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순례길 탐방)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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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순례길 탐방)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고현준
  • 승인 2022.10.0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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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대포동 법화사 주춧돌, 마음속에 꼭 잡아 잊지 말아야 할 '스님의 길'

 

 

지난 7월 이후 만 2개월여, 진짜 오랜 만에 절로 가는 길을 다시 걸었다.

무더위가, 태풍이, 또는 여러 일들이 겹치는 사이  2개월이 훌쩍 지나 버렸다.

주말마다 걷기에 익숙해진 몸은 토요일이 되면 늘 꿈틀거린다.

하지만 갈 수 없을 때는 걸을 수 없는 일..

여유로운 시간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며 2개월을 기다린 것이다.

지난 1일..

가을이 무르익어 걷기에 좋을 것 같았지만 고광언 선생과 중문에 있는 약천사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여름이나 다름없이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틀림없이 더운 날이었다. 재미있는 시가 떠올랐다.

 

무더위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 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박인걸·목사 시인)

-더위에 관한 시(뚜러맨하수구에서..)

 

동양에서는 제일 크다는 약천사..

3층 누각괴 2층으로 된 종탑까지 모두가 큼직큼직한 이 절은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사람, 밖에서 쉬는 사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오는 사람..

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절을 돌아 다녔지만 이 절처럼 많은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드디어 절 다운 절을 찾은 것일까..?

3층 누각 대웅전 안 부처님도 거대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약천사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에 따르면 약천사는 서귀포시 대포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이다.

약천사라는 이름은 현재의 약천사가 있는 자리에서 혜인 승려가 본격적인 불사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돽새미’ 흔히 ‘도약샘(道藥泉)’이라고 불리는 약수가 있었다고 한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이 약수를 마시고 기갈을 해소하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에 좋은 약수가 흐르는 샘이 있는 근처에 절을 지었다고 하여 약천사(藥泉寺)란 명칭이 유래됐다.

약천사는 ‘돽새미’라는 약수터 인근의 자연굴에서 1960년경 김평곤 법사가 관음기도를 하다가 현몽한 후 450평 남짓한 절터에 18평의 초가삼간을 지어 약천사라 명명하고 불법을 홍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1981년 인연이 닿은 혜인 승려가 대찰을 짓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1988년부터 불사에 착공했고 1996년 단일 건물로는 동양 최대라고 하는 대적광전 불사를 완공했다.

 

 

 

약천사를 나와 고광언 선생과 “오늘은 리본을 잘 찾아 걷자”는 다짐을 했지만, 불교순례길의 리본은 언제나처럼, 처음 한번 보인 후 올레 8코스를 걷는 동안 다시는 보지 못했다.

결국 처음 안내된 올레8코스 리본을 따라 걷는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 날은 얼마전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한 후 퇴원한 김제국(백년초박물관 대표) 대표와 점심 약속까지 된 날이라 먼 길을 오래 걸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리본까지 안 보이니 막막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교인인 고광언 선생도 “몇 번이나 불교순례길 리본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지적했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불교순례길 절로 가는 길을 걸어보니..이 불교순례길은 사실 제주올레와 함께 또다른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코스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제주올레길은 제주자연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백미를 자랑하는 코스이지만, 절로 가는 길은 스스로의 깨우침을 위한 구도자의 마음을 접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약천사 공원광장  큰 석비에 써 있는 글의 의미를 찾아봤다.

 

아미타불이 어디 있는고?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염도념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아미타불이 어디 있는고?

마음속에 꼭 잡아 잊지 말아라.

생각 생각이 생각 없는 데 이르면

六門(눈/귀/코/혀/몸/뜻)에서 자금광을 놓으리라.

 

이 게송은 하옹스님이 그 누님에게 염불방법을 가르친 게송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이 어디 있는고?(작성자 묘광월)

 

 

 

 

제주올레가 제주도의 속살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의 길이라면, 절로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로 불리워도 좋을 것이다.

아직 다른 종교가 만든 길은 걷지 못했지만.. 불교순례길은 그 이름 이상의 가치가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순례길 걷기도 마찬가지였다.

올레길은 그동안 4번이나 걸었기에 이미 잘 아는 길이고..

올레와는 다른 느낌을 얻고 싶어 절로 가는 길 걷기에 나선 것인데, 다시 올레길에 들어서게 되니 아쉬움만 가득 했다는 얘기다.

새로운 느낌..

그동안은 전혀 몰랐던 제주도의 숨은 구도자의 길..

그리고 조용히 나를 찾아 걷는 발걸음처럼..

한번 들어서면 나오고싶지 않은 그런 길을 꿈꾼다면 사치일까..

불교순례길은 그런 점에서, 누군가 희생을 바치지 않으면 안될 미완의 길로 여전히 남아 있다.

약천사에서 나와 대포동까지 제주올레8코스를 따라 2시간여를 걸어 드디어 대포포구에 도착 했다.

대포동 해안은 언제 가 봐도 탐이 나는 곳이다.

해안에 즐비한 기암괴석은 누가 봐도 신이 빚어놓은 큰 장난감 같다.

가히 돌로 만든 동물의 정원이거나, 산수화를 작게 펼쳐놓은 비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비경을 숨긴 안쪽에 대포항이 있다.

자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나름 큰 포구다.

이 대포항을 몇 번이나 걸었을까..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이곳을 스쳐 지났지만..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주춧돌이 이곳에 숨어 있었다.

더욱이 이번 절로 가는 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이 작은 흔적이 이곳에 오랫동안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무엇이건 그렇다.

눈여겨 관심을 두지 않으면 늘 그렇게 스쳐가게 되는 것이리라.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대포항의 법화사 주춧돌

 

대포마을의 옛 지명은 ‘큰개’로 ‘큰 포구’를 의미한다.

규모면에서 타 포구보다 크다는 뜻도 있지만, 기능적으로 위상이 다른 포구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과거에 중요한 물화와 큰 인물들이 출입했던 큰 포구였던 것이다.

고려의 국찰이었던 법화사를 중건할 때 막새와 주춧돌 등 주요 건축 자재들은 수도 개경에서 제작되어 공수되었고, 대포항에서 하역하여 법화사로 운반되었다.

그 증거가 바로 대포항에서 발견된 주춧돌이다.

해방 후 대포항을 개수하다 해저의 모래 및 돌덩이에 뒤덮여 있던 주춧돌 3개가 발견되었다.

암석의 석질은 제주 현무암과 확연히 달랐고, 법화사의 주춧돌과 동일했다.

3개 중 하나는 주민 고영진 씨가 수습하여 자가에 보관하다 약천사에 기증하였으나, 절의 확장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 가져갔다가 돌려놓은 것이 1990년 포구 준설 공사때 다시 발견되었고, 현재 전시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재가 불분명하다.

대포항 배후지의 인근에는 절터왓, 중산간 지대에는 법화사, 산간지대에는 존자암이 있다.

대포항에서 이들 사찰을 연결하는 ‘중질(스님길)’이 있었다.

대포항에는 존자들이 마셨다는 용천수 ‘존장물’도 있다.

주춧돌 유물과 구전하는 지명 유래로 보아 대포항은 제주도 고대 불교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항구로 추정된다.(김오진)

 

 

 

 

작은 돌 하나가 주는 의미가 이렇게 클 수도 있다니..

대포항에서 만난 주춧돌은 그런 큰 울림이 있었다.

아쉬운 것은 추정이라 그런 것인지..이 주춧돌에 대한 자료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지 않기는 택시도 마찬가지였다.

더운 땡볕에 대포항에 앉아 택시를 부르는데..

이곳으로 올 택시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수십 분을 기다리다 못해 큰 길로 올라가 버스라도 타려고 했다.

그곳에서도 한참을 기다려 택시를 타고 약천사로 가는데..

거의 기본요금 수준이라 택시를 원망할 처지도 못됐다.

그래도 하나의 즐거움은 올레시장 안 식당가에서 먹은 갈치국 맛이었다.

예전에 우리가 먹던 맛 그대로..

오랜 만에 그런 맛을 먹는데..

고등어구이는 또 서비스로 나왔다.

갈치속젓도 김치도 다 맛있었다.

걷기의 피곤을 그 식당의 국물 맛에서 다 풀 수 있었다.

다만, 지나고 보니 먹기에 바빠 사진을 찍어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곳을 안내한 김제국 대표는 “6개월 정도만 잘 요양하면 된다”며 “내년 초 새 박물관 건물을 짓겠다”는 구상을 전했다.

이어 “몸을 보링했으니 앞으로 30년은 걱정없다”며 우리에게도 “꼭 건강검진을 잘 받으라”는 조언을 해줬다.

이날 고광언 선생과 함께 선정의 길이라는 이름의 불교순례길 4구간을 이 지점에서 마치기로 했다.

다음에는 제주시에서 성산쪽  마지막 5구간을 향해 걷기로 했다.

지혜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불교순례길의 마지막 이 구간은 길이는 161km에 이르고 사찰수는 22개가 산재해 있어 멀고 긴 여정이지만..동,서를 오가며 걸을 만한 순례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가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불교인 고광언 선생
불교인 고광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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