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임금의 교서를 받들었던 곳..건입동 연교정터
상태바
[향토문화] 임금의 교서를 받들었던 곳..건입동 연교정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2.11 0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누각..당시 이 건물을 세웠던 김정의 상량문이 남아 있다

건입동 연교정터

 

위치 ; 우당도서관 진입로 입구
유형 ; 관청건물
시대 ; 조선

건입동_연교정터

 


연교정은 제주목사 김정이 1737년(영조 13)에 동문 밖 3리에 세운 누각으로, 임금의 교서를 받들고 전문(箋文)을 올릴 때에 그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전문은 길사나 흉사가 있을 때에 지방관이 왕에게 아뢰는 사륙(4・6)문체의 글을 말한다.

정조의 대전탄일(大殿誕日)에 지방관이 축하하는 전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탐라순력도에도 대정배전이란 제목으로 된 그림이 있다.


이원조가 1841년에 쓴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재동문외삼리(吊門外三里)”라고 하였다. 3리이면 약 1.2㎞ 정도이므로 표석이 세워진 건입동 602-19번지 우당도서관 입구 버스정류소 서쪽 길 건너편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금폐(今廢)’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연교정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겨우 그 위치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이 건물을 세웠던 김정의 상량문이 남아 있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