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꽃, 통발을 보며.."참 뻔뻔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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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꽃, 통발을 보며.."참 뻔뻔한 세상"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2.09.0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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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꽃 아래에 살생의 덫,한 송이 통발꽃에서 세상사를 읽는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꽃, 통발을 보며.

통발, 통발과(Lentibulariaceae), 부유성(浮游性) 수생(水生) 식충(食蟲)식물,

 

참 뻔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겉과 속이 다른 언행에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오히려 당당해 하고 드러난 범죄성 혐의에도 상식을 뛰어넘는 요설과 궤변으로 부인 또는 정당화하거나 되려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뻔뻔함의 극치를 봅니다.

소위 사회 지도자라고 하는 정치인들의 언행이 이러합니다. 이들은 ‘말은 국가를 앞세운 애국(愛國)이지만 하는 행동은 오직 소속 정당에 대한 애당(愛黨)일 뿐이다.’라는 것이 단지 저만의 생각일까요?


정치 뉴스가 짜증 나고 싫어 신문, TV를 피해 산으로 들로 풀꽃을 찾아 떠납니다. 연일 계속되던 궂은비와 흐린 날씨 속에 찾아간 강원도 고성의 조그만 호수에서 통발꽃을 만났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수련의 꽃과 잎이 호수의 가장자리를 뒤덮는 곳에 노란색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수련의 꽃과 잎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꽃입니다. 만나기 쉽지 않은 희귀식물, 통발의 꽃은 입술 모양의 아래 꽃잎이 크고 넓으며, 꽃잎 가운데에 드리운 실핏줄 같은 붉은 줄무늬가 보입니다.

화사한 꽃에 반한 듯 벌, 등에 같은 물 위를 돌아다니는 날벌레들이 수시로 통발꽃에 내려앉아 휘젓고 가곤 했습니다. 옆에 피어 있는 수련꽃과 비교하면 앙증맞게끔 작지만 곱고 또렷하고 별난 꽃이라는 느낌이 들어 매우 반가웠습니다.

한편, 이 꽃이 다름 아닌 통발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번개처럼 퍼뜩 연상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양두구육(羊頭狗肉), 천사의 미소에 악마의 발톱을 숨긴 무서운 식충식물(食蟲植物)! 왠지 작금의 사회를 혼탁 시키는 일부 정치인들의 작태가 겹쳐 떠올랐습니다.

고운 꽃을 눈앞에 두고 이따위 생각이나 해야 하는 현실이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환한 미소의 가면 속에 숨겨진 살벌한 실체가 비단 사람만이 아닌 자연 세계에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연 속의 통발꽃 한 송이에서 사람 사는 세상사(世上事)를 보는 듯했습니다. 수면 위로 솟아난 꽃자루 끝에는 곱고 화사한 꽃송이가 날벌레를 유인하고, 꽃대 아래 물속에서는 물벼룩이나 장구벌레를 잡아먹기 위한 살생의 덫, 포충망을 펼치고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두 얼굴을 가진 통발의 실체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고운 꽃 아래 물속에 살생(殺生)의 덫을 친 통발의 포충낭

 

통발은 다년생 부유성 수생식물입니다. 약간 통통한 줄기에 어긋나게 달린 잎은 깃처럼 깊게 갈라지고 그물처럼 물속에 펼쳐져 있는데 길이는 3∼6cm입니다. 통발의 잎은 얼핏 봐서는 마치 뿌리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발은 뿌리가 없이 물속을 떠다니는 식물입니다.

실뿌리처럼 보이는, 잎의 갈래 조각 일부는 둥그런 풍선 모양의 벌레잡이 통, 포충낭(捕蟲囊)이 됩니다. 포충낭은 물속에서 벌레를 사로잡는 주머니입니다.

꽃은 8∼9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물 위로 솟은, 높이 10∼20cm 꽃줄기에 4∼7개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달립니다. 꽃대 아래 줄기에는 뿌리처럼 잎이 갈라지고 그 갈래 조각 중 일부가 변형된 포충낭이고 포충낭 뚜껑에는 마치 안테나와 같은 두 개의 미세한 촉수(觸手)가 달려 있습니다.

보통 통발 한 포기에 4,000~5,000개의 포충낭이 있으며 그 속은 진공 상태입니다. 물벼룩이 돌아다니다가 물속에 그물처럼 펼쳐진 포충망의 촉수를 건드리면 뚜껑이 열리며 벌레는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통 안에 갇힙니다.

통 안의 작은 물벌레는 포충낭에서 분비하는 분비물에 용해되고 포충낭은 이를 소화해서 영양분으로 흡수합니다. 밖에 보이는 수면 위의 꽃대에서는 화사한 몸치장으로 벌, 등에 등 날벌레를 꼬드겨 수분(受粉)하고, 그 아래 물속에서는 물벌레를 빨아들일 살생 도구인 통발을 펼쳐 놓고 벌레사냥을 하여 집어삼키는 식충식물, 통발의 실체가 놀랍기만 합니다.

수면을 뒤덮는 수련이나 연꽃 사이에서 샛노란 꽃을 피워 화사하게 미소 짓고 꽃 아래 물속에는 살생의 덫을 펼쳐 놓고 물벌레를 사냥하는 앙큼한 통발, 이처럼 교활한 양두구미(羊頭狗尾),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모습이 자연 속 식물 생태의 기본은 아닙니다.

흙이 아닌 물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을 얻어야만 살아가는 생의 절박함이 이런 생존 수단의 비책(祕策)에 이르게 만든 것입니다. 참으로 자연 속 생명체의 생의 방법이란 무한하고도 불가사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세계에도 생존의 절박함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하고 식물이 생물을 잡아먹게끔 상식 밖의 사태를 초래하나 봅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물론 자연 속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간의 세상살이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르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사례를 종종 보는데 이 또한 생존의 한 방법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일반 세상사와 달리 정치의 세계에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과 뻔뻔함이 두드러짐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도 최근에 이르러 더욱 눈에 띄게 노골화된 이중성에 빠져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아리송하고 모호한 세상사를 한 송이 통발꽃을 통해 읽어보려는 욕심이 천부당만부당한 것만 같습니다. 시 한 편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 화사한 꽃대 아래 살생의 덫이>

우리가 사는 세상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표리부동한 정치 사회가 이르듯이.

한가해 보이는 호수의 오리 한 쌍,
물속 발짓은 부산스럽기 그지없다.
화사히 미소 짓는 호수의 통발꽃,
꽃대 아래에는 살생의 덫 포충망이 기다린다.

동·식물의 자연 세상이 이러할진대
사람 사는 세상은 일러 무삼하리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일 뿐인데.

화사한 꽃 아래에 살생의 덫,
한 송이 통발꽃에서 세상사를 읽는다.


(2022. 9월 강원도 고성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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