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까무러치게 고운 산자고 꽃 미소..한겨울 속 기다림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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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까무러치게 고운 산자고 꽃 미소..한겨울 속 기다림이 길었다.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2.04.0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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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은 ‘봄 처녀’, ‘가녀린 미소’.. 제주도·무등산·백양사를 비롯한 중부 이남 지역에 자란다

까무러치게 고운 산자고 꽃 미소

산자고(山慈姑) (백합과) 학명 : Tulipa edulis (Miq.) Baker

 

 

하나둘 들려오는 남녘의 꽃소식에 긴 겨울 동안 꽃 고픈 꽃쟁이는 애가 답니다. 산책길에 초록빛만 비쳐도 행여 새 풀이 돋았나 하고 허리 굽혀 살펴보고 늘어진 수양버들이 바람에 산들거리면 가지에 물이 올랐나 보고 또 보곤 합니다.

긴 나날의 마스크 입막음살이도 지겨운데 최소한의 양심과 수치심마저도 내팽개치고 서로를 폄훼만 하고 막 나가는 정치꾼들의 저질스러운 대통령 선거 소음 탓인가? 입 막고 귀마저 막고 지내려 하니 삭막한 겨울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경우도 없이 되바라지고 몰상식한 일부 정치꾼들의 잡소리도 끝나고 시기상 봄이 완연해져 꽃들이 피어나겠지 하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정치판은 대선 이후 더욱 난잡해지고 꽃소식마저도 올해는 예년보다 늦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무상한 것이라서 쪼매한 봄꽃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만 이제 별꽃, 큰개불알풀, 냉이가 꽃을 피우고 산수유, 개나리도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모처럼 문우(文友) 몇 명이 봄맞이 남도 여행을 가자고 뜻을 모아 약속 날짜를 기다리던 차에 일행 중 오미크론 확진자가 생겨난 통에 그 계획마저 취소되니 마음마저 황량하여 홀로 남녘땅을 찾아 나섰습니다.

달리는 열차 차창 밖을 내다보니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들판에 푸른빛이 아른거리고 스치는 바람의 온기와 결에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탁 트인 들판의 논밭 대부분이 허연 비닐하우스에 덮여 있어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무등산을 찾았습니다. 증심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약사사를 거쳐 ‘새인봉 갈래길’을 넘어 ‘동적골 쉼터’로 산행을 했습니다. 도로변과 산언저리에는 이미 매화, 동백 등 봄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영춘화도 활짝 피었고 개나리도 한창 피어나는 중이고 벚꽃도 피고 있었습니다.

서울보다는 봄꽃이 일주일 정도 빨라 보였습니다. 민가 주변 언저리에는 백매, 청매, 홍매가 흐드러지고 산길을 들어서니 꽃을 피운 올괴불나무, 생강나무가 군데군데 드러나 봄의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번잡한 속세를 떠난 듯한 평온감이 밀려왔습니다.

기대했던 복수초 군락지는 이미 꽃 벌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비꽃류, 꿩의바람꽃, 춘란 등 다양한 봄꽃을 즐기며 걷다가 유달리 시선을 끄는 꽃을 만났습니다. 곱고 큼지막한 산자고(山慈姑) 꽃이 숲 바닥에 바짝 붙어 갈잎 더미를 헤치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늘씬하게 휘어 뻗은 가느다란 두 가닥 잎과 곧게 늘인 꽃줄기 끝에 꽃 초롱 모양의 불그레한 꽃망울이 매혹적입니다.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간절한 소망을 비는 여인의 모습과 같아 보였습니다.

열 듯 말 듯 숲속 바닥에서 햇살을 기다리다가 환한 햇살이 쨍하게 비추면 꽃잎이 활짝 펼쳐집니다. 꽃잎 바깥쪽의 선명한 줄무늬와 꽃잎 안쪽의 어린애 속살 같은 하얀 꽃이 눈부시게 곱습니다.

낭창대는 꽃줄기 끝의 하얀 꽃 이파리가 봄바람에 산들거리면 춤추는 봄 처녀 치맛자락처럼 곱습니다. 늦은 오후, 햇살이 기울면 열린 꽃잎을 닫고 다시 새 아침의 햇살과 눈 맞춤의 때를 기다립니다.

까무러치게 고운 봄 처녀, 산자고의 꽃

 

산자고는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유일한 튤립 종류입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무등산·백양사를 비롯한 중부 이남 지역에 자랍니다. 가느다랗고 긴 두 장의 잎이 뿌리에서 나와 꽃줄기를 올립니다.

꽃은 이른 봄에서 4~5월까지 꽃줄기 끝에 한 송이가 흰색으로 피는데 개화 전에는 꽃잎 뒷부분의 자주색 선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두 손 모은 여인의 손 모양처럼 가지런한 줄무늬 꽃망울이 곱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식물들은 꽃줄기가 곧추서지만, 산자고는 줄기가 가늘고 길며 꽃의 크기가 큰 탓인지 대체로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입니다. 열매는 7~8월경에 삼각형으로 달립니다.

산자고의 다른 이름은 물구, 물굿이라 하며 잎 모양이 무릇과 아주 흡사하고 꽃이 알록달록해서 까치무릇이라고도 부릅니다. 꽃말은 ‘봄 처녀’, ‘가녀린 미소’라고 합니다. 산자고는 포기 전체를 식용도 하고 한방으로도 사용합니다.

종자가 형성될 즈음 비늘줄기를 캐서 햇볕에 말린 것이 생약명 산자고입니다. 목구멍이 붓고 아픈데, 가래를 삭이며. 혈액순환 촉진과 뭉친 것을 풀어 주는 효능이 있어 타박상, 임파선염, 종기 치료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산자고(山慈姑)의 한자명을 뜻으로만 보면 ‘산에 사는 자애로운 시어머니’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어머니가 이 약초를 사용하여 몹쓸 병에 걸린 며느리의 병을 치료했다고 한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꽃이 커서 땅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채 가녀린 꽃망울을 가까스로 추스르는 모습은 할미를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고(慈姑)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수생식물인 소귀나물의 약재 명인데 산자고의 비늘줄기와 약효가 소귀나물과 유사하여 ‘산에서 나는 자고’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타당해 보입니다.

새봄이 되면 황량한 산과 들에 솟아나는 새 생명의 약동과 고운 꽃을 보는 기쁨이 한량없습니다. 뭇 생명을 안아 품고 키우는 자연은 언제나 자애롭고 질서정연합니다.

낮은 곳에 엎드려 새어드는 햇살 기려 꽃망울을 피워 올리고 햇살 따라 여닫는 환한 미소는 몸 낮춰 자연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산자고의 참모습입니다. 추위를 이기고 순리 따라 피어나는 새봄 이른 꽃, 이들의 참모습은 나날이 거칠어져 가는 사람 세상의 참담한 현실 세태와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순리에 역행하는 요즈음 정치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옳고 그름에 수오지심(羞惡之心)마저 멸실된 정치인,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진영을 위한 정치, 국민이 되려 정치 지도자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호하겠다는 꺼꿀 정치, 예의도 범절도 없이 원로와 선배, 동료를 치받는 작금의 세태가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사람이 태어나면 사람 젖을 먹고 자라야 자연 순리인데 이를 벗어나 사람 젖 대신에 소젖을 먹고 자란 탓에 인성(人性)이 수성(獸性)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젖을 빨며 어미 소 젖통을 마구 치받는 송아지가 연상됩니다.

산자고는 숲속 나무 밑에 몸 낮춰 다른 풀꽃에 그늘 드리우지 않고 이른 봄 빈 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햇볕만으로 꽃을 피웁니다. 고운 꽃과 함께 벌 나비에게는 꿀을, 사람에게는 유용한 먹거리와 생약을 제공하는 산자고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른 봄에 숲 그늘 바닥에서 만난 봄 처녀 산자고꽃이 까무러치게 고와만 보이는 까닭입니다.



봄 처녀 산자고(山慈姑)


행여 놓칠세라
긴긴 겨울 갈잎에 숨어
이제나저제나 그리던 봄 햇살
한겨울 속 기다림이 길었다.

봄 처녀 눈망울이 꽃이 되었나.
빈 가지 사이로 햇살 찾아드니
열릴 듯 말 듯 불그레한 꽃망울
합장인 양 간절한 기도로 꽃잎을 연다.
수줍음에 떨리는 하얀 꽃이 눈부시다.

고이 접어 휘어 뻗은 두 가닥 이파리,
곧게 늘인 꽃대 끝에 맑고 환한 미소,
살포시 던지는 가녀린 꽃 웃음에
벌 나비도 산객도 함께 까무러친다.


(2022. 3. 23 무등산 자락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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