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숲의 시간이 시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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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숲의 시간이 시가 되는 순간
  • 김태홍 기자
  • 승인 2017.09.28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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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공명’으로 관계와 거리가 만드는 섬세한 감정을 제주의 풍광으로 보여주었던 사직작가 김형석이 이번엔 1만년 곶자왈숲의 시간을 시어로 불러내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제주의 시’는 2010년 제주로 이주한 작가가 묵묵히 제주의 공간과 시간을 기록해온 여정의 하나로, 다섯 번째 전시다.

전시기간은 오는  30일 ~ 10월 15일까지 바람섬 갤러리(서귀포시 남원읍 공천포로 25)에서 열린다.

제주에만 존재하는 숲 곶자왈은 1만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척박한 돌무더기 위에 숲을 이루고 생명을 길러왔다. 한 그루의 나무도, 작은 이끼도, 돌멩이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기대며 공존한다. 전시가 보여주는 제주의 시간은 바로 ‘공존의 시간’이다.

“곶자왈이라는 커다란 생명체를 마치 한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를 담아내는 초상화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김형석이 만난 곶자왈은 자연의 개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어울리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존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의 사진에 홀로 존재하는 주인공은 없다. 나무가 주인공인가 싶으면 그 나무를 둘러싼 각종 덩굴식물과 이끼들로 옷을 입은 나무의 속살은 오히려 보이지 않고 커다란 생태계를 제공하는 어떤 환경으로서의 나무형태만 남는다. 그 자세들은 당당하고 기품이 있으며 신성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공존의 공간. 무심코 놓여진듯한 돌맹이 하나에도 이끼의 숲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층위의 생명의 모습이 흐른다.

이번 사진 작품들에게는 생명들이 만드는 미묘한 차이와 어울림이 만드는 리듬이 있다. “숲은 글로 치자면 산문이 아닌 시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시는 (poetry) 내용적으로 은유적인 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낭송으로 경험되어진다는 측면에서 time-based art 즉, 음악처럼 시간예술인 셈이다. 이번 전시가 그렇게 시적인 운율로 경험되기를 원한다.

곶자왈이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있다. 선흘 곶자왈의 일부는 골프장이 되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사파리를 만들겠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풍부한 숲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작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파괴 되고 있는 제주의 자연을 직접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대신, 지켜야 할 것들을 만나게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만을 지키게 되듯이, 시간을 들여 이 사진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누군가는 마주하는 숲의 정령들에게 새로이 사랑을 고백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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