 능화악(菱花岳)으로 표기를 하고 있는데 산 체의 외형을 두고 꽃에 비유를 한 점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수백 개의 오름이 있지만 모양새를 두고 표현한 것 중 꽃에 비유한 유일한 오름이다. 한편, 이 주변 산기슭에는 예전에 마을이 있었는데 몇 가구가 화전을 일구어 살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능화 마을이라는 화전민 마을과 관련을 해서 붙여졌을 가능성도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한 내용은 없다. 능화오름과 능화마을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화 자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도 해 볼 수가 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를 하고 있으며 난지축산시험장 열안지 방목지를 경유하여 진입할 수 있으나 한라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때문에 무단출입이 금지되었다. 정해진 탐방로가 없는 만큼 찾아는 과정도 깊은 숲을 따라 이동을 하게 되는데 능화오름으로 이어지는 기슭에 묘가 있어 벌초를 하기 위하여 드나든 흔적 외에 일부 사람들이 제단으로 오가면서 남긴 흔적들이 더러 남아 있다.

가파른 산등성이 일대는 울창한 자연림으로 덮여 있고 정상에는 산신제를 지내던 제단이 남아 있으며, 모양은 등성이가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동쪽 기슭에는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하나인 탐라계곡(耽羅溪谷)이 있다. 이 오름 위의 큰두레왓(드레)에서 장구목으로 이어지는 삼림 지대는 한라산 특유의 수직 분포 식생을 관찰하며 오를 수 있는 옛 등산 코스의 하나이나 지금은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능화오름 탐방기-

오라동 산록도로의 방선교 옆에는 열안지 방목지가 있으며 이 정상을 천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독립형 화산체는 아니지만 경사면을 이룬 기슭을 따라 오르면 드넓은 초원이 나오는데 난지축산시험장으로 사용이 되는 곳이다. 무단출입은 안 되지만 주변의 환경 및 생태 등의 조사를 위하여 사전에 승인을 받은 취재단에 합류를 하여 능화오름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졌다.

천산(天山)이라 부르는 광활한 초원을 거치는 동안에도 풍경에 취할 정도로 숨은 제주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능화오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큰 행운이 따른 셈이다. 천산에 도착을 하니 역시 현장의 분위기와 일대의 전망은 장관이다. 목적지가 능화오름이고 부득이 리턴 코스로 다시 만나게 되어 일단은 하산길에 더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철조망 통과를 하고 진입을 하자마자 재선충 훈제 작업을 위한 시설물이 보이고 잡목과 덩굴, 넝쿨들이 우선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제주의 많은 오름들을 생각하면 구태여 능화오름에 매력을 느끼고 찾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르미들조차 잘 찾지 않는 곳인데다 딱히 정해진 길이 없으며 감각으로 가기에는 산세조차 파악이 안 되는 곳이라 오직 GPS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릿대왓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이 된 상태라 직선형의 루트를 이용하여 전투 모드로 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얼마 후 소계곡을 만났는데 한라산 기슭 자체에 여러 소곡들이 있기는 하지만 능화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작은 계곡을 만나며 이를 기준하고 참고로 진행을 했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서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삶의 진행을 이어가는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스러운 모습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바위체와 하나가 되어 생명을 지탱하는 나무는 굵은 뿌리마저 노출을 시키고 있었다. 행여 내(川)가 터질(범람) 때면 곤욕을 치르겠지만 이들은 버티는 방법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루하고 힘든 경사를 오르다가 마침내 집터를 찾아냈다. 돌담들이 그냥 머체 형태를 이뤘거나 자연스럽게 놓인 게 아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뚜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한 두 곳이 아니다.

확실한 능화동 마을이다. 사라진 마을이며 잃어버린 마을이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능화동의 옛 터이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서 이런 산기슭을 터전으로 삼았던 화전민들을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이 겪었을 애환과 고충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능화동 집터와는 다른 경계 돌담이 있었는데 잣성으로 추측이 되었고 지대를 고려한다면 상잣성에 해당이 되며 그 옛날 테우리들이 넘나들었던 곳이다.

진행 중에 특별한 볼거리와 더불어 낮은 경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의 조릿대 군락은 결코 빠른 걸음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름 탐방에서 조릿대가 장악을 한 곳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정해진 탐방로가 없는 경사를 따라 미지의 길을 가는 과정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바닥은 조릿대가 차지하고 위로는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좀처럼 정상부가 보이지 않았다.

급한 경사는 아니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을 덮은 조릿대왓을 지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았지만 초행길의 오름을 찾아간다는 설렘으로 한발씩 전진을 했다. 그렇게 진행을 한 후 정상 가까이 도착을 했지만 그곳에서도 숲으로 가려져 일대를 전망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랐다. 진정 숨은 오름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고고한 가운데 처한 능화로서는 더 이상의 이방인을 반기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환경과 조건에서 지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능화악이 예전부터 혼자의 길을 택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자신의 허리 아래쪽은 세인들에게 삶의 터전으로 할애를 해줬고 조건 없이 이들을 받아들였었다. 오래전에는 이 오름 기슭에 화전을 일구어 살던 몇 가호가 있었다는 문헌 기록이 있고 마을 명칭은 능화(菱花)동이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능화 정상부의 제단은 산신제를 지냈다고 하니 아마도 이 과정은 화전민들로부터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되었다.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과 함께 능화의 산세나 기운을 생각하면 재단의 필요성과 산신제를 지내야만 했을 법도 하다. 예전에는 마름꽃(능화)처럼 생긴 산 체를 구분하기에 조건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으로 그려보기조차 어려웠다.

91m의 비고(高)이면서 북향의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으나 숲으로 가려져 있어 뚜렷하게 볼 수는 없는 데다 오름 진입로에서 정상부로 향하는 과정은 길게 경사가 이어지는 때문에 등정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정상부 능선을 올랐을 때 비로소 맞은편으로 주봉이 보였는데 그조차 전부를 노출하는 것을 꺼려하며 숲을 이룬 공간으로 형태만 보여줬다.

사면의 우측 등성을 향하여 전진을 하였는데 전망이 없는 숲을 헤치며 끝없이 이어지는 낮은 경사를 오른 때문인지 정상부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능화의 어깨에 도착을 했을 때 비로소 조릿대 사이로 길이 열렸다. 초입이나 진입로가 어디가 되던지 정상부는 보통 길의 뚜렷한 흔적을 만나게 되는데 출입제한 구역이라고는 하지만 정상부 역시 조릿대가 장악을 했고 잡목들이 우거져 있으나 길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숲으로 가려져 전망은 불가하며 현장의 바위들이나 특이한 형상의 나무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한쪽에 물통과 천막 같은 게 뒹굴고 있었다.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그 용도로 사용을 하다가 버려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흉물로 보였고 제수용품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안 어울렸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평평하게 만들어진 공터가 있고 주변은 돌담으로 쌓여져 있다.

오래전에 주변의 돌들을 모아서 영역을 구분한 것으로 보이고 산신제를 지내는 장소와도 관련이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능화 정상부의 절대적이며 필수 인증샷은 코브라낭(코브라를 닮은 나무)이 주인공이 되었다. 행여 하절기였다면 푸름과 더불어 더한 색채가 보여서 코브라를 연상하게 될 텐데 그다지 볼품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제단이 있는 곳에서 다시 조릿대왓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동능으로 향했는데 사실상의 정상부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가는 동안 혹시나 하는 기대로 바깥을 향했지만 역시나 숲은 모든 세상을 가려버렸다. 그나마 늦가을이라 잎이 떨어진 나무 사이로 언뜻 먼 곳이 보이지만 날씨가 이를 방해했다. GPS를 통하여 확인을 한 결과 능화의 정상부로 관측이 되었는데 이렇다 할 아무런 특징이 없고 그저 빨간 리본만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행여 가지가 굵은 나무가 있으면 타고 올라가서 주변을 살피고 흔적을 담으려 했지만 마땅하지가 않아서 포기를 했다. 이제쯤은 참 매력이 없는 오름이라는 투덜거림이 나올 즈음 정체를 알 수 없는 쇠솥이 보였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깨진 채 방치가 되어 있었는데 산신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최후의 순간은 흉물처럼 버려진 채 있는 것이다.

한라산 국립공원 내의 출입제한 구역이라고는 하지만 드나든 흔적이 있는 데다 산신제와 관련한 여러 소품들이 보이면서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는 곳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능화로서는 서럽고 슬픈 일이겠지만 이곳이 민간 무속신앙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어느 정도 정리를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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