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순례길 탐방)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상태바
(불교순례길 탐방)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 고현준
  • 승인 2022.05.10 0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로 가는 길 관음정사-관음사, 숨겨진 숲이 아름다운 보리의 길

 

 

 

“17년 동안 승려로 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수행하는 동안 저는 돈 한 푼 쓰지 않았고 성교나 자위도 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이나 소설책을 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가족도 멀리 했으며 휴일도 없었고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도 않았지요. 새벽 3시에 일어났고 하루 한 끼 주어진 음식을 주어진 만큼 먹으며 지냈습니다.

17년 동안.

자발적으로.

그렇게 해서 제가 무엇을 얻었을까요?”

 

숲속의 현자라 일컬어지는 스웨덴 출신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그 스님이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1961년 생인 그는 대학 졸업후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 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했다.

그는 올 1월 루게릭병으로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가 남긴 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필자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진짜로 잘사는 것이 무엇인 지에 대해 진지하게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의 글에서 단 하나의 거짓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걷는 불교순례길은 그래서 더욱 인생에 대한 의미를 더하는 느낌까지 받는다.

이 길을 걸으면서..그런 모두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사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우리가 불교순례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알고 여행작가인 최상희 선생('시코쿠를 걷는 여자' 저자)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다.)

 

 

 

불교순례길이라는 이름을 따라 걷는 순례길..

비록 스님들의 수행처럼 걷는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원하는 순례길의 바램이 있었는데 비로소 이번에 그런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지난 7일 우리가 걸어야 하는 절로 가는 길은 관음정사에서 관음사까지 걷는 코스라 우리는 올라가는 길이 아닌 내려오는 길을 걷기로 했다.

이날 시작점인 관음사로 가는 길은 이미 수많은 연등이 길게 늘어서 축제를 맞이하는 듯 했다.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가득 했고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도 절을 찾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이미 절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8일 열리는 부처님 오신 날 준비는 그렇게 요란한 움직임 속에서 진행되는 중이었다.

대웅전에 가까이 올라갔을 때 고광언 선생이 한 스님에게 인사를 올리더니 나를 불렀다.

관음사 주지 허운 스님이었다.

스님은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청하니 “혼자는 싫고 같이는 좋다”고 하셔서 일단 고광언 선생과 찍고 나도 함께 추억의 사진을 한 장 남기게 됐다.

바쁜 와중이라 별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전했다.

관음사 주지 허운 스님과 함께 한 고광언 선생
필자와 함께..

 

 

법당에서는 누군가의 49제를 지낸다며 염불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렇게 걸어 나오는데 우리와 제주올레를 함께 걸었던 안건세 선생이 나타났다.

불교합창단원인 안 선생은 이날 “행사가 있어서 왔다”며 하얀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오랜 만에 만난 고광언 선생과도 반갑게 조우했다.

그렇게 절을 내려오며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는 분주한 광경을 운 좋게도 만났다는 이 날을 감사해 했다.

관음사는 원래 자리가 5.16도로에서 제2횡단도로로 넘어가는 길 높은 지점에 서 있어 한라산 초입에 위치해 있는 절이다.

누구든 관음사를 와 보고 반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절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내려오는 길은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라 걷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인도라고 있기는 하지만 풀이 조금만 자라도 그 길을 걷기보다 차도를 통해 걷게 된다.

조심조심 걸어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신비의 도로를 지나 걸어 내려가는데 아라동 역사문화 탐방로와 만났다.

이 탐방로는 편백나무 숲으로 만들어진 휴양숲으로 걷는 내내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이 길은 소산오름 정상과도 이어져 이 오름 전체가 편백나무, 해송, 삼나무, 대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이루고 있다는 곳이었다.

이 오름 동쪽에 한라산신단비와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곰솔 여덟 그루가 식생하고 있어 그 자체로 신비감을 더했다.

소산봉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이 오름에 대한 전설도 특이하다.

 

고려 예종때 송나라 호종단이 와서 제주에 명산의 모든 혈(풍수지리에서 용맥이 모인 자리)을 질러버리고 떠나던 날 밤 갑자기 솟아나 한라산의 맥이 다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는 설명이 표지판에 적혀 있었다.

 

이 오름에는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듯 맨발로 숲을 걷는 사람도 여럿 만났고 어떤 젊은이는 이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까지 하는 모습도 보였다.

평상이 숲속 곳곳에 놓여 있어 이곳이 주변 주민들의 훌륭한 휴식처이자 힐링 장소임을 느끼게 했다.

정말 아름답고 훈훈한 그런 느낌이 드는 숲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이 길에 나타난 평안한 숲길..그리고 아름드리 곰솔까지,..

신비감이 물씬 드는 그런 길이기도 했다.

 

 

 

제주의 진짜 모습은 이런 것이리라.

제주는 아파트나 콘크리트로 도배한 그런 곳이 아니다. 제주 어디를 가건 오름을 오르면 힐링이 되는..그래서 누구나 행복하고 건강한 그런 힐링의 섬이 되어야 하는데 ,,라는 아쉬움이 드는 참에 그런 길이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절로 가는 길은 원래 이래야 한다”며 처음으로, 이 불교순례길이 마음에 들었다.

제주올레와 전혀 상관 없는 길..

불교를 전하는 마음으로 수행처로 향하는 길처럼..

절을 찾는 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 길에서 처음 느껴봤다.

그 길을 나와 5.16도로에 들어섰는데,바로 소림정사가 그곳에 있었다.

아주 소박한 절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 절을 걷는 중이라며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한 보살님이 차라도 한잔 하시라며 오가피차를 내 오셨다.

감사히 얻어먹고, 잠시 쉬다 구암굴사로 향했다.

구암굴사는 입구에 웃는부처님이 우리를 환영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은 분주한데 아는 척을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안을 보니 석굴이 있고 그 안에 불당이 차려져 있었다.

구암굴사는 석굴이었다.

이곳을 나와 다시 도륜정사를 지나쳤다.

고광언 선생은 “이 절은 개인 절”이라고 귀띔해줬다.

다시 예쁜 숲이 나타났다.

순례길에서 숲을 만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수행처로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에 나타난 큰 길은 제주대에서 신제주로 나가는 도로..

이 길을 걷는데 항아리가 가득 쌓여있는 중고물건을 파는 곳에 잠시 들렀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보리가 가득 핀 곳이 나타났다.

제주시 도심에서 다 자란 보리를 볼 수 있다니..

이제 노릿노릿 변해가는 보리밭을 보는 것을 끝으로, 이날의 불교순례길 걷기를 마쳤다.

수행길에 무슨 바쁨이 있을 것인가..

남은 길은 다음 주에 또 걸으면 되지..

 

 

 

 

과연, 그렇게 생을 마친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그 스님이 이 세상에 남긴 가장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기 바랍니다.

당신의 존재가 햇볕처럼 따뜻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는 그의 책 마지막 장에서 정말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살다 갔다'는 제목의 에필로그에 위의 글을 남겼다.

불교순례길은 그런 좋은 업을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

자꾸 걸으면서,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그 스님을 생각나게 만드니..

아직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