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오랜 전통의 무덤 양식 가운데 하나..도련2동 옹관묘(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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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오랜 전통의 무덤 양식 가운데 하나..도련2동 옹관묘(재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4.07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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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삼화지구에서 나온 옹관묘는 탐라국형성기 추정했다

도련2동 옹관묘(재현)

 

위치 ; 제주시 도련2동 528-2번지. 삼화지구 사랑으로 아파트 남동쪽 유적공원 내
시대 ; 탐라국 이전 청동기시대(BC300년)
유형 ; 선사시대 무덤
발굴 조사 시기 ; 2006년 8월, 2007년9월~2008년5월 전후

도련2동_청동기시대옹관묘(제주소리)

 

도련2동_독무덤

 


국어사전에 따르면 옹관묘는 시체를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이다. 보통 크고 작은 두 개 이상의 항아리를 맞붙여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쓰였다.


옹관묘(甕棺墓)는 주검을 독[甕]이나 항아리[短頸壺]에 넣어서 땅을 파고 구덩이[土壙]를 만들거나 독을 넣을 만큼 적당히 파서 묻는 무덤이다.

독장이라고도 한다.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른 철기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의 남부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의 무덤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삼국시대의 것은 봉토가 있지만 그 앞 시기의 것은 땅 위에 무덤의 자취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조사된 경우가 적다.

널[棺]로 쓰여지는 독이나 항아리가 1개이면서 넓적한 돌 같은 것으로 뚜껑을 덮은 것은 외독[單甕棺], 항아리나 독 2개가 서로 아가리를 맞대고 뉘인 것은 이음독[合口甕棺]이라 하며, 3개를 이어서 만든 것도 가끔씩 발견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이음독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독무덤이 있는 곳의 지세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청동기시대의 것은 강이나 작은 냇가를 낀 들판과 붙어 있는 구릉지대에서 고인돌·움무덤[土壙墓]·돌상자무덤[石箱墳] 등과 함께 발견되고 있으며, 이른 철기시대의 것은 구릉지대를 비롯하여 산기슭에서, 김해 회현리와 부산 낙민동유적과 같은 것은 조개더미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삼국시대의 것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청동기시대나 이른 철기시대의 유적은 강서·은율·신천·공주·광산·김해·부산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그다음 시기에는 이러한 무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묻는 방법을 보면 대부분 수평으로 널이 놓여 있는 모습이지만 공주 남산리유적에서는 수직으로 놓인 것도 있어 다른 유적의 것들과 비교되며, 널로 쓰인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나 민무늬토기 계통의 적갈색 연질토기(軟質土器), 회색 삿무늬토기[繩蓆文土器]가 주로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는데, 강서 태성리유적에서는 화분토기(花盆土器)를 이용한 것도 있다.

묻힌 사람[被葬者]은 널의 크기로 보아 이른 시기에는 어린아이나 두벌묻기[二次葬]의 방법으로 어른을 세골장하였던 것 같으며, 삼국시대에는 나주 반남지역의 독무덤들처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을 묻었던 것도 있지만 돌덧널[石槨]로 된 큰무덤 옆에 딸린 것이 발견되고 있어 독무덤의 복합성과 전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딸린 독무덤은 어린아이가 묻힌 것으로 여겨져 큰무덤과 서로 관련이 있는 가족무덤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다음백과사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본토, 남만주,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지중해의 팔레스타인, 터키, 중동의 요르단, 암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허베이성[河北省] 역현(易縣)과 랴오닝성[遼寧省] 랴오양[遼陽]지방, 그리고 쓰촨성[四川省] 시안[西安] 반포[半坡]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반포의 것은 조그마한 항아리에 뚜껑을 덮어 수직으로 매장한 어린이용 옹관이다. 이처럼 독무덤의 기원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주(周),한(漢)나라의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옹관 사용이 점점 쇠퇴 ·소멸하였고, 6세기의 《송서(宋書)》에는 “옹관은 동호(東胡)의 풍습”이라 쓰여 있다.


한국에서는 독무덤이 청동기시대 이래 사용되었는데,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으로는 평안남도 강서 태성리(台城里), 황해도 안악 복사리(伏獅里), 은율 운성리(雲城里), 신천 명사리(明沙里), 공주 남산리, 광주(光州) 신창동(新昌洞), 김해 회현리 ·지내동, 부산광역시 낙민동 동래 패총 등의 유적이 있다.


이러한 독무덤은 역사시대에 이르면 하나의 고분형식으로서 조성되었다. 역사시대의 독무덤은 근래에 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네이버백과사전)

2006년8월 (재)호남문화재연구원은 제주시 삼화지구 동측도로 확장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철기시대로 추정되는 옹관묘 1기와 토광 1기, 주공열 등과 조선시대 유구 1기와 지상건물지 1동 등이 발견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나온 옹관묘는 탐라국형성기로 추정했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은 사적 416호로 지정된 제주시 삼양동유적으로부터 500여m 떨어진 지점으로 그 주거지역의 분묘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이 옹관묘는 도내에서 삼양동식토기로 일컬어지는 송국리형 기형의 대형호를 합구한 형태로 곽지1식 토기로 합구한 옹관묘가 확인된 용담동유적에 비해 앞선 옹관묘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호남문화재연구원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송국리 유형의 보편적인 묘제로 인식되는 옹관묘가 지금까지 제주도 지역에서 조사된 예는 많지 않다"며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해발 30여m 내외의 지역이 200여동의 주거지가 확인된 삼양동유적 보다 산간쪽으로 올라오고 있고 주변에 지석묘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비록 조사면적은 협소하나 삼양동유적을 형성했던 사람들의 분묘공간의 일부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이슈제주 060809)


2007년10월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 22기와 수혈유구 62기, 옹관묘 9기, 토광묘 5기, 고려~조선시대 수혈과 건물지 등 200여기를 공개했다.(미디어제주 070820)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국립제주박물관이 밑은 발굴조사에서는 전체 삼화지구 택지개발사업부지 중 가-I구역에 해당하는 3만7452㎡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으로서 조사결과 이 일대에서 장방형과 방형 주거지 47기와 원형(송국리형)주거지 1기, 옹관묘 5기, 토광묘 4기, 소토유구 30기 등 총540여기의 유구가 발굴됐다.


발굴 유적 중 116호 수혈(竪穴.구덩이)로 명명된 옹관묘는 보존상태가 지금까지 제주지역에서 발견된 같은 유적 중에서 가장 양호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 옹관묘는 지표면을 30㎝ 이상 되는 깊이까지 평면 장방형으로 파내는 방식으로 만든 묘광(墓壙) 중앙에 항아리형 토기 두 점을 주둥이끼리 맞대는 방식으로 조성됐으며, 그 주변에는 제주지역에서 흔한 현무암을 가지런히 채워 넣었다.

이처럼 옹(甕.독) 2점을 잇대어 관으로 사용하는 매장 방식을 고고학계에서는 합구식(合口式) 옹관묘라 부른다. 이 완형의 합구식 옹관 1기는 현 상태에서 그대로 떠 국립제주박물관으로 옮긴 후 내부 부장품 유무 등을 추가 확인하기로 했다.(연합뉴스 080209, 제주의 소리 080525)

삼화지구 사랑으로 아파트 남동쪽 유적공원 내에 유리 지붕 속에 재현 보존되고 있다.
《작성 1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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