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진달래에 웬 꼬리? 꼬리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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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진달래에 웬 꼬리? 꼬리진달래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2.08.0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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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 풍문에 대한 다수인(多數人)의 위력은 ‘여전하다.’

진달래에 웬 꼬리? 꼬리진달래

꼬리진달래 (진달래과) 학명 Rhododendron micranthum Turcz.

 

험준하기로 소문난 월악산 영봉, 안개 자욱한 한여름에 가파른 비탈을 오릅니다. 꽃이 귀한 환절기라서 어렵긴 하지만 높은 산을 올라야 만이 그나마 멋진 꽃을 만날 수 있기에 험한 산길을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충북 제천까지 멀리서 찾아와 힘들게 산을 오르는 동안 별다른 꽃이 없어 약간 지루한 참이었는데 영봉 정상 오름길에서 푸른 숲 사이로 희끗희끗 꽃 무리가 보였습니다.

숲 바닥이 아닌 작은 잡목 사이로 드러난 꽃, 바로 꼬리진달래였습니다. 서울 근교 야산에서는 만날 수 없는 꼬리진달래를 만나니 가파른 비탈길의 피곤함과 지루함도 금세 잊고 설레는 기쁨에 빠져듭니다.

팍팍하고 밋밋한 우리네 삶도 때로는 뭔가 새로운 분위기 전환이나 소소한 성취의 기쁨이 있다면 그렁저렁 넘어가는 것처럼 힘들고 지루한 산길일지라도 곱고 앙증맞은 야생화가 나타나 반겨주면 즐거운 꽃길이 됩니다.

이 맛에 먼 길, 높은 산의 꽃 탐방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미 만났던 같은 꽃일지라도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거나 찾아내는 것도 꽃 산행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비슷한 종류의 다른 꽃과 확실한 차이점을 몰라 긴가민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뚜렷한 차이점을 알게 된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잎, 꽃 모양이나 줄기, 열매 모양의 차이, 특히 꽃 이름의 어원이나 유래, 전설 등을 새로 알게 되었을 때는 그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꽃 이름 하나에 얽힌 나름의 의미와 사연과 내력을 찾다 보면 어떤 것은 황당하고 견강부회한 것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억지 주장이 굳이 야생화뿐일까요?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아무튼 새로 만나는 야생초에 대하여 뭔가 이름에 얽힌 이야기와 사연을 궁금해하고 찾는 가운데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진달래 어디에 꼬리가? 꼬리진달래

 

꼬리진달래는 전 세계적으로 한반도와 중국의 일부 지역에만 자생합니다. 국내에는 단양, 제천, 충주, 영월, 문경 등지의 백두대간 중심부를 주로 하여 강원, 충북, 경북의 척박한 고산 지대로 자생지가 한정된 탓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꽃입니다.

꼬리진달래는 진달래와 달리 6월 중순 이후 7월까지의 환절기에 꽃이 핍니다. 이른 봄에 피는 진달래처럼 꽃 색깔이 밝고 화사한 분홍빛도 아닙니다. 하얀색의 자잘한 꽃이 한데 엉겨 붙어 있고, 꽃의 크기도 작고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투어 꽃이 피는 봄철이 지나고 꽃이 뜸한 환절기와 장마철에 피는 데다가 인근 야산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꽃이라서 꽃쟁이들이 한여름에 반기고 보고 싶어 하는 꽃 중의 하나입니다. 자잘한 하얀 꽃이 푸른 잎새 가득한 가지 끝에 총상꽃차례로, 많게는 약 20여 송이씩 모여 피기에 한여름 숲길에서 비교적 눈에 쉽게 띄는 꽃입니다.

또한 잎 모양이 진달래와 비슷하지만, 혹한의 겨울에도 높은 산 바위 틈새나 소나무 숲속 그늘에서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활엽수입니다. 흙이 풍부하지 않고 바위가 많은 척박한 지형에서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해 경북, 충청과 강원도 일부의 높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한대성 식물인가 봅니다. 그런데도 북한 지역은 꼬리진달래 자생지가 남한보다 극히 적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기록하고 보전에 극진히 힘쓰는 식물이라고 합니다.

꼬리진달래의 어린 가지에는 잔털이나 비늘조각이 빽빽이 나고 묵은 가지는 갈색을 띠며 털이 많습니다. 꽃이 피기 직전의 송알송알 맺힌 노르스름한 꽃망울 모습은 송홧가루 풍기는 소나무의 수술 꽃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섯 장의 꽃잎에 기다란 10개의 수술 그리고 1개의 암술이 있습니다.

꼬리진달래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진달래를 뜻하는 ‘참꽃나무’에 겨울에도 푸르고 지지 않는 '겨우살이'라는 식물 이름을 합하여 ‘참꽃나무겨우살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꼬리진달래’의 이름 앞에 붙은 ‘꼬리’의 유래에 관한 기록이나 전해 온 이야기가 없어 이를 두고 설왕설래합니다.

이 꽃을 처음 본 대부분 사람은 ‘꼬리진달래’라는 이름에 끌려 ‘꼬리’의 존재를 찾으려 합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와 인터넷 자료 등을 살펴보면 대체로 ‘꼬리’의 근거가 두 가지 설로 압축됩니다. 둘 다 가지 끝에 흰색의 자잘한 꽃이 모여 피는 데서 유래합니다.

하나는 황색의 꽃밥을 단 꽃술들이 꼬리처럼 유난히 길게 나왔기 때문에 '꼬리진달래'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은 20여 개의 자잘한 꽃 여러 송이가 총상꽃차례로 달린 모양이 마치 토끼나 강아지의 꼬리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설은 옛 문헌이나 학명에서 연유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 들어 그저 인터넷을 통해 ‘그럴듯하다.’고 붙인 것인데 반복해서 인용하다 보니 통설로 되어간 듯합니다.

마치 기원전(紀元前) 중국 고전 『전국책(戰國策)』에 나온 ‘삼인성호(三人成虎)’ 고사(古事)처럼 사실이 아닌데도 여러 사람이 인용하고 주장하다 보니 점점 믿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단지 꽃의 수술이 길다고 해서 꽃의 이름에 ‘꼬리’라는 이름을 붙인 전례가 없어 쉬이 수긍이 되지 않거니와 총상꽃차례 또한 꼬리 모양과는 연관성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설에 관하여 일부에서는 ‘꼬리 이름이 붙은 것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라고도 합니다.

‘꼬리진달래의 꽃차례는 꼬리처럼 보이는 미상화서(尾狀花序)나 수상화서(穗狀花序)가 아닌 총상꽃차례로서 그중에서도 거의 반구형(半球形)에 가까운 산형(傘形)으로 생겼기 때문에 꽃차례 모양이 길쭉한 꼬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튼 무더운 한여름 장마철에 꼬리진달래를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한편 그 이름에 얽힌 내역들을 살펴보면서 근래 들어 통설이 되다시피 한 꼬리진달래 이름의 유래가 지나치게 견강부회하거나 삼인성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떠오른 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에 떠도는 풍문이나 가짜뉴스, 정략적 언동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겨졌습니다.

세상사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라서인지 22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나 달 탐사선 ’다누리호‘ 발사에 성공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나 사실 여부를 떠나 풍문에 대한 다수인(多數人)의 위력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 8월 월악산의 꼬리진달래를 회상하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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