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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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9)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9.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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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아리랑의 정의에 대한 연구-2(제13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열 세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정의에 대한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Ⅲ. 전통아리랑

 

3.1 정의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요로서의 아리랑

 

3.2 개설

전통아리랑이란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지만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도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전통적인 아리랑을 뜻한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이전에 발생한 것을 뜻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크게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향토민요적 성격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896년에 헐버트(H. B. Hulbert)가 서양악보로 채집한 아리랑(Ararung)과 앨리스 플레처(Alice Fletcher)가 원통형 음반에 녹음한 아리랑 등이 있다.

또한 1912년에 수집된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 자료나, 1918년의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 나오는 아리랑도 이에 해당한다.

전통 아리랑은 노래가 오래되었다는 측면에서 <구아리랑> 또는 <구조아리랑>이라고도 하며, 가락이 늘어졌다는 측면에서 <긴아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향토민요라는 측면에서는 강원도 정선 일대에서 채집된 3음 음계를 쓰는 <아라리 타령>(1912년) 등과 같은 지역 아리랑을 포함하기도 한다.

전통민요 아리랑은 전래되는 과정 속에서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원래대로 가창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변형이 일어나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다른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1930년대에는 <신(新)아리랑>이라는 형태의 아리랑 곡명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신민요 아리랑에 대한 유행이 약해지면서 현대적인 대중가요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전통아리랑은 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원래의 모습대로 지속되고 있는 아리랑을 뜻한다.

 

3.3 연원 및 변천

전통아리랑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그간 구전되어온 다양한 형태의 가사들에 대한 채집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기록에 등장하게 되었다.

1896년 헐버트(H. B. Hulbert)는 「조선의 성악」, 조선 노래 모음집(The Korea Repository)에서 아리랑의 한 종류를 채보하였다.

 

Ararung ararung arario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오

ararung ölsa paiddiöra아르랑 얼사 배띄어라

Mungyung saichai paktalanmu문경새재 박달나무

hongdokai pangmaingi tanakanda홍도깨 방맹이 다 나간다

 

국문으로는 아르랑, 영문으로는 Ararung으로 표기하였다. 아리랑을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서 주식인 밥에 해당하는 노래라고 하였으며, 뱃노래의 전통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헐버트가 채보한 노래는 이후에 비숍(Isabella Bishop)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1897)과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의 『한반도(韓半島)』(1901) 및 알렌의『조선견문기(Things on Korea)』(1908) 등에 재 수록되었다.

1912년 전국에 있는 아리랑이 대량으로 수집되었다.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 나타난 명칭으로는 아리랑⋅아르랑⋅아라랑⋅아라리 타령 등이 있고, 곡명으로는 <아리랑가>⋅<아리랑 타령>⋅<아리랑 타령(打令)>⋅<어르렁 타령(打令)> 등 다양하다.

 

<어르렁 타령(打令)>

날 바리고 가는 임은

십리를 못 가서 발병 나지 (한국민요집 Ⅵ-364)

 

<사랑가(歌)>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한국민요집 Ⅵ-1125)

 

노랫말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구절이 생략된 형태이지만 노래 제목은 아리랑을 뜻하는 <어르렁 타령>으로 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가>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27년 『조선민요연구』에서 이광수가 표기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1918년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는 금강산 장안사에서 들었던 구슬픈 가락의 아리랑 한 소절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 수록하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어르렁 타령(打令)>과 달리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부분이 없어도 아리랑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래의 곡조가 뱃노래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헐버트의 기록과 같으며, 노랫말 자체에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리랑은 연속성을 갖고 있어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미미하게 변형되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었다.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기존의 곡조와 다르고 노랫말도 변형된 신민요 형태로 나타난다.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날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린 말도 만타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 가네

 

완전한 4절 형식으로는 처음 알려진 것인데, 1절은 <아리랑>이고, 2절은 메리 테일러가 수록한 가사와 같다. 장안사에서 들었던 노래와 유사한 형태가 영화주제가 <아리랑>에서 신민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1929년 헐버트가 채집한 아리랑은 구전되는 과정 속에서 변형을 거치다가 『조선민요집』에서 <경기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나타난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도깨 방망이로 모도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노다가게 <아리랑(1)>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도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게 <경기 아리랑>

 

내용상으로는 동일하지만 이전에 <아리랑(1)>이라는 이름으로 채보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경기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수록한 것이다. 노래의 명칭을 <경기 아리랑>이라고 한 것은 경기 지방에서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 아리랑은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변형의 과정을 겪기도 하였지만 원형적인 형태로도 남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3.4 내용

아리랑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전부터 전해오던 전통 아리랑이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다. 1894년 『매천야록』의 기록을 통해 궁궐에서 연행되는 아리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896년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처(Alice Fletcher)는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학생 3명에게 노래를 부탁하여 원통형 음반에 녹음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녹음기록이다. 같은 해, 헐버트는 아리랑 계통의 한 곡을 서양악보로 채보하였다.

1912년 채집된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는 아리랑이 전국에 걸쳐 불리고 있고, 향토민요로서의 <정선 아리랑>에 대한 가사도 나타난다.

 

아라리 타령을 누가 냈나

장안(長安) 멋아비 내가 냈네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야

아르랑 속에서 노다 가오 <영월군> (『한국민요집 』Ⅵ-638)

 

<아리랑 타령>

아리랑 아라리로구려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로구나

어러렁 어러렁 어러리로구나

어러렁 얼씨구 어러리야

어리랑 고개가 의거리 충단을 몰구서

정든 임 오기를 고대할까 <원주군> (『한국민요집 』Ⅵ-695)

 

강원도 영월군에서 채집된 노랫말에는 아라리 타령이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원주군에서 채집된 가사에는 <아리랑 타령>이라는 곡명도 나타나고, ‘어러리로구나’에서는 ‘어러리’라는 구절도 나타난다.

가사 중에는 물과 관련된 내용들도 있다. 헐버트가 아리랑이 뱃노래의 전통에 기인한다고 한 내용과 관련이 있다.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 띄어라

배 띄어라 (한국민요집Ⅵ–35)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 뜨여라 놀다 가게 (한국민요집Ⅵ–153)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아라랑 철철 배 밀어주게

아라랑 고개다 술막을 짓고

정든 임 오시기를 고대 고대한다 (한국민요집Ⅵ–283)

 

‘배’라든가 ‘배 띄어라’는 표현이 노랫말에 빈번하게 나오기 때문에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형태의 후렴구가 있는 노래는 ‘배를 띄우는’ 내용의 노래와도 관련이 있다. 또한 ‘배’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뜨여라’는 표현이 노랫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1913년에 녹음된 <경셩 아르렁 타령>이 있고, 1916년에는 독일에서 포로가 된 한국인이 부른 것도 있다. 1918년 메리 테일러는 금강산에서 아리랑을 채집하였다.

1929년 『조선민요집』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 지역의 <경기 아리랑>, 북한 서부 지역을 위주로 하는 <서도 아리랑>, 강원도 부근의 <강원 아리랑>, 경남 지역에서 불리는 <영남아리랑> 등이 악보와 함께 소개되었고, 전라도 지역에도 특이한 형태의 아리랑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아리랑은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에 채집되었지만 향토아리랑에 해당한다.

민간에서 전해지던 전통 아리랑은 1920년대에 이르러 곡조와 가사에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26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주제가 <아리랑>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곡명으로서의 <신(新)아리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절정을 이루기도 하지만, 이후에 신민요 아리랑이 퇴색하면서 점진적으로 그 자리를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에게 물려주게 된다.

 

3.5 현황

전통아리랑은 시기적으로 1920년대 이전에 만들어져 불리어온 아리랑을 뜻한다. 헐버트(H. B. Hulbert)가 채보한 <경기 아리랑>(1896년), 앨리스 플레처가 녹음한 아리랑(1896년), 영월군에서 채집된 <아리랑 타령> 등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1912년)에 나오는 전국의 아리랑, <경셩 아르렁 타령>(1913년), 독일에서 포로가 된 한국인이 부른 아리랑(1916년), 메리 테일러가 채보한 아리랑(1918년) 등은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전통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유행하던 전통아리랑이 기록 속에서 존재하는 형태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향토민요적 성격의 아리랑이 있다. 이전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각 지역별로 자생적으로 전승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 일부는 신민요에 편입되었다가 대중가요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3.6 의의와 평가

전통아리랑은 아리랑의 본질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형태이다.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는 다양한 원형적 특질들을 추출함으로써 아리랑의 근원적인 성격을 알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원형적 심성과 공감대를 알아낼 수 있다.

한민족 정신세계의 원형(Archetype)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민족혼(民族魂) 아리랑의 문학 장르적 특성과 텍스트 상황을 밝히는 것은 민족적 자존과 위엄을 찾는 일이며, 그 중심에 전통아리랑이 자리 잡고 있다.

전통아리랑은 역사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문화적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노래라는 차원을 넘어 문학⋅예술⋅공연⋅방송물⋅축제⋅문화콘텐츠 등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있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코리아(Korea)를 상징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아리랑이 시대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도 근본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국내외 중요 행사 등에서도 전통아리랑이 연행되고 있다.

 

Ⅳ. 신아리랑

4.1 정의

전통적인 아리랑이 신민요 형태로 변형되던 시기에 나타난 아리랑의 한 종류

 

4.2 개설

한국 민요사에는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독특한 형태의 노래가 유행하였다. 기존에 불리던 전통적인 민요와 다르다는 측면에서 새롭다고 하여 신민요(新民謠)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대중에게 친숙한 전통 민요를 시대적 상황에 맞게 응용한 새로운 형태의 노래가 등장한 것이다.

신민요의 시작을 알린 것은 1926년에 만들어진 영화주제가 <아리랑>이었는데,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형태의 신민요가 대거 등장하여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본격적인 노래 명칭으로서의 <신아리랑>이 나타난 것은 1930년 6월이다.

「조선민요 아리랑」에는 <신(新)아리랑>과 더불어 <신작(新作) 아리랑>⋅<별조(別調) 아리랑>⋅<아리랑 타령> 등이 수록되었고, 다음 달인 7월에도 가사 내용은 다르지만 <신아리랑>이라는 곡명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바탕으로 유성기 음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신아리랑>을 비롯한 <최신 아리랑>⋅<마즈막 아리랑>⋅<아리랑 눈물고개>⋅<그리운 아리랑>⋅<봄맞이아리랑>⋅<그리운 아리랑> 등 수많은 곡들이 발매되었다. 특히 <신아리랑>은 하나의 노래 곡목이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으며, 각기 다른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신민요가 쇠퇴하면서 아리랑도 대중적 인기가 약해졌고, 점차적으로 현대적인 대중가요라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의 아리랑은 전통아리랑, 신민요 아리랑,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 등의 변용을 거치며 다양한 모습으로 기록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4.3 연원 및 변천

<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 조선민요의 연구(2)」이다.

 

<신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를 못가서 발병나네

 

가사 전체는 4절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 1절에 해당하는 내용이 영화주제가 <아리랑>과 같다. 곡명은 <신아리랑>으로 달라졌지만 과거와의 연속선상에서 변형된 형태이다. 그런데 연원은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일한 내용의 가사들이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어르렁 타령(打令)>

날 바리고 가는 임은

십리를 못 가서 발병 나지 (1912년, '한국민요집' Ⅵ-364)

 

<사랑가(歌)>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1912년, '한국민요집' Ⅵ-1125)

 

1912년 전국적인 민요 조사 자료인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 <어르렁 타령(打令)>이라는 이름으로 아리랑이 채보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1918년, 『호박 목걸이』)

 

1918년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는 금강산 장안사에서 들었던 한 소절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 기록하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1926년, 영화주제가 <아리랑>)

 

1926년에 상영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아리랑을 기억하여 만들게 되었다고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삼천리』, 1937. 1)에서 나운규가 회고하였다. 영화주제가 <아리랑>과 <신아리랑>은 같은 내용이다.

<신아리랑>은 기존에 전래되던 전통아리랑의 곡조와 일부의 가사를 변형하여 만든 것이다. <신아리랑>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편 <신아리랑>이 과거로부터 연속되며 나아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1959년에 <본조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조선의 민요(성경린⋅장사훈)에 등장하였다. 전체가 11절로 되어 있는데, 관련된 부분은 후렴구와 10절이다.

 

<본조(本調) 아리랑>

이씨(李氏)의 사촌(四寸)이 되지 말고

민씨(閔氏)의 팔촌(八寸)이 되려무나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 (1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 (10절)

 

<본조 아리랑>은 영화주제가 <아리랑> 노래나 <신아리랑>과 달리 후렴구가 뒤에 나온다. 가사의 일부도 다른데,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대신에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라고 되어 있다. <본조 아리랑>은 경기 지역에서 불리던 노랫말의 한 종류를 기술한 것이다.

아리랑은 시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 기본은 1920년대 이전의 전통아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4.4 내용

아리랑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기록인 『매천야록』(1894년)에서 존재가 확인된 이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 <신(新)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함으로써 신민요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명이 되었다.

 

<신(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十里)를 못 가서 발병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豐年)이 온다네 풍년(豐年)이 온다네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豐年)이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山川)에 초목(草木)은 젊어가고

인간(人間)에 청춘(青春)은 늙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青天) 하늘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리 말도 만타 (1930년 6월)

 

영화주제가 <아리랑>과 <신(新)아리랑>을 비교하면, 영화주제가 <아리랑>의 4절을 <신(新)아리랑>에서는 2연으로 했고, ‘십리도’가 ‘십리를’로, ‘이 강산 삼천리’가 ‘삼천리 강산’으로 바뀌었으며, 일부의 글자도 한자로 바뀌었다.

한편, 같은 해 7월에 수록된 <신아리랑>은 이전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나중에 나타나는 <신아리랑>이라는 곡명도 모두 이러한 변형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신(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밧흔- 헐어서 길이 되고

집은- 헐어서 정거장(停車場) 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밧일코 집일은 동모(同侔)들아

어듸로 가야만 조흘겨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오소

북간도 벌판이 좃타드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괴나리 보ㅅ짐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30년 7월)

 

1934년 <최신 아리랑>⋅<마즈막 아리랑>⋅<아리랑 눈물고개>⋅<아리랑 눈물고개> 등의 노래가 레코드로 취입되었다. 강남향⋅고복수⋅이난영은 함께 <신아리랑>을 불렀다.

 

<신(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달이 떴네 별도나 떴네

구름 속 항아가 삥긋이 웃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가는 님을 잡지나 마소

갔다가 올 때가 더 반갑다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달빛 경대 꽃닢 연지

님 오실 문전에 불빛도 밝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며

날 버리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 가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34. 8)

 

1930년대 중반에 다양한 종류의 <신아리랑>이 대거 등장하여 유행한 이래,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1959년 성경인⋅장사훈은 <본조 아리랑>⋅<밀양 아리랑>⋅<강원도 아리랑>⋅<진도 아리랑>⋅<긴아리랑>⋅<신아리랑>⋅<별조 아리랑>⋅<아리랑 세상> 등과 같은 명명법을 사용하면서 <신아리랑>을 소개하였다.

 

<신(新) 아리랑>

산천초목(山川草木)은 젊어 가고

인간(人間)의 청춘(靑春)은 늙어 간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성황당(城隍堂) 까마귀 깍깍 짖고

정(情)든 님 병환(病患)은 날로 깊어

무산자(無産者) 누구냐 탄식(歎息) 마라

부귀(富貴)와 빈천(貧賤)은 돌고 돈다

감발을 하고서 주먹을 쥐고

용감(勇敢) 하게도 넘어 간다

밭 잃고 집 잃은 동무들아

어데로 가야만 좋을가 보냐

 

아리랑은 『매천야록』에서 기록된 이래 전통 아리랑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러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노래가 영화주제가 <아리랑>이며, 이를 일부 수정한 것이 <신아리랑>이다.

 

4.5 현황

신민요가 유행하던 시기에 출현한 <신아리랑>은 영화주제가 <아리랑>의 가사를 변형하여 만들었다. 기존의 아리랑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신작(新作) 아리랑>이나 <신아리랑>, <최신 아리랑>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신민요로서의 아리랑이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왕수복은 <신아리랑>⋅<봄맞이 아리랑> 등을 불렀고, 선우일선의 <그리운 아리랑>⋅<즐거운 아리랑>, 장일타홍의 <아리랑의 꿈>, 김선영의 <아리랑 세상>, 백난아의 <아리랑 낭낭>, 김용환의 <꼴망태 아리랑>, 이화자의 <아리랑 삼천리>, 백년설의 <아리랑 만주>, 김봉명의 <아리랑 술집> 같은 노래도 있다.

현재는 신민요 아리랑이나 <신아리랑>이 새롭게 창작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 불리던 노래들은 유성기 음반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하며 존재하고 있다.

 

4.6 의의와 평가

신민요 아리랑은 전통아리랑이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변모하는 전환기에 나타나 가교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전통아리랑은 변형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영화주제가 <아리랑>(1926년)은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이라는 곡명은 바뀌지 않고 있었는데, 1930년 6월에 이르러 <신아리랑>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곡명이 등장하게 되었다. <신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명이 되었고,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유성기 보급의 확대에 따라 많은 가수들이 음반으로 남겼는데, 그 중에는 곡명으로서의 <신아리랑>을 포함하여 다양한 노래들이 있다. 또한 곡명은 <신아리랑>이지만 서로 다른 내용의 노래들이 시차를 두고 존재하였다.

대중의 관심이 약해지면서 신민요 아리랑도 서서히 소멸되어 갔지만 레코드 음반 속에서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더욱이 신민요 형태로 음반에 남겨진 아리랑은 이후에 많은 민요 가창자들이나 대중이 따라 부르게 되었고, 그러한 결과 오늘날에는 신민요 아리랑이 전통아리랑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신민요 아리랑이 유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신아리랑>은 전통아리랑의 원형적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사의 기록이 되었다.

 

Ⅴ. 결론

다양한 아리랑에 대하여 정의하였다.

 

참고문헌

『아리랑 원형연구』(조용호, 학고방, 2011)

『아리랑 연구총서2』(조규익⋅조용호, 학고방, 2014)

『아리랑 연구총서1』(조규익⋅조용호, 학고방, 2010)

「아리랑 연구사」(조용호, 『한국문학과예술』 6, 2010. 9)

「아리랑 연구의 현황과 과제」(조용호, 『어문논집』 43, 중앙어문학회, 2010. 3)

'한국민요집'Ⅰ~Ⅶ(임동권, 집문당, 1961~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제13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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