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문화공원은 신철주 군수와 협약 당시 기획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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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문화공원은 신철주 군수와 협약 당시 기획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 고현준
  • 승인 2020.07.05 22: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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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4)올해 말이면 협약 끝나는 제주돌문화공원의 미래..백운철 단장에 듣는다
올해말이면 협약이 끝나는 돌문화공원

 

“중국기업이 제주도에 카지노나 대형리조트를 건설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정말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알릴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 중국인들이 제주를 더 많이 찾도록 해야 한다”

왕루신(王鲁新) 주제주 중국 총영사가 제주도의 한 고위층과 만났을 때 조언했다는 얘기다.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신화가 함께 꿈꾸는 공간..

제주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

제주도민이 누구에게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공간..

그런 총영사의 지적에 걸 맞는 곳이 제주도에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제주돌문화공원이다.

제주도 역사 속에 이런 대역사가 있었을까..

지난 1999년부터 시작된 제주돌문화공원 조성은 일단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대형 프로젝트 몇 개만 남기고 현재 전시장 내부 공사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제주돌문화공원은 언제 모두 완성되는 것일까..

오는 12월31일이 되면 지난 20여년간 진행돼 온 제주돌문화공원 조성에 대한 협약이 끝나게 된다.

그 이후의 제주돌문화공원은 또 누가 계속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본지는 긴급취재를 통해 제주돌문화공원의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 진행될 여러 가지 남은 사업은 무엇인지에 대해 심층취재했다.

그리고 세계인에게 완성된 제주의 돌문화공원이 과연 그동안 이 사업을 진행해 온 백운철 사업단장의 희망처럼 설문대할망신화공원으로 바뀐 이름으로 완성돼 나타날 것인 지도 알아봤다.

제주돌문화공원은 과연 현재 어느 정도 완성됐는 지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해 마지막 내용을 정리한다.(편집자주)

 

 

”’제주돌문화공원‘(이하 돌문화공원)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한 박물관이자 테마공원이다. 약 3,269,731㎡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 위에 약 1,852억원을 투자하여 짓고 있는 이 테마공원은, 탐라목석원의 원장이었던 백운철(1944년생)이 평생 수집한 돌관련 유물 수만점을 기증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 내용은 ’퍼포먼스로 본 문화공간의 의미화 과정-제주돌문화공원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논문은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석사학위 논문(이경진)으로 돌문화공원의 조성과정과 백운철 단장의 개인사가 고스란히 수록돼 있다.

“지역의 문화와 삶이 결합되어, 진정한 장소성을 지니는 문화공간을 조성할 수는 없을까, 연구자는 그 방법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제주돌문화공원(Jeju Stone Park)이 그 사례이다.”

이 논문은 제주도의 돌문화공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다음부터의 글은 이 논문 내용을 중심으로 본 백운철의 인생을 다이제스트한 내용이다.

 

백운철 단장

 

백운철은 어떤 사람인가..

 

백운철이 돌과 나무뿌리를 수집하기 시작한 때는 20대 중반부터지만 본격적으로 수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탐라목물원’을 운영하면서부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말 “미친 듯이 산과 바닷가를 싸돌아다니기‘를 10여년, 그는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다.

..백운철은 먼저 제주도를 알기 위해서 무작정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69년도의 봄과 가을에 두차례 일주했다. 그는 그때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으로 깊이 느꼈다“고 한다.

일주를 할 때는 돌을 수집하지 않았다.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수집을 시작했다. 이십대 후반이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돈도 안되는 ’수집‘이나 하는 백운철을 가족들이 곱게 봤을 리 없다. 그야말로 ’내 놓은 식구‘였다.

유일하게 백운철의 행위를 이해하고 지지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였다. 아들이 군대에서 괴목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듣고 휴가 나온 백운철에게 나무, 돌, 한란을 수집하는 성충모 씨를 소개해 준 것도 어머니였다. 뿐만 아니다. 어머니는 다른 식구들 몰래 백운철을 금전적으로 후원해 준 후원자이기도 하다.

(중략)..어머니는 백운철의 수집을 도운 금전적 후원자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이자 최고의 ’예술적 감식가‘였다. 백운철이 수집한 돌과 나무뿌리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수집하는 행위가 ’가치있는 일‘이라고 격려했다. 백운철에게 어머니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예술적 후원자‘였다. 그래서 그가 기획한 최초의 수집품전시회인 ’형상목 모자전‘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프랑스어로 감사, 경의, 존경의 의미를 갖는 ’헌사‘를 말한다)였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모은 유물을 가지고 1971년 8월19일에 드디어, 제주시 이도동에 250평 부지를 임대하고 ’탐라목물원‘을 개원하게 된다. 당시 탐라목물원에는 나무뿌리 1,000여점과 사람 모양을 지닌 돌 수십 여점과 자연석 수백점이 소장돼 있었다.

..그리고 1972년 4월14일, 수백점에 이르는 조록 형상목 중 20여점이 희귀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아 ’제주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는 개가를 올린다.(중략)

..드디어 1976년 4월 27일에 탐라목석원으로 개칭하여 초라하게나마 문을 열었다. 그러나 찾는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중략)..

1981년 6월8일 백운철은 도청 조철연 관광국장, 홍순만 문화재과장, 이영배 담당자를 찾아가 목석원 기증의사를 밝힌다. 이영배 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한편 약간 의아한 눈치를 보였다. 그런데 조 국장은 목석원을 도에서 맡으면 오히려 잘되지 않을 것 같다면서 백운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주신문사 편집국의 송상일 씨가 노발대발하면서 당장 기증시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 백운철은 그 당시 옳은 판단을 갖게 해준 조철연 국장과 송상일 씨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백 단장은 "신철주 군수가 없었다면 돌문화공원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돌문화공원 조성계획 단계와 사회적 인적관계

 

백운철이 40여년 동안 모아놓은 자연석과 유물들이 무려 2만여 점이 넘었다. 11톤 크레인 500대 분이었다. 엄청난 양의 돌과 민속품을 보관하기에는 목석원은 턱없이 좁았다. 그래서 땅을 확장하고 박물관을 짓고 싶었지만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관에서는 사업부지 마련과 행.재정적 지원을, 자신은 유물을 무상으로 기증하여 박물관을 만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래서 간략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자자체에 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계획서는 담당실무자 선에서 끊기고 말았다.(중략)

1998년에 ’화산탄전‘이란 전시회를 목석원 갤러리에서 열었다.

(중략)..돌박물관 사업계획서를 읽어본 J신문사 K부국장은 타당성이 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신철주 북제주군 군수에게 연락했다. 당시 K부국장은 신철주 군수와 처조카 사이였고 신 군수는 직접 백운철에게 전화를 하여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책임자가 사업계획서를 읽고 연락한 것은 처음이었다.

..신철주 군수는 다랑쉬오름 주변에 15만평 부지를 확보할 수 있으니 당장 추진하자고 했지만, 백운철은 ”30만평 이하는 절대로 안된다“고 버텼다. 왜냐하면 최소한 30만평 규모가 되지 않으면 후손들을 위한 기념비적인 공원을 조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증략)

..돌문화공원 조성에 대한 논의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1999년에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협약서의 핵심내용은 ’탐라목석원이 보유한 수천 점에 이르는 유물을 당시 북제주군에 무상기증을 하여 돌문화공원을 조성하되, 목석원에서는 기획, 디자인 설치 감독원을 갖고 조성하는 권한을 백운철에게 20년동안 보장한다‘는 것이었다.(중략)..

'앞으로 20년은 더 노력해야 돌문화공원은 어느 정도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는 백 단장

 

..백운철이 수십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유물을 기증하면서 요구한 것은 명예도 돈도 아니었다. 단지 40여년 전부터 ”상상하고 기획“해 왔던, 제주의 독특한 신화, 역사와 민속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공간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신철주 군수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건물에 내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고 10년동안 무보수로 일하겠다. 대신 20년 동안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그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획, 디자인, 설치감독 권한과 직책을 달라“. 그의 제안이 수용됐다.

백운철은 ”신철주 군수가 없었다면 돌문화공원은 생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철주 군수는 관선 때 한번, 민선 때 세 번을 연달아 북제주군 군수를 했을 정도로 대중적 지지가 높은 군수였고, 돌문화공원의 건립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순탄하게 조성될 것 같았다.

그런데 신철주 군수는 심장에 지병이 있었고, 그 병으로 결국 돌문화공원이 준공하기도 전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러자 조성계획은 터덕거리기 시작한다.(중략)..

제주돌문화공원이 공식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때는 ’제주돌문화공원사업소‘를 개소한 2005년 2월22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조성이 시작된 시기는 당시 북제주군과 탐라목석원이 협약을 체결한 1999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탐라목석원은 1999년 9월9일 북제주군과 ’제주돌문화공원 기본기획(안)‘을 제출한다. 이 기본기획안을 바탕으로 ’제주돌문화공원 조성 기본계획‘을 2000년 2월에 수립하고, 2001년 9월19일 기공식을 하면서 돌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첫 삽을 뜨게 된다.

2002년 북제주군과 탐라목석원 등이 참여하여 추진기획단을 민과 합동으로 구성하면서 백운철 원장은 ’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이라는 역할을 가지고 조성활동에 결합한다.

돌문화공원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총 20년동안 2단계에 걸쳐 조성된다.

제1단계에서는 진입로광장, 주차장, 매표소 등과 같은 기본 편의시설과 돌박물관, 제주돌문화전시장, 오백장군갤러리 등과 같은 주요 전시시설을 짓는다.

2단계에서는 설문대할망전시관 제주학연구소단지와 같은 핵심시설과 문화예술 창작공간, 전원숙박단지와 같은 편의시설을 짓는다.

(현재 제1단계 공사는 모두 마무리됐다. 2단계 공사는 계속 진행중이다.(편집자)

 

이경진 선생은 이 논문말미에서 그렇게 전한다.

 

제주에 설문대할망 신화가 있습니다.

그 상상력의 규모에서나 기발함, 성스러움에서 이 신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주의 보물자산이라고 할 것입니다.

바로 그 보물같은 이야기가 현재 돌문화공원에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거대한 신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돌아본 어느 건축가는,

신화를 현대건축물로 디자인한 경우는 미국의 맨해튼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과 제주돌문화공원이 핵심적인 사업으로 추진중인 설문대할망전시관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은 맨해튼 작은 섬에 세워진 높이 약 100m의 입상이고 설문대할망전시관은 제주섬에 누워있는 길이가 약 500m가 되는 와상입니다.

설문대할망전시관은 자유의 여신상보다 장축이 약 다섯배나 긴 건축물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높은 빌딩숲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나 아름다운 한라산을 배경으로 길게 누워있는 설문대할망전시관은 둘 다 여신들을 소재로 작은 섬에 세워진 상징적 건축물이라는 것입니다.

건립취지가 ’평화‘인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알다시피 횃불을 높이 쳐들고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평화의 상징입니다.

설문대할망전시관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오름 사이에 편안하게 누워있는 ”자연의 힐링“, 역시 평화를 상징한 모습입니다.

설문대할망전시관이 세워지면 과거, 현재, 미래의 돌문화를 뼈대로 제주의 신화, 역사, 민속자료들이 시대별로 테마별로 설문대할망의 이미지로 설계된 큰 공간 안에 체계적으로 전시되고 역동적으로 활용되는 최첨단 교육의 장이 될 것입니다.(중략)

 

앞으로의 과제와 백운철 단장 미니인터뷰

 

돌문화공원에 대한 협약은 올해 말이면 끝난다.

그러나 아직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에 대한 협의는 아무 것도 진행되는 움직임이 없다.

본지는 제주도와 돌문화공원 기획단간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이 기사를 계속 연재해 왔다.

마지막 순서로 백운철 단장과의 미니인터뷰 내용을 전하며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

 

본지는 제주돌문화공원의 역사를 써가고 있는 백운철 기획단장에게 공식 인터뷰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백운철 관장은 ”오해를 받기 싫다“며 ”기간 연장이 되거나 일을 그만 두게 됐을 때 그때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내용은 인터뷰 대신 그와 담소하며 직접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글이다.

백 단장은 "세계적인 섬 제주도 스위스처럼 일류 행정가가 나와서 세계 최고의 환경도시로 만들아 한다"고 강조했다

 

-입장문을 발표하신 배경은..

”돌문화공원은 어디까지나 제주도의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주도를 도와주기 위해서 협약을 했고 그 때도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돌문화공원 자체를 순수하게 환경적인 측면에서 바라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많은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인터뷰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희들의 입장문은 도와 도지사께도 이미 발송이 된 상태입니다. 협약이 끝나면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진행 못한 4년 정도의 기간은 더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4년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내용이 없더라도 돌문화공원 조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갑(당시는 북제주군, 현재는 제주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미리 얘기할 경우 무슨 이권이나 있는 것 같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단에서 먼저 기간연장을 요청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많은 오해를 받아 왔습니다,.“

"설문대할망은 아름다운 제주도를 만든 예술가였다"고 전한 백 단장

 

-돌문화공원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주도의 과제는 환경입니다. 저는 제주도는 영적인 섬이라 생각합니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건 설문대할망이 예술가였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신화이긴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제주도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주도를 만나고 영적인 분위기가 있다고들 합니다

이상한 섬이라고도 합니다. 오름도 세계에서 면적으로 봐서는 가장 많다고 합니다.그러나 제주도는 지금 환경적으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돌문화공원은 정말 모든 것이 어려웠던 시대에 신철주 군수가 이 땅과 함께 모든 것을 다 해 주셨습니다

신 군수는 돌박물관 개관 1년전에 돌아가셔 아쉽지만 지금은 당시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돌문화공원은 협약 당시 신 군수가 도와줄 때 그 기획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공치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 시대가 지나면 언젠가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시작한 동기도 궁금합니다..

”돌문화공원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새마을운동 때 제주도의 모든 민속문화룰 모두 없애려고 했기 때문에 그걸 모아놓은 것이 돌문화공원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처음 시작하실 때 20년 정도면 된다고 보셨는지요..

 

“전 세계적으로도 20년 동안 이런 사업을 시작한 곳이 없습니다. 당시에도 20년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돌문화공원은 앞으로 20년은 더 조성해야 어느 정도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사실 돌문화공원은 전체가 무대이고 공연장입니다. 관광이란 ”빛을 보러 간다는 뜻입니다. 그 빛은 그 지역만의 영혼을 보러 가는 것이기도 하지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제주도도 스위스처럼 일류의 행정가가 중심이 돼서 일류의 도시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앞으로 제주도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장시간 수고 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연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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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창 2020-07-06 22:03:02
제주문화의 정수

제주에 와서 살게되어 수많은 친지ᆞ친구 ㆍ사돈에 팔촌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이드하고 난뒤 소감을 물어보면
돌문화공원에서 신비스런 제주도의 기운을 강하게 받고
돌아간뒤에도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함~

말은거창하오만 2020-07-06 13:16:20
관광이라 하셨소? 돌문화공원에 과연 빛이 보인다고 생각하시오? 막상 10분만 돌아다녀보면 웅장한 전시관만 있을 뿐 전혀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 돌들의 단순 전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되오만 이런 사업들이야 말로 예산낭비의 끝판이라고 아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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