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마을 둘러 싸..하도리 별방진성(別防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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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마을 둘러 싸..하도리 별방진성(別防鎭城)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10.15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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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의 정박지는 우도..왜구 막기 위해 김녕방호소 옮겨


하도리 별방진성(別防鎭城)

 
하도리 별방진성(別防鎭城)
위 사진 ; 남문 동쪽 성벽
아래 사진 ; 남문 서쪽 치성
문화재 지정사항 ; 제주도 기념물 제24호 (서기1974. 4. 13. 지정)
위치 ; 하도리 성 3354-57
시대 ; 조선시대

▲ 하도리_별방진남문옹성
▲ 하도리_별방진성_남문_서쪽_치성

성은 하도리 마을을 둘러싸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중종5년(서기1510) 목사 장림이 쌓았다. 왜선의 정박지가 우도였기 때문에 왜구를 막기 위하여 김녕의 방호소를 이 곳으로 옮겨 별방이라 하였다.

둘레 2890자, 높이 7자, 동 서 남 세 곳에 문(초루)이 있었다. 지금도 '동문' '서문'이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샘이 2 곳 있었으나 해변이므로 물맛이 짜다. 다른 진보다 병력이 갑절이나 되었다.

성을 쌓을 때에 흉년이 심하여 부역 장정들은 인분까지 먹어가며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현장의 안내판)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52′ 북위 33°21′에 해당한다. 둘레 960m의 타원형 성으로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底)가 되고 있다. 성의 보존 상태를 보면 동문지와 서문지는 민가에 의해 변형되어 그 위치만 찾아 볼 수 있으며, 남문지에는 옹성(윗 사진)만이 훼손이 심한 상태로 남아 있고 문루는 남아 있지 않다.

남문지의 동쪽은 1995년 일부를 복원하였는데 2단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속채움은 돌만 사용한 구간이 있고 돌과 흙을 혼용한 구간이 있다.

성벽 상부는 완벽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없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미석(眉石 ; 석성의 상부, 여장 밑에 여장을 쌓기 위해 눈썹처럼 판석을 약간 나오게 설치한 돌)과 여장(女墻 ; 성 위에 쌓은 낮은 담으로 총구와 타구(朶口살받이)가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옹성의 축조는 성벽과 일체식으로 하였으나, 치성(雉城)의 축조는 성벽을 먼저 축성한 후 덧쌓는 방법으로 하였다.(제주의 방어유적 80-90쪽) 치성은 동-남-서쪽 세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서문에는 옹성터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복원과정에서 남문과 동문 사이 치성 안쪽에 경사면을 설치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자료도 없고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추정해 본다면 바퀴 달린 대포를 성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설이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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