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설촌 당시부터 모셔, 神力 영험.. 도남동 벡질당(백질당,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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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설촌 당시부터 모셔, 神力 영험.. 도남동 벡질당(백질당,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9.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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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堂神)은 백질할망과 백질하르방으로서 생산, 물고, 호적, 장적 등을 관장한다

도남동 벡질당(백질당,본향당)

 

•위치 ; 제주시 도남동 603번지
•유형 ; 민속신앙(본향당)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도남동_본향당 촛불
도남동_본향당 내부

 

도남동 정부종합청사 뒤 편 개발단지 내 병문천3교를 약간 지나쳐 농로로 들어서면 잠수교 다다르기 전에 냇가에 돌담장이 쳐진 신당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도남동 본향 백질당이다. 북쪽에 출입구가 있다.


당의 위치가 원래는 이곳에서 남서쪽에 있는 못동네 위 당우영이라는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 서씨 하르방이 배가 고픈 와중에 밭을 가는데 부인이 늦게 밥을 가져와서 이유를 물은 즉, 당에 가서 자식하나 점지해 주라고 빌었다고 말하니 홧김에 당에 가서 불을 질렀는데, 그 곳에 있던 청비둘기(하기새)가 날아와 마을로 내려와 앉으니 후회하여 그곳(사회복지회관 앞 동산)에 당을 옮겨 곳에 정성껏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토지구획정리에 이 지역이 저촉되어 1991년 4월 12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당의 신(堂神)은 백질할망과 백질하르방으로서 생산, 물고, 호적, 장적 등을 관장한다고 하며 제물은 메2기이다. 하늘타리에 따르면 송당신의 큰아들인 거멀문곡성의 다섯째아들을 모신다고도 한다.

마을 주민들이 찾아와 주로 가정의 안녕(安寧)을 기원한다. 제일은 수시로 택일(擇日)하여 다닌다.(김창집 글, 하늘타리 글, 김태희 글)


옆에 세워진 조그만 표석에는 〈도남 本鄕堂은 원래 설촌 당시부터 모셔왔으며 神力이 영험하여 동민의 安寧과 재난을 예방 오늘에 이르다 도시계획정리로 부득이 여기로 고펴모시는 바 神主 邊在生이 이십萬원을 쾌척(快擲)하였음은 고마운 일이다. 1991년 4월 12일〉라고 새겨져 있어 옮긴 이유와 날짜, 성금을 낸 사람을 명확히 밝혀 놓았다.


신목(神木)은 담벼락에 붙은 송악으로 추정된다. 당 밖에는 팽나무와 멀구슬나무가 있다. 당 안에는 남동쪽 구석에 블록 2개 높이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알미늄샷시로 조그만 상자 모양에 문을 달아 초나 향을 피울 수 있도록 하였다.

반쯤 타다만 또는 타고 있는 양초가 꽂혀 있는 경우가 많다. 시멘트몰탈로 만든 제단에 궤가 6개 있다. 궤는 자연석으로 덮어 놓았다. 모시는 신위는 벡질할으방과 벡질할망 둘뿐인데 궤가 6개인 것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작성 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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