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사람이 살게 된 내력 적어 놓은 비석.. 가파리(가파도) 개경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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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사람이 살게 된 내력 적어 놓은 비석.. 가파리(가파도) 개경기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5.21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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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 120주년을 기념하여 1962년 리민들이 세운 것이다.

가파리(가파도) 개경기념비

 

위치 ; 가파리 포구 앞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비석(碣)

가파도_개경기념비

 

가파도_개경120주년기념비

 


가파도에 사람이 살게 된 내력을 적어 놓은 비석으로 개경 120주년을 기념하여 1962년 리민들이 세운 것이다.


비석 전면 가운데에는 加波島開耕一百二十周年紀念碑라고 쓰여 있고, 같은 면 오른쪽에서부터 본문이 쓰여 있다. 본문은 〈우리 里民의 祖上들은 憲宗壬寅年以來上下摹瑟里에서 건너와서 牧野地인 本島를 開墾하야 沃土를 만들고 海洋을 開發하야 有數한 漁場地를 만드러 今日의 繁榮과 幸福과 平和의 基礎를 미련해 주셨다.


우리들 後孫里民一同은 開耕二回甲의 ○○○를 맞어 祖上의 勞苦와 그 功績에 感謝하면서 이 紀念碑를 建立하는 바이다. 壬寅年 十二月 日 加波里民 一同〉라고 되어 있다.


왼쪽 면부터 뒷면→오른쪽면으로 돌아가면서 연혁을 기술하였다. 그 내용은 〈沿革 本島古稱盖島盖波島加坡島加乙波知島더위섬 本是國畜馬牧地李朝成宗時御乘良驥産出英祖二十六年犧牲進貢用黑牛五十頭放牧以來憲宗六年更子英國船來泊畜牛死殺劫去後廢牛場 同八年壬寅開耕許可李光廉主管上下摹瑟里民往來開墾耕耘入耕稅○(彳門?)司僕寺自哲宗末境入耕民官住 西紀一八八六年乙酉日本人潛水器漁業者吉村與三郞一行○着入漁是我國潛水器漁業創始地 且翌丙戌年境吉村甘藷栽培法傳授于有志金龍興與亦近世濟州甘藷栽培之嚆矢也一九一四年下摹里所管離脫加波里呼稱 敎育高宗初漢文訓學以來人才輩出辛酉年金成淑創設里立辛酉義塾一九四七年加波國民學校創立引繼 一九二三年항개西防波堤築城 一九三六年沿海漁業鯔漁業法導入 ○播屬島馬羅島火田開耕一八八三年癸未分里戶數乙酉年四十戶現在戶數二百十二戶人口千三十六人 以上考證金泰能〉
(驥 천리마 기, 鯔(숭어 치), 위의 西紀一八八六年乙酉는 西紀一八八五年乙酉 또는 西紀一八八六年丙戌의 잘못임)


옆에는 1985년 9월 19일 새 비석이 세워졌는데 내용은 앞의 비석 내용을 한글로 해석한 것이다.

가파도 연혁 해설비

앞의 개경기념비를 우리 말로 풀어 옆에 나란히 세웠다.


《이 섬 옛 이름은 개도․개파도․가파도․가을파지도․더위섬이라 불렀고, 처음에는 나라에서 소와 말을 기르는 목장지로서 이조 성종 때 1469년 임금이 타시는 양마를 산출한 곳이다. 영조 26년(1750) 나라에 바치는 희성진공용 소 50마리를 방목한 이래 헌종 6년(1840) 영국선이 내박하여 축우마를 총으로 쏘아 잡아간 후 폐우장이 되었다.

동 8년 임인년(1842) 李光廉 주관으로 개경 허가를 받아 상하모슬리민들이 왕래하면서 개간 경작하기 시작해서부터 나라에 납세를 하였다. 철종말경 1863년 이 섬에 소와 쟁기로 밭 가는 법이 들어오면서 주민이 살기 시작했다. 1885년 을유 일본 사람 잠수기선업자 吉村興三郞 일행이 경작하면서 입어 후 우리 나라 잠수기어업이 발달한 시초지다.

뒷해 병술년(1886) 吉村興三郞이 일본에서 고구마 종자를 도입하여 재배법을 전수받아 본리 유지 金龍興 역시 근세 제주도 고구마 재배를 장려했다. 1914년 하모리 소관에서 분리되어 가파리라 부르고 있다. 교육은 고종초 1863년부터 한문훈학하기 시작해서 학자와 지식인들이 배출되었다.

신유년(1921) 金性淑 의원 주관으로 신유의숙학교 창설, 1947년 가파국민학교 창립 인계하고, 1923년 항개 서방파제를 리민의 협력으로 축성, 1936년 연해어업 멸치․자리 어로법 도입, 우리 조상님들이 연구 개발하여 오늘과 같이 제주도 멸치․자리어로법이 발달한 시초지이다. 증거를 대어 설명한 사람 사학자 김태능》1985년 9월 19일 가파리민 일동 건립

조선왕조실록에는 가파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성종 22년(1491년) 5월 16일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친히 열병(閱兵)하니, 사복시 제조(司僕寺提調) 윤호(尹壕)와 이철견(李鐵堅)이 아뢰기를,


“요사이 남흔(南忻)의 아뢴 말을 듣건대, 사복시(司僕寺)에서 어느 사람의 늙고 병든 말을 받아들이고는 값을 줄 때에 품질이 좋은 아마(兒馬)를 가지고 병든 말이라고 일컬으면서 이를 보상(報償)했다 하니, 이는 반드시 본 것이 있어서 아뢰었을 것이니, 피혐(避嫌)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일에 내가 말하기를, 마정(馬政) 이 허술하여 전마(戰馬)를 겨우 40필만 얻게 되니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라고 했더니, 남흔(南忻)이 이 말로 인하여 이런 아룀이 있었을 것이다.”
하고는, 이에 남흔을 불러서 물으니, 남흔이 아뢰기를,


“신(臣)이 오랫동안 내승(內乘)이 되어 어승마(御乘馬)와 내구마(內廐馬)를 보았는데, 모두 많은 값으로 좋은 말을 가려서 받아들였는데도 마침내 간 곳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또 전일 제주(濟州) 가파도(加坡島)의 아마(兒馬)-길들지 않은 작은 말- 3필을 좋은 준마(駿馬)로 여겨 별도로 길렀으나, 한 마리는 병이 들어서 죽고 두 마리는 간 곳을 알 수가 없으니, 나머지도 모두가 이것과 같았습니다. 근일에 신(臣)이 길에서 사복시(司僕寺)의 종 낙산(樂山)이란 자가 아마(兒馬)를 받아서 가는 것을 만나서 이를 물으니, 병든 말이라고 대답하는데도 신(臣)의 소견(所見)으로는 매우 좋은 준마(駿馬)였습니다. 만약 그 말의 간 곳을 추문(推問)한다면 간사와 거짓이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김제신(金悌臣)에게 명하여 여러 정승(政丞)들에게 전교(傳敎)하기를,
“남흔(南忻)의 아뢴 바를 경(卿) 등은 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고는, 또 윤호(尹壕)에게 전교(傳敎)하기를,
“근일에 말을 나누어 준 곳을 빠짐 없이 글로 써서 아뢰라.”하였다.

헌종 6년(1840년) 12월 30일 ;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지금 전라 감사 이목연(李穆淵)의 장계(狀啓)를 보았더니, 제주 목사 구재룡(具載龍)의 첩정(牒呈)에 이르기를, ‘대정현(大靜縣) 모슬포(墓瑟浦) 가파도(加波島)에 영길리국(英吉利國)의 배 2척이 와서 정박하여 감히 포를 쏘고 소를 겁탈하는 변까지 있다.’ 하고, 이어서 현감(縣監)을 파출(罷黜)하고 나처(拿處)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오랑캐의 배가 바다에 출몰하는 것은 본디 교활한 버릇이니, 오랫동안 해이해진 해졸(海卒) 때문에 어모(禦侮)를 튼튼히 하라고 책망하기 어렵다 하나, 온 섬의 포항(浦港)이 다 사변에 대비하는 중지(重地)에 관계되므로, 경비하는 방도를 본디 충분히 규찰(糾察)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저들은 40여 인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하여 먼저 스스로 두려워하여 달아나기에 겨를이 없기까지 하겠습니까? 변정(邊情)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그대로 둘 수 없으니, 해당 목사 구재룡을 파출하고 나처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 24년(1887년) 8월 17일 ;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헌직(李憲稙)과 제주 목사(濟州牧使) 심원택(沈遠澤)이 올린 장계(狀啓)를 보니, ‘가파도(加波島)에서 전복을 따던 일본 배 6척이 모슬포(摹瑟浦)에 와서 정박하고 일본 선원들이 제멋대로 상륙하여 촌락에 뛰어 들어와서는 닭, 돼지를 약탈했고 칼을 빼들고 집주인 이만송(李晩松)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게 했으며, 본 모슬포 백성들인 김성만(金成萬), 정종무(鄭宗武), 이흥복(李興福) 등도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 배에 탔던 40여 명이 달려나와서 본 모슬포의 기찰장(譏察將) 문재욱(文在旭)을 위협하여 강제로 화해의 증표를 받아내고는 즉시 그 섬으로 돌아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닭과 돼지를 노략질한 것도 지극히 도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칼을 뽑아들고 사람을 찔렀으니 이것이 얼마나 고약한 버릇입니까. 목숨을 배상하는 문제는 원래 공법(公法)에 있으니 교섭아문(交涉衙門)으로 하여금 일본 공사와 협상하여 빨리 합당하게 마무리 짓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작성 1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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