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물과 어우러진 풍치.. 건입동 영은정(멸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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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물과 어우러진 풍치.. 건입동 영은정(멸실)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4.26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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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두고 썩혀 버리기보다는 정자 하나를 짓는 것이 더 낫겠다'

건입동 영은정(멸실)터

 

위치 ; 건입동 1192번지. 금산물생태공원 안 남쪽
유형 ; 건물(정자) 터
시대 ; 조선(1904)

영은정터

 

광무8년(1904년) 목사 홍종우가 영은정(泳恩亭)이라는 정자를 지었으나 오래전에 헐리고 금산물생태공원에 영은정 터를 알리는 표석만 세워져 있다.

1905년 사법(司法) 홍진국(洪鎭菊)이 쓴 「영은정기(泳恩亭記)」가 남아 있다.

영은정기에는 〈 … 甲辰(1904) 여름에 내가 羽亭(홍종우)과 함께 지팡이에 짚신을 신고 산(공덕동산 추정)에 올라가 물(광대물)이 있는 곳에 가 보니 돌부리가 뾰족뾰족하고 나무 뿌리가 얼키고설켜 한 자리도 평평한 곳이 없었다.

따라온 사람들에게 상을 받치고 장막을 치게 하고 나서 물을 길어다 차를 끓이니 차가 향기롭고 맑았으며 밥을 지어 먹으니 윤택하고 달았다.

羽亭이 나에게 이르기를 “이 물이 알려진 지 이미 오래되어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데도 아직 쉴 만한 장소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관청 건물을 헐어낸 것이 있는데 기와와 재목을 한 푼의 값어치도 없이 밖에 쌓아 놓아두고 썩혀 버리기보다는 정자 하나를 짓는 것이 더 낫겠다.” … 〉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과 어우러진 풍치를 즐기는 데 적당한 건물(정자)을 만들려는 목적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영은정 터 표석은 2013년 3월에 보니 금산수원지생태공원의 남쪽 계단 중간에 설치했었는데 7월에는 훨씬 북쪽으로 옮겨 설치하였다.

오른쪽 사진의 정자 왼쪽에 표석이 있다. 금산물이나 광대물의 표고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을 전제로 하면 낮고 빨래하는 곳에 바짝 붙여서 정자를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고, 영은정기(泳恩亭記)에도 산에 올라간 곳이라고 하였으므로 원래 표석을 세웠던 자리에서도 조금 더 올라간 곳이 맞을 듯하다.
《작성 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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