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초승달의 뿔 모양 닮아 월각지(月角池)..상대리 돌개기못(봉천수연못)
상태바
[향토문화] 초승달의 뿔 모양 닮아 월각지(月角池)..상대리 돌개기못(봉천수연못)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3.28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돌개기는 애월·한림·한경 일대의 중산간 못 가운데 가장 큰 못이었다.

상대리 돌개기못(봉천수연못)
 

위치 ; 상대리 한라시멘트 공장 남서쪽에 위치(N33°23′20.5″ E126°18′47.5″)
유형 ; 수리시설(봉천수)
시대 ; 조선

상대리_돌각이샘
상대리_돌각이못

 

개기못은 초승달의 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한자말로 월각지(月角池)다. 도로개설 이전에는 2개의 연못이 서로 연결되었던 연못이다.

해발 200m에 자리잡은 이 못은 원래 크기가 674평 가량 되며 지형이 낮아 표출수가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

현재 면적은 600㎡, 수심은 1~2m이다. 이 못은 주로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음용수로 활용됐던 7∼8평 크기의 또 다른 못이 있다. 물통 주변은 가시덤불로 우거져 있다.


돌개기는 애월·한림·한경 일대의 중산간 못 가운데 가장 큰 못이었다. 돌개기못은 상대리를 비롯 귀덕 4구와 대림리 등 6개 마을에서 우마급수장으로 활용할 만큼 쓰임새도 컸다.

소에게 물을 먹이러 6개리 주민들이 몰려들 때면 가끔 소싸움을 붙였는데 대개 마을 대항 소싸움으로 커지곤 했다.

이 못은 원래 자연연못이며 제민일보(000801)에 따르면 물을 가두기 위해 석축을 쌓은 것은 179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는데 1790년은 1970년의 오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일부 매립되고 가뭄때 물을 빼 사용하려고 양수시설을 갖추는 바람에 못 본래 모습이 많이 훼손됐다.

지금 상태로는 초승달의 뿔 모양을 알아볼 수 없다. 게다가 아스팔트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창포 군락과 함께 각종 수생식물들이 서식하고 못 서쪽에는 이곳에서 흘러나간 물이 늪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못 주변이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되는 바람에 물 흐름이 끊겨 수생식물 서식환경이 크게 파괴되고 있다. 예전 돌개기못 서쪽에 자리잡은 음용수용 연못에는 ‘몰랑시’라는 풀이 많아서 그 열매는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절 동네 아이들에게 좋은 군것질거리였다.(제민일보 000801)


아스팔트 도로 아래로는 우수관이 설치되어 못 건너편으로부터 우수가 이 연못으로 유입되게 되어 있으며 농업용수 활용을 위한 취수공 2기가 설치되어 있다.

취수를 위해 차량 진입이 용이하도록 취수공 주변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으며 도로와 취수공이 설치된 못 주변은 왕석으로 둘러져 구획되어 있다.


주요 식생은 연못 정비로 인하여 수생식물의 분포는 빈약한 편으로 못의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분포하고 있다.


우점종은 마름이며, 그 밖에 가래, 가는가래, 붕어마름, 어리연꽃, 개구리밥 등이 수생저(水生底)에 소량씩 산재해 있고, 창포, 물달개비, 바늘골, 골풀, 여뀌, 택사, 큰고랭이 등의 정수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과거 취수가 행해지던 수생저(水生底)의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우점하고 있는데 바늘골, 골풀이 우점하고 올챙이고랭이, 미나리, 고마리 등이 분포하고 있다.


2000년에 이루어진 연못정비 사업으로 서식조건이 나빠져 이곳에서 발견된 동물은 참개구리와 붕어만이 관찰되었다.(제주도 자연환경생태정보시스템)


이 일대는 물이 좋고 전망이 좋아 4·3 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4·3 때에는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주둔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4·3때 소개령과 함께 마을이 사라졌다. 지금은 당시 마을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대나무 숲만 남아 세월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제민일보 000801)
《작성 13091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