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망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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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망월악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8.2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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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025.6m 비고:45m 둘레:1,098m 면적:87,416㎡ 형태:원추형

 

망월악

별칭: 샛오름. 삼형제남쪽1. 망월악(望月岳). 유목악(流木岳)

위치: 서귀포시 색달동 산 1번지

표고: 1,025.6m 비고:45m 둘레:1,098m 면적:87,416㎡ 형태:원추형 난이도:☆☆☆☆

 

 

 
산중에 떠오른 달을 바라보기 좋다고 하였으나 깊은 숲 안에 꼭꼭 숨은 화산체...

 

지세가 높아 달을 구경하기 좋다는 뜻에서 망월악(望月岳)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인근 삼형제 오름 중에 샛삼형제와 족은삼형제 사이에 있어서 샛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오름 재정리를 위한 조사 당시 이 오름을 발견하면서는 삼형제 남쪽에 있음에 연유하여 삼형제 남쪽1과 2로 부르게 되었는데 마땅히 명칭을 정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때 수집이 된 오름들 중 다래오름 북동쪽이나 마은이옆 등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화산체의 정상부에 있는 묘들 중에는 망월악(望月岳)이라고 표기가 된 곳이 있으며 다른 비석에는 석악상서유목악(石岳上西流木岳)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돌오름 위 서쪽의 유목악임을 뜻한다.

이러한 옛 자료를 참고한다면 단순하게 삼형제 남쪽1. 2로 부르는 것보다는 망월악이나 유목악으로 정하여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화산체의 남쪽 비탈을 이룬 쪽은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으나 1100도로변 방향으로는 비교적 완만한 등성이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형태는 원추형으로 구분을 하였으나 침식이 이뤄지는 등 변화로 인하여 정상부는 완만한 등성을 이루고 있다.

깊은 숲에 가려져 있는 데다 비고(高)가 낮은 때문에 외부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는 화산체이며, 말젯삼형제나 볼레오름, 돌오름 등의 정상부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한라산 자락을 차지하여 꼭꼭 숨은 오름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깊다. 탐방의 그윽한 맛이 풍기고 산체의 깊은 멋을 간직하고 있는 때문에 진행의 묘와 만남의 기쁨은 덧셈이 될 수밖에 없다.

 

숲이 울창한 깊은 산중에 자리하여 세상과의 인연을 멀리한 채 고고한데 처하기를 원하는 오름들이지만 찾는 이들에게는 그래도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잘 숙성이 되었고 발효를 거치는 과정도 순수와 자연미를 더했기에 엉클어진 환경을 고이 간직한 채 원시림지대를 지키며 볼품을 더해준다. 

1100고지가 있는 아래를 터전으로 자리를 잡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망월악(望月岳)은 이런 입지를 갖춘 데다 자연 미를 잘 간직한 숨은 오름 중 하나이다.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찾는 이들이 적어 외로움을 간직한 오름이기도 하다. 한라산 기슭 중에서도 워낙 수림이 울창한 지역에 위치를 한 때문에 쉽게 식별이 되지 않는다.

다소곳하면서도 웅크린 모습인 데다 숨어있으면서 산 체의 일부만 내밀고 있어 보는 이들의 애를 태우는 오름이다. 어쨌거나 망월악은 두 개의 산 체이나 막상 탐방을 할 경우 세 개의 산 체를 넘나드는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 남쪽1은 표고가 1,025.6m이고 비고(高)는 45m이며 남쪽 2는 표고가 1,014m이며 비고는 49m로서 원추형 화산체들이다.

원추형으로 구분을 하고는 있지만 초반부의 경사를 오른 후부터 만나게 되는 등성은 평평한 편이며 원만한 경사로 이뤄져 있어 탐방에 큰 어려움은 없다.

 

-망월악 탐방기-

망월악을 탐방하는 과정은 참 애매하다. 한라산국립공원 경계를 포함하고 있어서 섣불리 짧은 구간을 택하는 것은 위법이 된다. 따라서 1100휴게소를 조금 지나서 진입을 하는 것은 출입의 통제가 따르지만, 천아숲길을 초입으로 한 후 표고버섯 재배장을 이용할 경우는 일부 허용 구간이 포함된다. 진입이 허용된 천아숲길 초입지에 도착을 시작으로 망월악 도전에 나섰다.

불과 한 달 전에 한라산 둘레길 중 한 구간인 천아숲길을 걸었지만 그새 나무들은 앙상하게 변했다.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듯이 자연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울긋불긋 천연색으로 화려한 멋을 간직했던 계곡도 이제 볼품은 사라졌고 가을을 떠나보냈다. 우쭐대던 그 모습을 그려보노라니 기분이 씁쓸해졌다. 얼마 후 표고버섯 재배장 갈림길에 도착을 했다.

천아숲길과 망월악으로 가는 과정은 이제 다른 방향이 되는데 부득이 재배사의 신세를 져야 했다. 근년에 한라산둘레길이 생기면서 임도를 따라 더 진행을 하다가 방향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애써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낮은 경사의 임도를 따라가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숲으로 진입을 했다. 딱히 정해진 탐방로는 없지만 gps의 착한 안내를 참고하는 이상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슭을 오르다가 두 화산체를 확인하였다. 초행길이었지만 규모나 등성의 상황이 언뜻 보기에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으며 숨은 오름이나 비고(高)를 감안하니 저 정도라 여길 수 있었다. 첫 번째 ​계곡을 넘어 산 체의 허리를 오를 즈음에 코브라낭을 만났고 진행 과정에서 마땅히 흔적을 담을 게 없던 터여서 잽싸게 그 모습을 뺐었다.

정상부에 도착을 했지만 이렇다 할 표식은 물론이고 특징이 없어 보였다. 오매불망 애를 태우던 망월악의 실체가 이 정도일까 하는 생각에 더러 실망감도 밀려왔다. 조릿대가 바닥을 차지했고 잡목들이 빽빽하게 이어지면서 자신은 둘째하고 세상 밖을 바라볼 틈도 내주지 않았다. 이어지는 다른 산 체를 향하여 다시 이동을 했는데 등성을 따라가다 옆 산 체의 정상부에 다다르니 올랐던 봉우리가 보이면서 지나온 곳과 또 만나게 될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실상 망오름의 두 산체는 봉우리가 세 개로 나눠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 개의 몸통과 두 개의 굼부리를 지닌 2막 3장의 오름이라고나 할까. 원추형이라고는 하지만 정상부는 대체로 평평한 상황이었는데 초행의 전진이 쉽지만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희미하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었으나 빽빽하게 자리를 잡은 조릿대가 시기를 하고 돌부리와 쓰러진 나무들이 질투를 했다.

그런 환경을 밀어붙이며 진행을 하다가 결국 정상부를 찾아내었는데 전망은 둘째하고 표식으로 매달린 리본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다시 이동을 하여 박 씨 할망 무덤을 비롯하여 망월악의 백미인 전망 터를 향해 전진을 하는데 천리를 해 간 묘 터가 보였다.

정교하게 쌓여진 돌담의 상황으로 봐서는 꽤나 오래된 묏자리임을 알 수가 있었고 봉분이 있던 자리를 터전으로 삼아 자라는 잡목들의 상황으로 봐서는 천리를 한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좀 더 주변을 살피다가 마침내 첫 번째 묘를 찾아냈는데 비석을 확인하니 허 씨의 묘였다. 오래도록 벌초를 안 했는지 봉분과 주변은 조릿대들이 장악을 했고 비문에는 ‘천보이악갑산’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하늘이 보존하는 산허리를 뜻하거나 망자를 산허리에 묻으며 하늘의 보존을 기린다는 정도의 뜻으로 풀이를 하면 될지 맞춰봤지만 망월악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반전이 이뤄지는 과정은 오래지 않았다. 바로 옆의 큰 나무 아래로 돌담이 둘러져 있고 시야가 트인 곳이라 특별한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정확한 판단이었다.

망월악의 백미로 통하는 박 씨 할망의 묘이며 비로소 이 비문에서 망월악에 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빽빽한 숲이 건만 유일하게 트인 공간으로 이뤄진 터인데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내었을까. 보통의 묘 보다 그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둘러싼 산담의 돌들은 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그 옛날 상여를 메고 이곳까지 왔다는 게 대체 말이나 되겠는가.

오름의 기슭이나 정상부에 묘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망월악을 조상의 안식처로 삼은 것은 대단한 일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구태여 풍수지리나 명당을 운운하지 않아도 한눈에 직감할 수가 있었다. 산담을 등지고 앉은 채 한동안 생각을 하며 전망을 보태었다. 가을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여 있노라니 비로소 망월악의 심지와 가치를 넉넉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망월악과의 만남을 마치고 하산을 준비했다. 쉬운 방법이라면 백(back) 코스가 맞겠지만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곳을 탐색하니 1100도로변이었다.

초행길이면서 탐방로가 없고 미지의 깊은 숲인지라 느리게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지만 이동을 하는데 별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자연 미는 더 느낄 수가 있었다.  보통의 오름들과 다른 환경을 갖춘 화산체였던 만큼 오래 기억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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