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9소장 가장 서쪽 끝에 해당..하례2리 9소장 상잣(잣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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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9소장 가장 서쪽 끝에 해당..하례2리 9소장 상잣(잣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5.14 0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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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1소장부터 6소장, 대정현 7소장과 8소장, 정의현 지역에 9소장과 10소장이 있었다.

하례2리 9소장 상잣(잣담)
 

위치 ; 남원읍 하례2리 한라산 둘레길 3코스 동쪽 시작점인 수악 입구에서 1km 정도 들어간 곳
시대 ; 조선
유형 ; 목축

 

하례2리_한라산둘레길상잣

 

조선 정부는 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세종11년(1429) 8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제주 지역에 중산간 초원 지대에 잣담을 새로 쌓거나 정비하고 그곳 120여 리에 10개의 목장을 조성하였다.


제주목 지역에는 1소장부터 6소장, 대정현 지역에는 7소장과 8소장, 그리고 정의현 지역에는 9소장과 10소장이 있었다.


1소장은 구좌읍 중산간 지역, 2소장은 조천읍 중산간 지역, 3소장은 제주시 회천동에서 오등동에 걸친 중산간 지역, 4소장은 제주시 연동에서 해안동에 걸친 중산간 지역, 5소장은 애월읍 광령리, 고성리, 유수암리의 중산간 지역, 6소장은 애월읍 어음리, 봉성리, 한림읍 금악리 중산간 지역에 설치되었다.


대정현의 7소장과 8소장은 각각 안덕면 중산간 지역, 8소장은 구(舊) 중문면(中文面) 중산간 지역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정의현의 9소장은 구서귀읍 중산간과 남원읍 중산간 지역, 10소장은 표선면 성읍리 지역에 설치되었다.


이들 소장에는 국마와 주민 소유의 사마가 공동으로 방목되었으며, 각 소장의 주위는 45~60리였다. 종6품의 감목관과 마감, 군두, 군부, 목자 등으로 구성된 마정 조직을 통해 운영되었다.


10소장은 1894년에 감목관제와 공마 제도가 폐지되어 공마 공급이 종료되고 1897년부터 공마제 대신 금납제를 시행하게 되어 소멸되었다. 이후 중산간 지역 목장 터는 주민들의 경작지로 개간되고 주민들이 거주하는 취락지로 변하였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9소장 하잣은 서쪽으로는 고근산 기슭에서부터 영천동에 있는 칡오름을 거쳐 동쪽으로는 남원읍 한남리에 있는 서중천까지 이른다.

9소장 상잣은 서쪽 시오름에서부터 미악산(ᄊᆞᆯ오름), 수악(물오름)을 지나 한남리의 머체오름과 거린오름에 이르는 해발 200~600m 지역이 대략적인 범위이며 동서 길이 35리, 남북 길이 5리이다. 면적으로는 산장을 제외하면 10개 소장 중에서 가장 넓다. 한라산 남사면에 위치하여 비교적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한라산 둘레길 3코스 동쪽 시작점인 수악 입구에서 1km 정도 들어가면 9소장 상잣을 만날 수 있다. 9소장의 가장 서쪽 끝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대체적인 규모는 높이 1.5m, 폭 0.7~1m 정도로 이어진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을 제외하면 크게 무너진 곳 없이 보존되고 있다.
《작성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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