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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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 고현준
  • 승인 2019.08.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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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11코스, 하모체육공원-모슬봉..역사가 함께 사는 길

 

연꽃 습지에서..

 

 

연꽃잎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마침 때를 맞춰 비가 한방울 씩 떨어져 물이 맺히는 모습을 보니, 이건 차라리 경이로움이었다.

아주 작은 몇 개의 빗방울이 연잎 위에 앉았을 뿐인데도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했다.

바람에 흔들리며 아주 조그만 물방울까지 다 불러들여 하나로 만드는..

그렇게 만들어진 영롱한 그 물방을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질 때마다 뭉쳐져 조금씩 커졌다.

손으로 잎을 흔들자 이젠 마음껏 흔들리며, 그 물방울은 묘기를 부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물방을 안에는 아주 작은 미세먼지 같은 알갱이들이 함께 갇혀 있었다.

연잎을 계속 보니 ..모든 연잎들이 다 그런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연잎 속에는 몽글몽글한 물 하나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 쌓인 먼지까지 다 깜싸 안아 잎이 바람결에 흔들리다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이고 함께 떨어지는 것이다.

 

 

모슬봉을 올라가는 길 초입에 조그만 연꽃밭 습지가 있다.

그곳에 앉아 쉬면서 연꽃이야기가 펼쳐졌다.

난전 강법선 선생과 고광언 등 셋은 그렇게 앉아 연잎을 마음껏 찬미했다.

난전선생은 “매일 새벽 이슬이 내리면 연잎은 그 이슬을 받아 세상의 티끝과 함께 땅에 떨어뜨리기 때문에 연꽃은 스스로 물을 만들어 살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아침마다 이 연꽃 위의 물을 모아 손님이 오면 그 물로 차를 대접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해줬다.

더불어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시구가 아름다운 서정주 시인의 시도 알게 됐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미당 서정주

 

 

호기심에, 연꽃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보았다.

그 중 압권인 글 하나를 발견했다.

 

연꽃 이야기(연꽃의 10가지 특성)라는 글인데 미디어피아 고정숙 전문기자의 글이었다.

내용이 하도 좋아 필자에게 허락을 받아 이를 소개한다.

 

 

연꽃처럼 사는 삶

 

1.離諸染汚 (이제염오)

진흙에 살지만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사는 사람.

 

2.不與惡俱(불여악구)

연꽃 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 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뿐이다.

나쁜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

 

3. 戒香充滿(계향충만)

戒香:'계를 잘 지켜 갖은 功德이 쌓여서 다른 사람의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됨'을 향내를 널리 피우는 데에 비유 한 말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가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 사람의 人間愛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사람

 

4.本體淸淨(본체청정)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

 

5. 面相喜怡(면상희이)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항상 웃음을 머금고 말은 부드러우며 인자한 사람.

 

6.柔軟不澁(유연불삽)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해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부드럽고 융통성 있으면서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

 

7. 見者皆吉(견자개길)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한 일을 주고 사는 사람

 

8. 開敷具足(개부구족)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

연꽃 열매처럼 좋은 씨앗을 맺는 사람

 

9. 成熟淸淨(성숙청정)

활짝 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 핀듯한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인품

 

10.生已有想(생이유상)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

어느 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 있는 사람,

의복이 남루해도 인격으로 알 수 있는 사람. (사용을 허락해 주신 미디어피아 고정숙 전문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24일은 제주올레 11코스를 걷는 날이었다.

난전선생과 고광언 셋이 아침 7시30분에 만나 모슬포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막힘없이 우리는 출발점인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했다.

출발점에서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09시12분..

이날 하모체육공원 제주올레11코스 안내센터에 도착했을 때 반갑게 우리를 대해 준 이곳 직원은 스탬프 찍는 방법을 전해주며 11코스는 아래로부터 위로 차례대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올레수첩을 보니 시작점과 종점에 대한 안내가 잘돼 있었는데..우리는 단순하게 위로부터 아래로만 찍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수(?)를 배웠다.

 

11코스의 시작은 오좌수 의거비를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만송, 이흥복, 정종무, 김성만, 성일 형제 등에 대한 설명이 의거비에 쓰여 있었다.

 

일본제국이 조선과의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침략을 일삼아오던 중 1887년 봄(고종24년) 일본 점수기선 14척이 가파도 주변에서 어획물을 침탈하면서 식수는 이곳 신령물을 이용했다.

가파도에 천막을 치고 전복을 침탈하던 왜선 6척의 선원들은 1887년 8월13일 모슬포에 상륙하여 민가의 돼지, 닭 등 가축을 약탈하고 신령물 샘터에서 물긷는 지역 아녀자를 능욕하려들자 이 처사에 격분한 이들 5명이 주동이 되어 청년들을 이끌고 격투를 벌였는데, 그들의 환도에 이만송은 참수를 당했고 김성일은 손이 절단되는 등 칼로 무장된 그들을 몽둥이로 응징하려함은 불가항력이었다.

그후 이 사건은 조정에 알려지며 맞서 싸웠던 다섯 사람에게는 이들의 용기를 포상하여 각기 좌수의 벼슬을 하사하였고, 함께 싸웠던 이름 모르는 하인에게는 벼슬 대신 하사금 30냥을 하사하였다...

 

이어 골목을 들어서니 곧 하모항이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는 소문이 파다해 이 하모항 식당가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하다.

예쁘게 꾸며진 나비정원이라는 카페를 지나 동일리로 들어서는 길목에 삼다도소식이라는 노래비가 해녀상과 함께 만들어져 있었다.

 

 

 

모슬포에서 만들어진 삼다도소식이라는 노래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1046번지(돈지동 마을), 이곳에는 1910년대 건립된 판자벽 목조건물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이 건물이 지어진 40년후,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1951년 3월21일 육군 제1훈련소가 이곳 대정읍(당시에는 면이었음)에 설치되었으며, 그해 늦가을에 이 건물 2층에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라는 나무간판이 붙여졌다.

군예대는 육지부에서 피난 온 유호(일명 호동이), 박시춘 그리고 당시 가요계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인 남인수, 고복수, 황금심,신카나리아 등의 가수들과 주선태, 황해, 구봉서 등의 인기배우들로 편성돼 있었는데,대부분은 서라벌악단 소속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전선에 투입될 장병들에게 필승의 상무정신을 드높이는 일이었으며, 위문공연은 물론 수많은 군가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삼도도 소식’은 모슬포 바다를 배경으로하여 지금은 없어져 버린 군예대의 목조2층 건물에서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황금심의 노래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이들은 이 건물의 1층(2층은주로 창작활동과 노래연습을 하였음)에서 기거하였다...

 

삼다도 소식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멩이도 많은데

발부리에 걷어채는 사랑은 없다드냐

달빛이 새어드는 연자방앗간

밤새워 들려오는 콧노래가 구성진다

음-음 콧노래 구성진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바닷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비바리 하소연이 물결 속에 꺼져가네

음-음- 물결이 꺼져가네.

 

노래비의 설명을 듣고 가사를 보니 역사가 스며든 참 좋은 노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송악산 입구에도 산이물이 있더니 이곳 동일리 입구에도 산이물이 있어 들어가 보니 이곳 용천수는 물이 다 말라 있었다.

물이 마른 이곳에는 다른 생물은 보이지 않고 게가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용천수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일리 해안도로로 들어섰다.

 

바닷가에 서 있는 절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봤다.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0호인 서신사소장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 일괄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중종 29년(1534년)봄에 조성된 보살상으로 당시 증멸법사는 처인이다. 이 보살상 머리에는 청동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상호는 원만하다. 이마 중앙에 백호가 있으며, 코는 크고 콧날을 낣으며 인중은 길고 뚜렷하다. 입은 두툼하고 귀 또한 크고 두툼한 편으로 귓불은 뭉특하다, ..복장에서는 발원문과 사리 3과 오방경 2개 등과 함께 금강수보살주문이 발견되었으며, 1939년에 개금하였다. 이 보살상은 조선조 전기의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수작으로서 복장유물이 남아있는 등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특이하게도 이 절은 석조건물이었다.

둘은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참배하고 나오는데 네모난 떡을 세 개나 주셨다고 한다.

이날 하루종일 이 절 떡 하나로 심심하면 요기를 했다.

이어진 길은 동일리해안도로..

예전에는 없었던 길인데 새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이 해안도로에도 특이한 해안파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용암돌을 다 부숴버리고 그 위에 선 해안도로도 모자라 보물같은 용암돌 위로 돌무더기를 올려 놓고 있었다.

아마 이곳은 곧 매립돼 해안절경을 아주 없애버릴 심산 같았다.

방파제로 연결된 해안가 습지와 공터는 곧 매립될 위기에 처한 듯 보였다.

그 길을 지나 진짜 올레길 같은 동네안 작은 오솔길을 걷는데 길가에 앉아 고추를 따는 어른이 계셨다.

연세를 물으니 올해 90세라고 하신다.

노인의 밭작업이 숭고하기까지 했다.

 

 

 

모슬봉이 보이는 입구..

초입에서 처음 만난 인연은 연꽃습지였다.

이곳에 앉아 우리 셋은 연잎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연잎이 흐드러진 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니 모슬봉의 허리를 걷는 중이었다.

저 멀리 산방산과 단산(바굼지오름)이 나타나더니 곧 이어 형제섬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모슬봉 정상에 올라 중간스탬프를 찍었다.

오전 11시30분경이었다.

 

 

 

 

이제 내려가는 길..

모슬봉 정상쯤에 있는 중간스탬프는 공동묘지 꼭대기에 있지만 길은 공동묘지를 피해 산속을 걷도록 안내돼 있었다.

내려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숲속을 걷듯 더위를 피해 나무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

전체 길이는 17.3km이지만 중간스탬프 지점까지는 5.5km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올레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중간에 멈춰서 택시를 불렀다.

지리를 잘 모르는 우리를 겨우 찾은 기사는 많이 투덜거렸지만 어쩌랴.

여론형성자이기도 한 그 기사는 제2공항에 대해 얘기하면서 “알뜨르비행장에는 아주 잘 만들어진 공항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왜 다른 곳에 공항을 짓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제1 육군훈련소 입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 지역이야말로 옛날부터 군사기지가 아니냐”고 전했다.

제주올레11코스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야기가 많기만 한 그런 길을 걸었다는 느낌이다.

절에도 가보고, 삼다도소식도 들어보고, 훈련소가 있는, 그리고 우리 제주의 아픔까지 간직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그런 올레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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