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누만년 품관지지..성산읍 고성리 군위오씨입도조(오석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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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누만년 품관지지..성산읍 고성리 군위오씨입도조(오석현)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7.12 0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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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뫼는 풍수학적으로 누운 소의 형국(臥牛形), 누운 소의 젖통에 해당하는 부분

성산읍 고성리 군위오씨입도조(오석현)묘

 

고성리 군위오씨입도조묘
위치 ; 성산읍 고성리 큰물뫼(대수산봉) 동쪽
시대 ; 조선 초기
유형 ; 무덤(군위오씨입도조)

 

 

수산봉 동쪽 능선 아래에 군위오씨 입도조인 오석현의 묘가 있다.

세조 때에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나주영장(羅州營將) 오석현(吳碩賢)이 이 마을 속칭 '간돈지' 부근에 들어와 4대까지 살면서 군위오씨 제주입도조가 되었다.

큰물뫼는 풍수학적으로는 누운 소의 형국(臥牛形)이며 이 묘는 바로 누운 소의 젖통에 해당하는 부분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이 자리는 왕혈(王穴)이라 하여 마을에서 첫손꼽는 명당이라고 하는 자리인데, 지관이 묫자리를 잡을 때에는 상주에게 '누만년 품관지지를 쓰겠느냐, 칠대 정승지지를 쓰겠느냐?'라고 묻자 상주가 '누만년 품관지지를 쓰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고려 때부터 전해져 온 고비지제(高 止祭)의 국법에 따라 2대 봉사(奉祀)하게 되므로 표석을 묻어 뒀었는데 현재 무덤 머리에 고성리 후손들이 묘를 쓰러 갔다가 표석을 찾아내고 무덤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덤은 원래 방묘였었는데 일제강점기 '금바둑판과 기물들이 있을 것'이란 전설 때문에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한때는 친족들이 밤낮으로 보초를 서며 지켰었다.

문중회에서는 회의를 거쳐 유물들을 도굴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직경 21척이나 되는 큰 봉분으로 덧쌓은 것이다.

이 작업에는 신풍리와 고성리 오씨와 오씨외손(鄭岐瑞씨 1987년 83세) 등 장정 30여명이 동원되어 하루에 마쳤다고 한다.(오성찬 외, 제주동부의 핵심마을 古城里. 도서출판반석, 1987. 40·137·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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