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조선시대 국마장 9소장이 있던 마을.. 한남리 공동목장모세남못(봉천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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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조선시대 국마장 9소장이 있던 마을.. 한남리 공동목장모세남못(봉천수연못)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6.1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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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리 목장은 가운데 서중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걸쳐 형성,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남리 공동목장모세남못(봉천수연못)

 

위치 ; 남원읍 한남리 서성로 한남교차로 서쪽 약 600m 지점 길 남쪽
유형 ; 수리시설
시대 ; 일제강점기

 

한남리_모세남물 물풀
한남리_모세납못

 

남원읍 한남리는 동으로는 수망리와 의귀리, 서쪽은 위미리, 남은 남원2리를 두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목장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지는데 이 목장지대를 지나면 조천읍 교래리가 이어진다.

강만익의 자료에 의하면 1930년대 일제는 일본국민의 식용과 군대용 통조림을 제조하기 위해 제주 지방의 축산을 적극 장려하면서 각 마을별로 공동목장조합(비법인단체)을 설립하도록 하여 1931년 3월부터 1943년 12월 사이에 총 143개의 공동목장이 존재한 것으로 확인된다.

1930년대 제주도 공동목장은 대부분 개인 소유의 마소들이 방목되어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공동목장 조합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곳 중산간 마을인 한남리는 조선시대 국마장인 9소장이 있던 마을로 광활한 초지와 목장 내 마르지 않는 물통을 가지고 있다. 한남리 공동목장은 사려니오름에서 거린오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목장의 소유는 부락이었는데 1912년 토지 조사과정에서 목장 측량을 할 때 목장이 넓으면 마을민들의 수고가 많아지고, 세금 부담이 커진다고 하여 줄이고 면소유로 이전했고 중간에 군소유였다가 지금은 도소유라고 한다.

서쪽 쓰레기장 뒷머럭에서 동으로 민오름 섯밭까지로, 목장의 구모는 전체가 60만평 정도가 되는데, 내 서쪽이 50만평, 내 동쪽이 10만평 정도로 서중천의 서쪽이 훨씬 넓은 편이다.

한남리 목장은 가운데 서중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걸쳐 형성되어 있어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다. 그리고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모세남 등 목장지대 내에는 여러 물통들이 존재하고 있어 목축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모세남못’은 원래 그 지경에 물이 고이는 곳이었다. 일제시대에 손을 보아 물통으로 가꾸었으며, 해방 후에도 손질을 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인공적으로 쌓은 담이 남아 있다. 위미의 소들도 와서 먹었었다. 이 물이 가물어서 물이 마를 정도면 엄청난 가뭄이 든 것이었다.

물달개비, 세모고랭이 등 여러 가지 물풀이 자라고 있고 2011년 10월 답사 때에는 물오리 5~6마리가 찾아왔었다.
《작성 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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