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벽지 자제 교육, 명월성 서쪽에 세운 서당..옹포리 월계정사(멸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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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벽지 자제 교육, 명월성 서쪽에 세운 서당..옹포리 월계정사(멸실)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4.03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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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포구에 건립된 김녕정사를 동학(東學)이라 한 것에 대한 동서 상응이기도 하였다.

옹포리 월계정사(멸실)터

 

月溪精舍址
위치 ; 한림읍 옹포리 39-1번지 일대
유형 ; 교육기관
시대 ; 조선

옹포리_월계정사터

 

월계정사는 인종원년(1545) 제주목사 임형수가 벽지 자제의 교육을 위하여 명월성 서쪽에 세운 서당이다.

월계정사에서는 고을 사람 중에서 학문이 뛰어난 자를 가려 사장(師長)으로 삼고, 주변에 거주하는 자제들을 모아 교육을 시켰다.


명월성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학(西學)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김녕포구에 건립된 김녕정사를 동학(東學)이라 한 것에 대한 동서 상응이기도 하였다.

월계정사는 순조31년(1831) 이예연(李禮延) 목사에 의해 개량서당 교육 기관인 ‘우학당’으로 전승되어 제주 서쪽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역할을 담당했었다.

하늘타리정원 블로그에 따르면 특히 이 서당에 다니는 마을 중에 선비가 많았던 명월리에서는 선비가 급제를 하거나 고위관직에 오르게 되면 기념으로 팽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월계정사 자리는 현재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 터에는 고려시대에 월계사라는 절도 있었다고 한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현장의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새겨져 있다.


〈월계정사(月溪精舍)가 있었던 터.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에 이미 향교와 함께 설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녕정사(金寧精舍)를 동재(東齋,東學)라 하고 월계정사를 서재(西齋,西學)라 하였으며, 선생은 고을에서 가장 뛰어난 유학자를 선임하여 지방에 거주하는 향교 유생들이 이곳에서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작성 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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