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아온 섬’, ‘비양도’는 지금 가을...
상태바
‘하늘을 날아온 섬’, ‘비양도’는 지금 가을...
  • 고현준
  • 승인 2019.09.01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15-1코스가 되어야 할 비양도 올레길, '신비한 전설의 섬'

 

 

한림읍 협재리 앞바다에 비양도란 섬이 떠있다. 비양도가 생기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들이 있다.

비양도는 고려시대 중국에서 날아와서 생겼다 한다.

중국에 있는 한 오름이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서 지금의 위치에 들어 앉아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 있던 그 오름이 없다고 한다.

날아 떨어진 오름이라는 비양도는 오름이 갑자기 날아와 협재리 앞바다에 들어앉아 바닷속에 있던 모래가 넘쳐 올라서 협재리 해안가를 덮쳤다.

해안에 있는 집들이 모래에 덮혀 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모래밑을 파다보면 사람뼈, 그릇들이 나오고, 아주 부드러운 밭흙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비양도 오름이 날아오다 잘못 왔다고 해서 확 돌아 앉으니 그만 그 자리에 멈추게 되었고, 그래서 비양도 오름이 돌아앉은 형체라 한다.< 북제주군 한림읍 월림리, 홍태효 제보 >

하루는 곽지리에 사는 한 아기 밴 부인이 아침에 물을 길러 바닷가로 나가는데 섬이 곽지리 쪽으로 떠오고 있었다.

그 여인은 섬이 떠오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 "큰 섬이 떠 왐져!"하고 외쳤다.

이 외침소리에 곽지리로 떠내려 오던 섬이 돌아나와서 서쪽으로 더 내려가 협재리 앞바다에 머물러 버렸다 한다.< 북제주군 애월읍 금성리, 좌수선 제보 >

-제주도 제주설화에서..

 

 

 

비양도에는 아직 올레코스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섬을 빙 둘러 걷는 길이 모두 다 아름다운 올레길이다.

지난 8월31일은 비양도 올레길을 걸었다.

오전 9시15분에 도착하는 바람에 첫 배를 놓치고 3시간을 기다려 12시 배를 탔다.

제주의 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

비양도는 멀리서 볼때도 아름답지만 안으로 들어가 그 속살과 닿으면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이날도 여전히 배안은 비양도를 찾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12시 출발할 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고, 이 뱃시간을 놓친 사람들을 위해 12시 30분에 또 한 대의 배가 더 뜬다고 증편을 안내했다.

비양도로 들어가는 배는 오전 9시 12시 14시 16시에 있지만 중간중간 사람이 많을 경우 수시로 증편을 한다고 한다.

자리에 편안히 앉아 배로 10여분이면 도착하는 비양도.

비양도에는 자동차도 없지만 자전거 조차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기만 했다,

섬을 한바퀴 도는 데는 40여분이면 걷는다고 한다.

비양봉을 올랐다 내려와 섬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아도 길어야 1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비양도의 다양한 그 아기자기한 맛이 올레길의 또 다른 묘미를 전해준다.

이날은 날씨도 맑아 하늘은 수만 가지의 구름형상을 보여주며 가을을 전해주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 하얀 구름 아래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곳곳에 산재한 비양도만이 간직한 작은 비경들이 넘쳐 흐른다.

코끼리바위와 아기 업은 돌은 물론 마치 독도를 축소시킨 듯한 작은 섬도 두엇 보였다.

멀리 산방산의 윗몸 자태가 다른 오름들과 어울려 떠오르고 수월봉과 그 앞 차귀도도 코앞이다.

그냥 걷기만 하면 섬 하나가 손에 잡히는 아주 조그만 섬.

배에서 내려 동쪽으로 가면 펄랑못을 지나 아기 업은 돌과 코끼리 바위와 만나고, 섬 정면에는 한라산이 코 앞에 수많은 오름들을 앞세우고 서 있다.

 

 

비양봉에 오르니 호랑나비 몇 마리가 비상을 연습하듯..

나뭇잎을 따라 날았다 앉았다 했다.

한림항은 코앞이지만 에월항은 저 멀리에 있다.

비양도 올레길은 비양봉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다.

쌍둥이 분화구가 높낮이가 다른 이 아름다운 능선 올레길을 만들었다.

 

오름나그네 김종철 선생은 비양도를 ‘바다에 뜬 오름’이라고 말했다.

그 오름이 비양도이고 비양봉이 곧 마을이다.

비양봉이 유사시대에 2번 분출했다는 것으로 보아 비양봉이 이중화산이라는 점에서 가장 젊은 오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비양봉은 가재라는 이름도 있으나 그 뜻은 모른다고 밝히고 있다.

 

 

 

 

‘하늘을 날아온 섬’ ‘비양도’...

인터넷을 찾아 비양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모아봤다.

 

전해오는 이야기

 

《세종실록지리지》(제주)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비양도(飛揚島)'라 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산천’조에는 “비양섬은 제주목 서쪽 80리에 있다. 물길은 5리이고, 양목장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등의 옛 기록 속에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으로 서산(瑞山)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서산, 고려 목종 5년 6월에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산에 네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아나와 닷새 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엉기어 기와 돌이 되었다.

목종 10년에 상서스러운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나왔다.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지동이 우레 소리 같아 무릇 일곱 날 아침과 밤 만에 비로소 개였다.

산의 높이가 백여 길이나 되고 주위가 40여 리나 되는데 초목이 없고 연기가 그 위에 덮이고 바라보기에 석류황 연기 같아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공지가 친히 산 밑에 이르러 그 모양을 그리어 바치었다” 하니 지금 대정현에 속한다.

『탐라지』(제주)에도 '비양도(飛揚島)'라 표기했는데, "제주성 서쪽 10리에 있다. 바닷길로 5리에 있고, 둘레는 10리이다. 화살대가 많이 있다."라고 했다.

『고지도첩』의 「탐라전도」에 '비양도(飛揚島)'라 했고, 서쪽에는 고려 시대 화산 폭발로 생겼다는 '서산(瑞山)'이 그려져 있다.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비양도(飛揚島)'라 표기했고, '일명 서산(一名瑞山)'이라 하여 서산을 비양도에 비정하였다.

『해동지도』(제주삼현)에는 '비양도(飛陽島)'라 했다. 『영주산대총도』에도 '비양도(飛陽島)'라 했는데, 오름 봉우리를 붉은색으로 칠해 화산쇄설물인 스코리아(송이)를 표현했다.

『대동여지도』에는 '비양(飛揚)', 『조선지형도』에는 '비양도(飛陽島)'라했다. 일부 지도에도 고려 시대 화산폭발로 형성된 '서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남환박물』에서는 서산을 더바섬으로 추정했는데, 1707년의 『탐라지도병서』나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서산이 비양도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서산이 대정현에 있다’고 했으므로 군산이나 가파도로 보는 경우도 있다. 1,000년 전 제주도에는 99개의 봉우리밖에 없어서 100봉을 채우지 못해 대국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중국 쪽에서 1개의 봉우리가 제주도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는데 한림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굉음에 놀라 집밖으로 나갔다가 이를 보고 가만히 있으면 마을과 부딪칠 것 같아서 멈추라고 소리쳤으며 이로 인해 지금의 위치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02년(목종 5)에 화산폭발에 의하여 이 섬이 형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위키백과)

 

 

 

‘천년의 섬’이 아니라 2만7000년전 생성

강순석 박사의 제주 지질 이야기

 

비양도는 서기 1002년에 폭발한 화산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 역사시대인 ‘고려 목종 5년에 하늘에서 날아와서 생겨난 섬’이라는 게 비양도의 탄생 전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2만 7000년 전에 분출한 화산체로 밝혀졌다.

비양도 포구에 서 있는 ‘탄생 천년의 섬’이라는 큰 비석은 안타깝게도 단지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정표일 뿐이다.

비양도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인 비양봉 조면현무암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알곤-알곤법으로 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다.

당시는 빙하기에 해당된다. 10만년 전부터 시작된 마지막 빙하기는 1만5000년 전에 최고조에 달한다.

극지방에 두껍게 얼음층이 쌓이면서 바다의 표면인 해수면은 내려갔다. 이 때 우리나라 주변에서 약 150m 정도 해수면이 하강했다.

중요한 것은 해수면이 하강함에 따라 해안선이 수백 ㎞ 이상 후퇴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얕은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섬들은 육지와 연결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연륙설이다.

당시 비양도 주변에서는 적어도 수십m의 해수면 하강으로 해안선은 바다쪽으로 한참 멀리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비양도는 육지와 연결돼 있었다.

현재 비양도는 협재해수욕장에서 약 1.5㎞ 떨어져 있고, 그 사이의 수로는 10m 정도의 얕은 바다로 돼 있다.

따라서 당시 비양도는 육지였기 때문에 화산활동은 당연히 오늘날 중산간에서와 같이 송이로 이루어진 오름, 즉 분석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에 지금과 같이 바다 속의 섬 환경 아래에서 폭발했다면 아마도 화산체는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수성화산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제주에서 유일하게 섬이면서도 송이로 구성된 오름의 비양봉을 만든 지질학적 근거다.(제주매일)

 

 

 

비양리(비양도) 비양나무군락지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에 있는 비양나무 자생 군락지이다. 해발 114.1m의 비양봉에는 원추형의 2개 분화구가 있는데, 그 중 북쪽에 있는 분화구에서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비양도에서 김문홍 교수가 처음으로 수집하였으며 '바위모시'라고도 한다. 본종은 난지산(난대성)으로 일본의 규슈(九州), 시고꾸[四國], 와카야마 등지에서 자란다.

비양나무는 쐐기풀과의 바위모시속 낙엽관목으로 줄기는 곧고 2m 정도의 높이로 자란다. 작은 가지는 가늘며 암자색을 띠고 어린 가지에는 가는 털이 있다. 잎은 호생하고 장타원형, 장타원상형이고 기부는 원형이거나 둔형이다.

잎은 길이 6~12cm, 폭 2.5~5cm, 잎의 가장자리에는 거치가 큰 편이며 잎 끝은 꼬리처럼 길어진다. 잎은 얇고 윗면은 약간 거칠다. 뒷면은 하얀 면모가 밀생하고 있어 백색을 띤다. 면모가 아예 없기도 한다.

잎자루, 어린 가지에도 부드러운 털이 있다. 잎자루는 짧다. 길이는 5~10㎝, 폭은 2~4㎝이고, 마르면 검게 된다. 주맥은 3개이고, 뒷면이 융기한다.

꽃은 2가화(자웅이주)로서 이른 봄에 지난 해 가지의 낙엽된 엽액에 작은구형으로 뭉쳐 피는데 꽃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열매는 짙은 보라색이다.

비양도의 비양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양도의 분화구에서만 자생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향토문화전자대전) -고영철의 제주문화답사기

 

 

 

비양도 동쪽 해안에는 펄랑물 또는 펄랑호라고 부르는 초승달 모양의 호소가 출현 한다. 길이 500m, 폭 50m, 면적 17,500㎡, 최대 수심 1.5m의 크기이다.

염분 농도가 20.8~23.4‰인 염습지로서 조석의 영향을 받아 간조 시에는 물이 바다로 빠지고 만조 시 에는 다시 들어와 수위가 변동하고 있다.

펄랑호는 원래 바다였으나 1959년 사라호 태풍으 로 심한 해일 피해를 입자 제방을 쌓아 바다와 차단시킴으로써 생긴 일종의 인공 호소이다 (제주도 외, 2001).

민물장어와 게가 서식하고 있는 펄랑물에는 뻘이 많은데, 본래 펄랑물 은 뻘이 있는 물을 가리키는 말로서 과거에 섬 주민들이 화상을 입으면 상처 부위에 이 뻘 을 발라 치료에 이용했다고 한다(김동섭, 2003).

 

 

 

"오름나그네", 김종철

보통 비양봉으로 통하나 주민들 사이에서 '암메'라고 불리고 있다. '암메'란 분화구를 가진 산의 통칭이며 분화구 자체를 가리키는 '암메창'의 약칭이기도 하다.

이 오름에는 두 개의 분화구가 있어 '큰암메' '족은암메'로 구별해 부르고 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고유명사는 아닌 셈이다.

한데, '가재'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있으며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4)에도 '가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어떤 연유에서의 호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 사이에는 아는 이가 드물며 서쪽 사면 우묵하게 골진 곳을 가잿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 오창명, 1998년, 제주대학교출판부

서산(瑞山)은 한자의 뜻 그대로 '상서로운 산'의 뜻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가재' 또는 '암메' 등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가재'라는 말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오름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또 오름 이름이 아니라 마을 북서쪽 바닷가에 있는 두 개의 바위를 일컫는 이름으로 불린다.

곧 큰 바위를 '큰가재', 작은 바위를 '족은가재'라고 한다.

'암메'는 '암메창'이라고도 한다.

오름 위에 두 개의 분화구, 곧 '굼부리'가 있는데, 큰 굼부리를 '큰암메' 또는 '큰암메창'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분화구를 '오름창아리'라 하고, 큰 분화구를 '큰암창아' 또는 '큰암', 작은 분화구를 '족은창아' 또는 '족은암'이라고도 부른다.

'암메'는 '암+메'의 구조로, '암창아'는 '암+창아'의 구조로, 분화구를 가진 오름이라는데서 연유한 것이다.

 

 

 

비양도는 아름다운 올레길이지만 올레코스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아직 천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비양도는 늘 케이블카 설치 추진 등 다양한 개발계획들이 세워지곤 했었다.

14코스 종점이자 15코스의 시작점인 비양도선착장은 제주올레 15-1코스라는 새로운 올레코스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하지만 우도처럼 큰 섬이 아니기에 돈 버는 수단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번잡해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비양도가 언제까지 현재의 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지킬 수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