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수질 갈수록 악화, 식수불가.. 봉개동 안새미물(명도암물,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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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수질 갈수록 악화, 식수불가.. 봉개동 안새미물(명도암물,용천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3.0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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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암 김진용(金晉鎔, 1605~63) 선생의 은거할 때 주로 이용했던 샘이라고 한다

봉개동 안새미물(명도암물,용천수)

 

위치 ; 제주시 봉개동 846-1번지.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수리시설(용천수)

봉개동_명도암조리새미 밖.
봉개동_명도암연못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오름(형제봉) 중 안새미오름 북쪽 표고 317.3m에 있는 용천수이다.

『제주의 물 용천수』에 따르면 용암류경계형, 1일평균용출량은 102㎥, 최대 200㎥라고 한다. 필자가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이 샘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샘이 돌 틈에서 나올 뿐이었는데 2000년을 전후하여 위에 굴처럼 돌을 쌓아 물이 나오는 곳을 보호하고 있다.


명도암 김진용(金晉鎔, 1605~63) 선생의 은거할 때 주로 이용했던 샘이라고 하며, 오름의 굼부리 쪽(샘에서 동남쪽)으로 약간 올라가면 명도암 김진용(明道菴 金晋鎔)선생을 기리는 이숭녕(李崇寧)의 명문으로 된 ‘명도암선생유허비(明道庵先生遺墟碑)’가 서 있다. 김진용 선생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구좌읍 한동리 출신이다.

1618년(광해군 10년)에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 귀양 온 이익(李瀷)에게 수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숙녕전 참봉(肅寧殿 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사퇴하고 귀향하여 이곳에 은거하면서 훈학에 힘쓰는 한편, 1659년 목사 이회에게 건의하여 장수당(藏修堂)을 세워 육영에 평생을 바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샘은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명도암마을의 식수로 이용되었으며, 제일 위로부터 신을 위한 물(원형), 다음은 사람을 위한 물(음료수)에 이어 쌀이나 채소 따위를 씻는 곳(타원형), 목욕이나 빨래하는 곳(약 150㎡, 직사각형), 동식물을 위한 즉 마소에게 물을 먹이는 못(약 300㎡,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해 놓고 있다.


이 못은 2년전에 봉개마을에서 농업용 저수지로 만들기 위해 터 파기 공사를 시작했다가 환경운동연합의 저지로 2년여의 시간에 걸쳐 습지로 정비되게 되었다. 세모고랭이, 개구리밥, 가래, 고마리 등을 볼 수 있다. 동물로는 드렁허리·붕어 등의 어류와 참개구리·물달팽이 등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명도암물은 근래들어 수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명도암물은 300년 전 설촌 내력이 담겨 있는 역사가 깊은 물이며 예전에는 이곳의 수질이 매우 좋아 이웃마을인 당가름에서 이곳까지 물을 길러 왔다고 하며, 설사를 치료하는 물이라고 소문이 나 이웃 마을에서 치료를 위해 직접 명도암물을 찾아오거나 물을 길러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수질검사를 토대로 제주시 상하수도사업소가 설치한 ‘식수불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제민일보 000201)
《작성 1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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