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순례길 탐방) “그대는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갈 것인가!”
상태바
(불교순례길 탐방) “그대는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갈 것인가!”
  • 고현준
  • 승인 2022.06.05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로 가는 길, 남국선원-선덕사..구도의 길 안내하는 부처의 길

 

 

 

“그대는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갈 것인가!”

인도,네팔 여행산문집인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에 나오는 말이다.

여행기라고는 한다지만 실은 구도의 길인 이 산문집에 나오는 이 글귀를 읽고, 그만 읽던 책을 놓아 버렸다.

그가 아쉬람에 수행공부를 하러 갔을 때 스승이 전해 준 말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은 후 돌아오는 길에 릭샤(인력거) 운전사와 차비 문제로 실랑이를 하며 부처가 아닌 것처럼 행동한 그의 부족함을 반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우리는 모두 이미 부처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우리 모두 부처가 아닌 것처럼 산다.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무엇이 옳은 일인지 다 알지만, 우리는 짐짓 부처가 아닌 것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깨달은 중생이 아니라, 아직 깨닫지 못한 부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불교순례길에 나서면서 필자와 고광언 선생은 부처가 아닌 척 하며 사는 서로를 이야기 하며 많이 웃었다.

실제로 부처가 아닌 척 하며 살고 있다는 그 의미속에 담긴 뜻은 실생활에서 많이 겪게 되는 일에 대한 해결의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필자 또한 “부처가 아닌 척 하며 살지 말자”는 다짐을 한 후 차를 타고 가다가 2번이나 똑같은 불편한 상황에 처했는데..

처음에는 조금 화가 났지만, 두 번째는 부처가 아닌 척 하지 말고 살자고 다짐하니 웃음이 나왔다.

부처가 아닌 척 하며 산다는 건, 불편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부처로 살면 마음이 편해 진다는 것을 안 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매주 토요일 부처가 아닌 척 하며 불교순례길을 걸었던 우리는 이날 영실 존자암에서 남국선원까지 수로를 따라 가는 길이 있다고 들었지만 여름철이라 숲이 우거져 걷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먼저 남국선원으로 갔다가 선덕사를 향해 걷기로 했다.

 

 

 

남국선원은 숲속 깊은 곳에 있어 많은 스님들이 조용히 수행만 한다는 곳이라서 그런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대웅전에서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렸고..몇몇 불자들이 앉아 기도를 드리는 중이었다.

고광언 선생은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선덕사로 가는 지름길을 물으려고 했더니 종무소 직원이 얼른 창문을 열고는, 조용히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선덕사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오면서 보니 선방에는 많은 스님들이 벽을 향해 앉아 무념수행중인 모습이 눈에 보였다.

산사의 묵언수행..

우리는 조용히 물러나와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방향을 반대로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는 동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서쪽을 향해 걸었던 것 같다.

그래도 숨어있는 길 하나를 찾기는 했다.

아마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의 산책길처럼 보이는 길이었다.

 

 

 

우리는 매우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좋아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 길은 우리가 올라왔던 길과 연결된 산책길에 불과했던 것이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길이 아닌 길을 걷는다는 건 힘든 여정이다.

이날도 우리는 다른 길을 찾는다며 공동묘지터를 몇 개나 지나면서 걸었지만 결국은 우리가 편히 걸으면 되는 길과 다시 만났다.

지름길은 찾지도 못하고 험한 길만 걷는 결과를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큰 길을 따라 내려오니 서귀포쪽 산록도로가 나타났다.

이 길은 그렇게 차는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을 수 있는 그런 길도 아니었다.

내리쬐는 땡볕에, 차가 씽씽 달리는 아스팔트길을 걷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선덕사까지 1.5km 정도 남은 구간에 이른 상효원 앞에 택시가 나타나자 고광언 선생이 “택시를 잡기도 어려운데 일단 돌아가서 차를 타고 선덕사로 가 보자”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택시를 타고 우리가 처음 걷기를 시작한 남국선원으로 돌아왔다.

마침 식사시간이었는지..

스님 두 분이 바리때를 손에 들고 얘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보였다.

스님 두 분은 아까 우리가 큰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걸었던 그 숲속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는데, 그 모습의 아름답기가 그지 없을 정도였다.

말을 붙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차를 타고 선덕사로 향했다.

선덕사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서니 이렇게 큰 절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광대한 절이었다.

입구에는 선덕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절 내를 설명하는 21개의 영역을 그린 지도도 안내돼 있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선덕사

-서귀포시 향토유형유산 제3호

 

선덕사는 1870년경 쌍월선사와 응월화상이 수행하던 도량으로 알려져 있으며,고려시대부터 쌍계암 또는 두타사라 불리던 암자가 193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조계종 종정 3.4.6대를 역임한 고암 대종사가 학전선원을 개원하고, 학균종사와 조보현월 보살의 월력으로 중창되었다.

이 사찰은 전체 건물이 목조로 이루어져 전통사찰의 보편적인 가람 양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불교문화유산인 묘법연화경 목판본류 3책을 보존하고 있다.

고암 대종사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 경전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묘법연화경 3종이 제주도 지정유형문화재(제19-1,2,3호)로 2003년에 지정되었다.

또한 2005년에는 ‘선덕사’가 서귀포시향토유형유산 제3호로, ‘선덕사 대적광전’이 제주도 지정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덕사에는 또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법성도도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법성도에 대한 설명을 옮긴다.

 

 

 

법성도

 

‘화엄일승법계도’ ‘법성게’ ‘해인삼매도’로 불리기도 한다.

신라의 의상스님이 불교 최고의 경전인 ‘화엄경’의 핵심을 7언 30구 210자로 요약하여 기하학적 도형으로 만든 게송이다.

스님의 중국 유학시절(661년-671년)인 668년 7월15일에 완성되었으며, 한국불교의 근본으로 이어져 온 화엄사상 전체를 통해 대표적 작품으로 전해진다.

부처님의 삼매 경계가 깊은 바다에서 도장처럼 나타나는 의미를 새겨 해동 탐라 선덕도량에 장엄하였다.

불기 2562년 4월 학균

 

웅장한 가람을 관 하고 나오는 길..

푸르름이 가득한 이곳 계곡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이제 부처가 아닌 척 하며 살지 않기로 해서 그런 것일까..

하늘은 또 그날, 하필 너무 아름다웠다.

 

 

 

 

부처 아닌 체하기

 

인도의 뿌나......

내 영혼의 스승이 머물던 곳. 이른 새벽이면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 오르던 곳.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 그리고 명상이 우리 모두의 화두였던 곳.

그날 아침, 스승의 말 한마디가 화살처럼 와서 박혔다.

“그대는 왜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것처럼 가장하며 살 것인가?”

졸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스승을 바라 보았다. 스승은 불같은 목소리로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그대는 본래 부처다. 과거에도 부처였으며, 지금도 부처고, 앞으로도 부처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대 자신이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구도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도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길을 걸어 스승과의 아침 다르샨(스승과 제자의 만남)에 참석했다.

내가 아쉬람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전에도 두 차례 이곳에 머물렀지만, 깨달음의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뭔가 진전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어느새 보면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이 아침, 스승의 그 한마디가 몇 생에 걸친 내 잠을 두들겨 깨운 것이다.

“그대 더 이상 부처 아닌 체하며 살지 말라!”

 

(중략)..

“그대 더 이상 부처 아닌 체 행동하지 말라!”

아, 하마터면 그 사실을 잊을 뻔 했다. 오랜 습관대로 또다시 부처가 아닌 것처럼 행동할 뻔 한 것이다!

..그런데 릭샤를 타고 임시숙소로 삼고 있는 근처 아파트에 도착하는 순간, 또다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일어났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도 릭샤 운전수가 열 배가 넘은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한 것이었다.

내가 조용히 타일러도 그 릭샤꾼은 처음에 요구한 금액에서 한 푼도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요금을 결정하고 타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요구하는 금액대로 다 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려는 양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모으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바가지 요금을 받아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도저히 평화롭게 상대해서 될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녀석이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고는,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 아파트 안으로 향했다. 그가 뒤에서 뭐라고 떠들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릭샤꾼이었다.

 

이른 아침의 환희에 찬 깨달음은 그렇게 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샤워 꼭지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 얼굴에 와 닿는 순간, 나는 퍼뜩 깨달아야만 했다. 내가 또다시 부처가 아닌 체 행동했음을!

열 명이 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을 가난한 릭샤 왈라에게 돈 몇 푼을 더 주지 않으려고 뒤통수까지 때려가며 싸움을 벌인 것이다. 후회스런 감정에 숙소 밖으로 뛰어 나갔지만, 릭샤꾼은 벌써 떠나버린 뒤였다.

고백할 필요도 없이, 그후로도 나는 매번 졸음에 빠져 내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떤 때는 너무 철저히 부처가 아닌 것처럼 행동한 나머지, 정말로 내 자신이 부처가 아니라는 굳은 확신이 들기도 했다.

지금 그 스승은 육체를 벗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날 아침의 불꽃같던 그 음성은 아직도 내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그대는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갈 것인가!”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에서..

 

고굉언 선생
고굉언 선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