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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죽음이 있어 생이 소중한 것입니다.."[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후대를 위한 희생과 섬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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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8.11.22  07: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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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를 위한 희생과 섬김, 단풍.

   
단풍나무 (단풍나무과)

 

하늘 높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푸르던 나뭇잎이 한둘 붉고 노랗게 변하더니만 푸른 산천이 울긋불긋 단풍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안다고 하더니만 어느새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 그것은 낙엽입니다. 회남자(淮南子) 문록(文錄)에 나온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한 장의 낙엽으로 가을을 안다는 구절은 단풍진 낙엽 한 장을 두고 한 말이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두 잎 떨어지는 낙엽과 단풍은 다릅니다.

낙엽은 식물에서 잎이 병, 상처, 잎갈이, 단풍 등으로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낙엽수는 물론, 상록수에도 낙엽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단풍은 가을에 기온이 0℃ 부근으로 떨어지면서 엽록소가 파괴되고 광합성을 하지 못한 나뭇잎이 붉은색이나 노란색 등으로 변화하는 현상입니다. 사철 기온이 따뜻한 열대지방에는 낙엽은 있지만, 단풍은 없습니다.

나뭇잎은 식물이 생장하는 데 필요한 양분을 만드는 광합성작용, 체내 수분조절을 위한 증산작용 그리고 호흡작용을 합니다. 나뭇잎은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밖에도 빛을 흡수하는 여러 가지의 색소가 있습니다.

잎이 왕성하게 생산 활동을 하는 여름에는 이들 색소가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광합성 기능이 떨어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이 나타납니다.

엽록소가 파괴된 잎은 광합성을 못 하면서 증산작용과 호흡작용으로 수분이 증발하고 에너지만 소비합니다. 나무가 차가운 겨울을 살아나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야 하기에 에너지만 소비하는 잎은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잎이 떨어진 그 자리로 세균과 찬 기운이 새어들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나무는 잎과 가지 사이에 코르크층이라고도 부르는 단단한 막질의 떨켜층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때 잎과 줄기로 오가는 물과 양분의 이동통로가 막혀가면서 잎은 뿌리에서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여 시들어 갑니다. 그 사이 햇볕을 받아 생산한 양분은 잎에 쌓여 분해되고 엽록소가 파괴됩니다.

엽록소가 파괴되면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안토시아닌, 카로틴, 크산토필 같은 색소가 드러나 잎에는 빨강, 노란, 갈색 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단풍이 든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잎에 색소가 더 해지는 것이 아니라 엽록소가 빠지면서 가려졌던 다른 색소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동일 수종이라도 색소 성분의 양에 따라 색의 변이가 다양하여 울긋불긋한 색깔이 나타납니다. 단풍은 한여름 식물체를 키워왔으나 광합성 기능을 잃게 되자 미련 없이 떠난다는 나뭇잎의 작별 신호입니다.

겨울에 나뭇잎이 붙어 있으면 과다한 에너지 소비로 식물이 죽게 됩니다. 잎을 끝까지 매달고 있는 풀들이 겨울에 말라 죽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겨울을 살아나기 위해 과감한 구조 조정을 합니다.

단풍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단풍의 깊은 속내를 살펴보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나무와 잎과의 처절하고 애잔한 생사의 애환이 담겨있습니다. 단풍은 식물체의 생존과 대를 잇기 위한 오묘하고 신비한 구조조정의 희생물입니다.

   
(무주 적상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가을 단풍과 상록수의 어울림)

 

단풍(丹楓)의 한자어 뜻은 ‘붉은 단풍나무’입니다. 노랑, 갈색의 낙엽도 많지만, 가을 산천을 빨갛게 물들이는 대표적인 나무 종류가 단풍나무속(屬) 식물이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가을 단풍을 대표하는 단풍나무는 산지의 계곡에서 자라는 높이 10m에 달하는 교목입니다.

작은 가지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며 손바닥 모양의 잎은 5∼7개로 깊게 갈라집니다. 단풍이 아름다워 주로 관상용으로 심습니다. 땔감으로도 쓰이며 껍질과 가지를 한약재로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식재된 단풍나무는 대부분 자생종이 아닌 원예용으로 품종 개량한 것입니다.

국내에 자생하는 단풍나무 식구에는 다양한 종(種)이 있습니다. 이들 단풍잎을 보면 같은 붉은색이라서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종에 따라 각각 잎 모양이 다릅니다. 단풍잎을 보면 손바닥의 손가락처럼 잎에 갈래가 있습니다.

이것을 열편(裂片)이라 하는데 열편의 수가 각각 다릅니다. 재미나게도 종에 따라 술좌석에서 흔히 주고받는 소주잔 수처럼 3, 5, 7, 9 홀수로 나갑니다. 열편, 즉 잎의 갈래 수가, 간혹 아닌 것도 있지만, 3이면 신갈나무, 5는 고로쇠나무, 7은 단풍나무, 9는 당단풍나무, 11 또는 13은 섬단풍나무입니다.

가을의 단풍 물결은 잎과 나무줄기의 처절한 작별을 앞둔 오색 향연입니다. 나뭇잎은 몸 바쳐 줄기와 가지를 키우며 열매를 맺게 하고 후대의 생존을 위해 숭고한 희생의 길을 기꺼이 떠납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 잎은 뿌리에서 생긴 것이니 떨어져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떨어진 잎은 나무의 뿌리를 덮고 감싸줘서 얼지 않도록 하며 거름이 되어 다시 새잎이 돋아나게 합니다. 단풍은 식물 세계의 숭고한 희생과 후대 사랑이 담겨 있는 처연한 작별의 잔치입니다.

식물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꽃이 피지 않는 포자식물은 약 4.1억~3.6억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에 출현하였으며 오늘날 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꽃 피는 식물이 지구상에 태어나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중생대 말, 공룡이 활동하던 백악기(白堊紀)라 합니다.

약 1.4억~6천5백만 년 전입니다. 그때부터 나뭇잎과 줄기는 단풍을 통해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을 반복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 생의 연속성을 지켜 온 것입니다. 생과 사는 자연계에 살아있는 모든 생체의 피하지 못할 필연의 길입니다.

죽음이 있어 생이 소중한 것입니다. 사라져 가는 단풍잎도 본체의 겨울나기 삶을 위해 기꺼이 땅으로 내려앉아 뿌리를 덮고 거름이 되어, 후대를 위하여 생을 양보하고 길을 떠납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한 자연 세계, 식물의 눈물겨운 생존전략이며 자기희생으로 종족 유지를 위하여 대를 이어온 지혜입니다.

식물의 역사에 비하면 인류의 역사는 참으로 짧습니다. 원시인류가 태어난 것은 약 4, 5백만 년 전이고 현대적인 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나타난 것은 4만~5만 년 전이라 합니다.

지구의 으뜸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 짧은 세월에 어찌 기나긴 역사를 이어온 식물의 생존술과 지혜를 다 배울 수 있으리오. 식물로부터 미처 배우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은 것만 같습니다.

자기 삶이 힘들고 괴롭다고 이웃을 해치고 무가치하게 자기 생을 마감하는가 하면 자기 가족, 어린 자식을 죽음의 길로 동반하는 비정함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인간 현실입니다.

가을을 맞아, 떨어지는 단풍에서 후대를 위한 희생과 섬김이 유장한 세월에 걸쳐 식물계를 이어왔음을 새삼 봅니다. 겸사활세(謙仕活世)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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