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파군산악..인성리 거욱대(방사탑)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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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파군산악..인성리 거욱대(방사탑)1호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3.01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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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남쪽(바굼지오름쪽)이 허하여 4개의 ‘거욱’ 쌓아


인성리 거욱대(방사탑)1호

 
인성리 거욱대1호
위치 ; 대정읍 인성리
유형 ; 민속 유적(방사용 탑)
시대 ; 조선

 

 

 


인성리는 대정성지 동남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 단산 서쪽에는 모슬봉을 두고 있다. 두 오름 사이로 대정향교로 가는 농로가 있으며, 이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알뱅디라 불리우는 넓고 기름진 밭들이 펼쳐진다.

농부들에게는 풍요로운 땅일 테지만 인성리 사람들은 이곳이 허(虛)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동서 방향으로 돌탑 4기를 쌓고 위에는 거욱대라는 석상(石像)을 만들어 세웠다.

마을로 오는 액을 막고자 함이다. 돌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체로 마을의 설촌과 그 때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풍수에서는 이 거욱대가 사계리의 ‘바굼지오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인성리나 안성리 쪽에서 보면 이 오름은 자연스럽게 박쥐처럼 보인다.

이 산은 박쥐가 날개를 활짝 펴서 먹이를 덮치고 있는 형세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기세에 눌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날 수 없다고 믿는다.

민간에서만 이 산을 흉산(凶山)으로 본 것은 아니다. 이형상은 탐라순력도에 이 오름을 ‘파군산악(破軍山岳)’으로 표기했다.

풍수에서는 산의 형상을 아홉 가지(九星)로 나누는데 이와 같은 산의 모양이 그 가운데 ‘파군(破軍)’에 해당한다고 하며, ‘파군의 산이 있으면 형벌과 겁탈, 나쁜 질병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당시 이 목사는 이 오름을 ‘파군’으로 표기한 것이다.

1900년 이문사(李文仕)라는 사람이 ‘풍수적으로 마을 남쪽(바굼지오름쪽)이 허하여 마을에 액운이 있으니 탑을 쌓아서 액을 막아야 한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오름과 마을 중간에 4개의 ‘거욱’을 쌓았다.(http://blog.paran.com/뿌리를 찾아서)


돌탑은 알뱅디의 '거욱대세운밭'이라는 밭에 있는데 지금은 2기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1기는 훼손 상태가 심하다.

동쪽에 있는 돌탑(1호)은 많이 허물어졌던 것을 2005년경 보수했다. 원래 모양은 원뿔형태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새로 만든 거욱대의 모양은 거의 원통형이며 윗부분을 약간 오무렸을 뿐이다.


제민일보 1994년 4월 26일 '제주도의 석조물'에는 “이곳에는 윗마을의 박씨할으방이 만든 것이라고 전하는 「거욱」또는「하르방」이라고 불리는 석상이 있다.

타원형 얼굴에 미소짓는 듯한 인상을 주는 석상은 간략화된 털벙것이라는 모자와 유난히 큰 눈과 코가 돋보여서 대정성 성문 앞에 있는 돌하르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라는 기사가 있으나 현재의 석상은 탑을 보수할 때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원래의 석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6·25가 한창이던 1951년 인근 모슬포에 훈련소가 생기면서 막사를 짓다 보니 많은 돌들이 필요하여 돌탑마저 실어가 버렸다.

그 후 인성리에는 젊은 사람을 비롯하여 가축들도 많이 죽고 원인모를 화재도 많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 끝에 서기1959년 경에 돌탑을 다시 쌓았고 마을은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제민일보 4328.4.26. '제주도의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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