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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준 기자의 제주올레탐방기"올레길, 나도 걷는다"
"올레걷기, 또한 자연에 대한 겸손.."⑥(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20코스, 행원-하도 해녀박물관..'여름올레는 참..'
고현준 기자  |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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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7.07.02  08: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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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7일 시작한 제주올레20코스 하프걷기는 3주만인 7월1일이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한 주를 쉬었더니 훌쩍 7월이 돼버린 것이다.


올레20코스는 처음 완주하며 걸을 때인 지난 4월5일에는 온천지가 쓰레기통처럼 어수선했었다.
그러나 두달여 남짓 지나 다시 걸어보니 널려있던 해안쓰레기가 말끔히 치워져 있어 무척 반가웠다.


알아본 결과 구좌읍(읍장 홍충효)이 중심이 돼 모두 치운 것으로 나타나 이들 공무원들의 노고에 치하를 드리고 싶다.

   
 

   
 

 

관내 해안도로변에 밀려드는 해양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구좌읍 직원들은 물론 관내 자생단체와 청정바다지킴이, 125의무경찰대대, 자체고용 인력을 총동원해 해양쓰레기와 괭생이 모자반 수거에 연일 구슬땀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제주올레는 해안 중산간 가릴 곳 없이 각종 공사판이 벌어져 모든 곳이 개발위기에 처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이지만 이 아름다움을 눈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경관을 독점하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개발을 자꾸 바닷쪽으로 다가가게 만들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 6월17일도 무척 더웠고 지난 1일도 엄청 더웠다.

지난 1일 올레길에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올레꾼은 단 한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더위를 먹을 정도로 찌는 듯한 날씨여서인지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하프코스를 걸을 때는 몇사람 보이더니..

7월이 되자 바다를 찾게 만드는 것인지..바닷가에는 어디건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이날 유독 사람이 없었다.

1일은 지열과 뇌리쬐는 태양속을 걸었다.
그리고 들길의 연속이라 남길 사진조차 별로 없었다.

지난 6월과 확연한 차이가 나는 길이었다.

   
 20코스 올레길에서 만난 김형복 선생

   
 여생화 사진을 찍는 김광래 동아일보 기자

   
'야생화 그리고 우리' 야생화사진동호회 김순용 회장과 김 기자

처음 하프코스를 걸을 때는 올레길에서 모두 3명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6월17일 오전 김녕 출발지점에서 행원 중간포스트까지 걷는동안 "제주시 신제주에서 건축일을 하면서 올레를 걷고있다"는 김형복 선생은 “앞으로 2년을 더 제주에 살아야 한다”며 열심히 올레를 찾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 사진기자출신이라는 김광래 씨(야생화동호회 ‘야생화 그리고 우리’)는 김녕해안을 걷는동안 만났는데 그는 헐레벌떡 내게 다가와 “사진을 찍고 있어서 달려왔다”며 “참나리 자생지를 찾고 있는데 어디냐”고 물어왔다.

나는 한라산을 탐방중이라는 김평일 한라야생화회 회장에게 물어 그곳을 얘기해 주었지만 내가 걷는동안 그곳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걸어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장소를 확인하고 그들 팀원들과 함께 그곳을 찾느라고 걷는 시간이 많이 늦어져 버렸다.

   
 참나리가 곱게 피어 있었다

이들은 단체로 제주야생화를 찍기 위해 제주에 내려온 야생화사진동호회 회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해변에 곱게 핀 참나리를 몇장 찍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그들과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한바퀴 돌고 월정해변을 걷는데 김광래 기자가 전화를 했다.

월정리 해변에 함께 앉아 그가 고맙다고 건네 준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야생화 사진을 찍으려고 제주에 가끔 내려오는데 야생화모임을 소개해 주면 교류를 하고 싶다”는 것으로 모란꽃이라는 예쁜 닉네임을 쓰는 김순용 씨와 함께 앉아 김평일 회장과 전화통화를 하게 했고 “앞으로 제주에 오면 야생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하게 됐다.

이날 나는 오후 2시와 5시에 취재약속이 있어 서둘러야 했지만 이들 동호회를 도와주느라 많이 늦어버렸다.

식사할 시간도 없이 3시경이 되어서야 행사장에 도착해 겨우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꽃이 있는 곳을 찾고 서울과 제주간 동호인들의 교류까지 주선했으니 보람있는 걸음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걷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3백여미터 구간(실제로 걸어보니 5백미터 정도는 되어보였다)도 이날 모두 걸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 출발점까지 걸어간 것이다.

남은 20코스 하프코스를 걷는 지난 1일은 아침부터 계속 미적거렸다.

갈까말까를..


내일(2일)은 비가 많이 온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무작정 길을 나섰다.

올레는 힘이 들건 말건, 걷기는 일단 시작하면 끝이 있다.

이날 오전 10시경 집에서 출발했지만 3시간여를 걸어 편안하게 하프코스 걷기를 마쳤다.

걷지 않으면 요즘은 몸이 화를 내는 듯 하다.

그래도 일단 길을 나서면 몸이 반응을 하고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게 만든다.

   
 

   
 

   
 

   
 

 

 

‘인생열전(박영만 저)“이 5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이나 다재다능했던 인물이라는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다.

그의 제1의 덕목은 겸손이었다.

그가 인쇄소 견습공시절인 때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지름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이웃집 주인의 ‘머리를 숙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아무 생각없이 걷던 프랭클린은 들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이웃집 주인이 급히 달려와 상처난 그의 머리를 만져주면서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머리를 자주 숙이게. 머리를 숙일수록 부딪치는 일이 적어질걸세”

이런 일이 있은 후 프랭클린은 평생 겸손을 제1의 덕목으로 삼았고 20세가 되었을 때는 스스로 13훈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것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만든 13훈은 겸손, 침묵, 규율, 절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보전, 평정, 순결, 결단이다.


(중략)..이와 같이 인쇄와 출판,외교관으로서 성공적인 길을 가면서도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연을 띄워 번개를 붙잡아 병에 넣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그 번개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스토브와 피뢰침을 발명하고, 안경을 만들고, 인쇄기를 개량하는 등 과학과 발명분야에서도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1775년에는 정치가로서 독립선언 기초위원이 되어 미국독립에 헌신하는 한편 도로청소법을 만들고 병원을 설립하고 소방대를 조직하는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프랭클린은 상대를 노하지 않게 하면서 공통의 결론에 도달하는 기술이 뛰어나, 미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의원들도 그의 회화술을 배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만 상대방이 말한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거나, 내 의견을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습관화되면서 과거 50년간 나의 입에서 단정적인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말솜씨가 없어 언제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꾸물거리곤 했지만 그래도 내 의견은 대부분 통했다.(증략)..


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죽음과 세금 말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의 능력과 업적은 죽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자신이 생전에 출판과 발명으로 벌어들인 돈을 주정부에 기탁했는데, 신탁된 유산은 투자되어 그 이자가 공공사업에 쓰였고, 오늘날까지도 이 신탁유산은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프랭클린은 젊었을 때 재미삼아 자신의 묘비명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다.


“인쇄공 벤저민 프랭클린의 몸이 헌 책의 겉껍데기처럼 책장은 찢어져 나가고 글씨와 금박은 지워진 채로 여기에 누워서 벌레들의 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믿는 바로, 이 책의 원저자(창조주)의 교정과 수정을 거쳐서 더 완벽한 새 판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프랭클린의 묘비에는 그의 프랑스인 친구인 달랑베르가 헌사한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졌다.


“이 사람은 하늘로부터는 번개를, 폭군으로부터는 옥띠를 빼앗았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앉은 신사보다 서 있는 농부가 더 훌륭하다”
농부는 부지런히 씨를 뿌려 땀 흘린만큼 거둔다.


프랭클린은 부지런한 사람이었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이에 반해 그때나 지금이나 감투를 쓰고 신사인체 하는 사람일수록 더 남을 기만한다.
또 비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게으른 사람일수록 더 신사인체 한다.


만약 창조주가 죽은 프랭클린을 교정하고 수정하여 새 판으로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그의 다재다능함과 겸손함과 부지런함은 교정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오히려 잘 금박 씌워 재등장시킬 것이다.
그의 업적과 겸손앞에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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