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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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35)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9.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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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의 기록과 본질에 대한 연구 -2(제16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열 여섯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기록과 본질에 대한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Ⅳ. 아리랑의 특성 분석

지금까지의 아리랑 연구는 뜻 모르는 대상으로서의 후렴구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다. 그렇지만 다양한 기록을 검토해 보면 결코 뜻 모르는 노래가 아니다.

첫째, ‘아리랑’의 뜻은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거나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아리랑’이라는 정확한 표현과 더불어 노랫말의 특성이 나타나는 가장 이른 기록은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매천야록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편년체 역사서. 아리랑의 뜻은 여성[阿里娘]이며, 신성염곡(新聲艶曲)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한 매천 황현(黃玹)의 저서(1894년 기록분)

 

1894년의 기술을 통해, 아리랑(阿里娘)의 뜻은 여성(女性)을 뜻하는 랑(娘)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리랑의 뜻은 여성 또는 여성을 포함하는 다른 의미로서의 아리랑(阿里娘)인 것이다.

또 다른 기록으로 미국인 헐버트는 「조선의 성악」, '조선 노래 모음집(The Korea Repository)'(1896, 49~50쪽)에서 ‘나는 남편을 사랑해요(I love my husband)’라는 뜻의 한자라고 기록하였다.

조선의 성악에서 아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음식중 주식인 밥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후렴구는 뱃놀이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많다고 보았는데, 아리랑은 물과 관련된 노래라는 이야기가 된다.

둘째, '매천야록'에 기록된 타령(打令), 신성염곡(新聲艶曲) 등의 표현을 통해 노래로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에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는 여성의 이름인 아란[阿蘭曲]이라는 형태로도 기록하였는데, 이는 최영년이 거론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중류층 이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슬픈 음조의 노래라는 측면에서 헐버트의 기록과 동일하다. 아리랑은 깊은 감동을 주는 노래로, 이미 조선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

나아가 1912년의 자료에서도 아랑(阿郞), 애아랑가(愛我娘歌)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에서의 아리랑은 젊은 여자를 뜻하며, 랑(郞)이라는 글자와도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에 나타난 자료들도 비슷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1921년, 와다 텐민[和田天民,, '조선의 향기(朝鮮の匂ひ)', 京城:ウツボヤ書籍店, 1921]은 아리랑의 후정화적 성격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 발생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조선 말기에 궁궐에서 한창 유행하다가 이윽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널리 불리어졌다. 노래는 <후정화>에 비유될 정도로 애조를 띤 곡조이다.

셋째, 우령(優伶), 궁중의 곡연음희(曲宴淫戱)등의 표현을 통해 가극으로도 상연되었음을 알 수 있고, <아리랑>은 그러한 가극 속에서 불린 노래이다.

넷째, <정선 아리랑>에서는 충신불사이군의 노래로 이해하고 있다. 아리랑 노랫말에 그러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른 형태로 숨겨져 있다는 뜻이 된다. 하나의 노랫말 속에 여러 개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섯째, 님 웨일즈(Nym Wales)가 김산(본명 장지락)과의 인터뷰를 통해 쓴 아리랑(Song of Ariran)(1941년)에 의하면, <아리랑>이 만들어진 시기는 “몇 백 년 전인 조선시대(Li Dynasty)”이며,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비밀결사의 노래(secret revolutionary version)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참요 성격을 띤 ‘비밀결사’의 노래로 외면에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섯째, '아리랑(Song of Ariran)'(1941년)에 의하면,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의 노래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없는 노래가 원초적 모습에 가깝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구아리랑>에서 <아리랑>으로 재편되었다는 구조상의 개념과도 같다. <구아리랑>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아리랑>으로 변형되었는지 구조적⋅의미적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일곱째, 고정옥은 아리랑 노랫말 속에 실제의 이야기들이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아리랑이 근대 생활의 만화경”이라고 한다. 이는 <정선 아리랑>이나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등에 다양한 형태의 설화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리랑이 갖고 있는 문학 장르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 1912년에 채집된 자료를 통해 아리랑이 전국에 걸쳐 산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최남선, 김소운 등도 특정한 지역별 아리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민요들과 달리 조선의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노래이다. 그러면서 아리랑 고개가 있는 노래와 없는 노래로 구분된다.

이는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변화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비밀결사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그에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불리고 있다. 아리랑에 나타나는 후렴구를 일반화 된 규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아홉 번째, ‘아리랑’은 두 개의 의미를 동시에 표현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유사한 표현이 아이롱(我耳聾)이라든가, 아이롱(啞而聾)⋅아아이롱(我啞而聾)⋅아리롱(啞利聾) 등과 같은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아리랑’의 뜻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노래의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 방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뜻을 표현할 수 있다. 본래적인 뜻과 상징적인 뜻이 있는 중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

열 번째, 아리랑이 특정한 시기의 문학 장르적 성격을 갖는다면 그러한 성격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특성들을 또한 만족시킬 수 있다.

한 예로 국문학사를 통하여 가극에서 신성염곡의 노래가 불리는 문학 장르가 있었는데, 노래와 춤을 이용하여 실제로 있었던 고사(故事)를 연출하고,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극의 특성으로 인하여 지방 사투리와 같은 속어를 많이 사용한다.

신성염곡이라는 의미 속에는 남녀 간의 짙은 사랑의 이야기가 등장하여 음가염곡(淫歌艶曲)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사인 변풍으로 표현한 것과 같으며, 문학 장르적 특성에 기인한다.

열한 번째, <아리랑>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는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아리랑 고개를 넘어 떠나가 버리자 버림받은 여인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십 리를 가기 전에 발병이 나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는 내용이다. 남자가 떠나 버리자 남아있는 여자가 부르는 한(恨)의 노래이다.

황현의 기록에서도 랑(娘)이라는 뜻이 되어야 한의 노래가 되는 개념과도 일치한다. <아리랑>은 조선의 산천과 더불어 살아온 조선인의 심성을 닮은 노래이고, 조선의 산천에 동화되어 한을 표현하는 노래인 것이다. 아리랑이 한의 노래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열두 번째, 채록된 가사들을 분석해 보면, 아리랑 노래의 가장 본질적인 소재는 물[水]이나 배[船]에 특정한 관련이 있다. <구아리랑>에 만경창파 등과 같은 물[水]과 관련된 노랫말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헐버트가 기록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나타나는 노랫말의 내용을 통해 아리랑의 뜻과 성격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의 사실은 <아리랑> 해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고건축 장자문의 비례 등과 같은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연구와 실측을 통해 점차적으로 그 신비한 이야기가 규명되고 있기도 하다.

아리랑은 뜻을 모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아리랑 연구는 기록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였다. '매천야록'의 경우 ‘아리랑’의 뜻에 대한 설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1930년대를 훨씬 지난 시점인 1955년에 와서야 출판된 이유로 수많은 어원설 중의 하나 정도로만 여겨져,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더구나 ‘아리랑’의 뜻이 랑(娘)이 되면 떠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가 되어 노랫말의 내용과 반대가 되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고려해야할 사실은 역사적 기록(記錄)이라는 측면이다.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했던 것이었으나,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기록과 설을 혼동한 잘못된 연구의 소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리랑>의 원형에는 기록에 나타나는 모든 성격들이 포함되어 있게 된다.

 

Ⅴ. 결론 및 향후과제

아리랑은 한민족 집단 정서의 핵심 중에서도 중추신경을 이루고 있는 민족 노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의 뜻은 물론이고 노래가 의미하는 바도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어져 왔다.

2002년에 이르러 아리랑의 기록을 세밀하게 검토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모습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리랑의 뜻은 여성이며, 애조를 띤 신성염곡의 노래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조선 초기에 나온 정치적 방임주의, 가극 형태로 연행되고, 충신불사이군이면서 남녀상열지사, 비밀결사, 생활의 만화경(萬畵鏡),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으며, 한(恨)을 나타내고, 물을 건너는 원초적 모습 등 다양한 특성들을 가진 고전시가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유행가는 아니었다. 아리랑은 여말선초의 다중의시 암호문이었다. 아리랑을 다중의시 형태로 만든 이유는 진정한 의도를 내면에 숨기고 밖으로는 다른 의미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아리랑은 영화 아리랑(1926년)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지만, 노래의 본질이나 원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허구의 콘텐츠일 뿐이었다.

다중의시로서의 아리랑 원형에 나타나는 본질적인 모습을 통해 민족문화콘텐츠로서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훌륭한 작품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제16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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