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당오름(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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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당오름(와산)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6.0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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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306.4m 비고: 56m 둘레: 1,657m 면적: 138,170㎡ 형태: 말굽형

당오름(와산)

별칭: 당악(堂岳)

위치: 조천읍 와산리 7-1번지

표고: 306.4m 비고: 56m 둘레: 1,657m 면적: 138,170㎡ 형태: 말굽형 난이도: ☆☆

 

 

기슭을 당(堂)으로 내어주고 분화구를 농지로 내어준 착한 산 체...

 

오름 북동쪽 기슭에 당(堂)이 있는 것과 관련하여 당오름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한자 역시 당악(堂岳)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당은 오름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지금까지도 산왕당(용왕당)을 모셔 당제(堂祭)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왕당이 모셔져 있는 와룡선원 마당에는 이곳과 관련한 유래가 새겨져 있는데, 먼 옛날부터 산왕의 영험이 신통하여 이 고개를 지나는 사람이 절 세 번을 하고 다니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는 내용이다.

기슭을 따라 정상에 올라서조차 오름임을 인식하지 못 할 정도로 완만하게 이뤄진 산 체이지만 당신(堂神)이 있는 와룡선원 쪽에서는 다소 가파른 형세를 확인할 수가 있다. 서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사면은 자연림이 울창하고 기슭 아래쪽은 농경지로 개간이 된지 오래되었으며 근처에는 묘지 몇 기가 있다. 비인기 오름이면서 탐방의 가치가 떨어지는 곳들은 일부 변화가 이뤄진 때문에 더 외면당하는 경우가 있다.

찾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허접하고 볼품이 떨어지는 때문이겠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움은 더 살아있다.  숨은 오름처럼 노출을 거부한 채 고고한 자태로 식생의 터전을 제공하는 곳들은 대부분 더 이상의 변화를 원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외면을 당할 바에는 숲을 이루는 다양한 식물들과의 공존을 원할 뿐 사람들과의 접촉은 마다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수많은 오름들이 있기에 선택의 폭이 넓은 이상 이러한 곳들은 오르미들로부터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그렇게 외면과 무시를 더 원하는지도 모른다. 조천읍 와산리의 당오름 역시 숨은 오름이면서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산 체이다. 제(祭)를 지내는 당(堂)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오름이고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하건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소로를 따라 빌레왓으로 이어지는 기슭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일부는 농지나 목초지로 개간이 되었다. 차량으로 정상부 가까이까지 진입이 되는 때문에 탐방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정상부를 만나기 위하여 이동을 할 때는 화구를 지나게 되지만 이곳 역시 농지로 변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너무 단장이 잘 된 때문에 분화구 자리라고 여기기가 힘들 정도이다.

 

 

-당오름 탐방기-

 

와산리에서 이어지는 소로를 따라갈 경우는 차량으로 정상부 근처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 당신(堂神)이 있는 다른 방향에서 오를 때는 경사가 있고 복잡한 진행을 하겠지만 애써 이 루트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좁은 농로를 따라 입구에 들어서니 보리밭이 나왔는데 수확 시기가 점차 가까워진 보리들은 이제 퇴색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주변에 빌레왓과 숲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넓은 면적이다. 소위 빌레왓이라 부르는 곳과 농지로 구분이 되지만 구릉지대가 완만한 때문에 이 방향에서 정상임을 실감하기가 어려웠고 화구와 정상부의 높이는 일직선을 이룬 것처럼 비슷하게 느껴졌다.

밭을 지나며 바라본 면적을 감안하면 화구가 얼마나 넓은 곳이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현장의 일부는 수확을 마치고 허허한 상황이라 편하게 가로질러 갈 수가 있었다. 기슭에 도착을 하니 커다란 빌레가 있고 비좁은 틈으로 철쭉이 꽃을 피워 반겨줬다.

북쪽이나 동쪽으로는 시야가 트일 방향이지만 성장을 멈추지 않는 잡목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나마 동절기라면 일부 공간이 생기겠지만 한 치의 틈도 없었다. 빌레 가장자리에 올라서 동쪽으로 향하니 그나마 시야가 열렸고, 좋은 가시거리는 아니지만 바매기(웃밤과 알밤) 형제가 보였다.

농지로 변한 화구 방향으로 돌아서니 대천이오름과 꾀꼬리오름이 보였다. 그냥 돌아간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 정상부의 빌레를 따라 이동을 했다. 북동쪽은 심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으면서 딱히 탐방로라고 할 공간조차 없었고 여름을 앞두고 빽빽하게 숲을 이룬 등성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등성과 기슭을 차지하여 자유스럽게 성장의 진행을 이어가는 넝쿨과 잡풀들조차 성숙한 자연미를 느끼게 했다. 특히나 여름을 앞둔 시기인지라 온통 초록의 물결이 왕성하게 오름 주변을 덮어 발 디딜 틈조차 주지 않았다.

산책로나 전망 터는 하나의 사치일 뿐이고 저마다 키재기와 줄 뻗어나가기 경쟁을 하며 질서를 무시한 채 자유스런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실 당오름은 멀리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높이나 산 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진입로를 선택하여 들어올 경우는 오름인지 화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빌레들이 거점을 확보한 중심부에 일란성 골로기낭(쌍둥이 나무)이 있었는데 당오름의 주인이면서 심벌이라도 되는 양 당당하고 의연하게 보였다. 또한 정상부 한쪽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바위가 있었는데 마치 오름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은 기슭 아래에 있지만 행여 당오름을 수호하는 분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gps 상에 정상 표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봐서는 달리 정할 필요가 없이 정상임을 알아챘다. 짧은 시간에 전부를 보고 느끼기에 아쉬움이 있어 주변을 서성이다가 산돌(빌레) 몇 개가 모여 있는 곳을 찾았다.

분화구나 기슭의 일부가 농지로 변한 곳이 한두 군데는 아니지만 당오름의 화구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자신의 치부를 경작지로 내어주고 기슭의 한 곳을 당으로 쓰게 한 당오름으로서는 가치와 존재를 넘어선 배려와 할애를 다한 셈이다. 

화구에서 정상 기슭 쪽에는 몇 기의 묘가 보였는데 농지와 더불어 망자의 한을 달래주는 역할도 당오름의 몫이 되고 있었다. 아쉬움이 많았기에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미 걸음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게 되었다. 당오름으로서도 더 이상의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인간들의 출입을 결코 반기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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