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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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42)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10.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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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의 연원에 대한 연구 -1(제20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스무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연원에 대한 연구'이다.(편집자주)

 

 

아리랑 노래의 연원 연구

Studies on Origin of Arirang song

조용호(趙容晧)

 

Ⅰ. 서 론

한국의 민족노래라고 불리는 아리랑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아주 오래된 민요일까, 아니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기록과의 대비를 통해 외면에 나타난 세계를 바라보고 그 속에 담겨있는 실체를 알아볼 수 있을까?

우선 아리랑의 정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아리랑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한 한국의 노래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되어 불리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ARIRANG ARIRANG ARARIYO

ARIRANG GOGAIRUL NAUMAU KANDA

NAR RUL PAURIGO GASINUN NIMUN

SIMNIDO MOTGASAU PALPYONGNANDA

アリラン アリラン アラリヨ

アリラン峠を越えて行く

わしを棄ててゆく主は

十里も行かぬに足が痛まう

 

아리랑은 애조를 띤 아름다움 속에 민족의 선량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서 한국의 노래를 대표한다. 외국어 표기는 영문으로 ARIRANG(아리랑), 일본어로 アリラン(아리랑), 중국어로 阿里郎(아리랑)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아리랑에는 노래 곡명으로서의 아리랑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노래가 불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전국적으로 다양하다. 또한 중국, 일본, 미국, 남미, 중동 등 해외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나아가 곡조가 길고 오래된 것은 구(舊) 아리랑 또는 구조(舊調) 아리랑, 혹은 긴[長調] 아리랑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명칭은 1930년에 나타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신(新) 아리랑에 대응하기 위하여 나중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출현 시기를 기점으로 하면 이전부터 불리어 온 전통(傳統) 아리랑, 1920년대 이후에 새롭게 변형된 신민요(新民謠) 아리랑, 현대적인 모습의 대중가요(大衆歌謠) 아리랑 등으로 분류한다.

아리랑의 종류는 다양하며 각자 개별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불리는 아리랑 노래, 그 노래의 고향 코리아는 아리랑의 나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아리랑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본고에서는 기록에 나타나는 아리랑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그 연원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제어 : 아리랑, 영화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연원

 

Ⅱ. 아리랑의 출현 시기

아리랑이 나타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실제로 발견된 기록을 중심으로 하여 근대에 발생했다는 관점에서 고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영화 아리랑이다.

 

2.1 영화 아리랑

1926년 10월 1일, 경성의 단성사(團成社) 극장에서는 특별한 영화가 상영된다. 그 줄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아리랑 노래가 나오는 것이 특이하다. 다만 영화 필름이나 실제 시나리오가 전하지 않아 내용에 일정한 차이는 있다.

「어느 농촌 마을에는 넓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 천가와 그 땅을 경작해서 먹고 살아가는 가난한 소작인들이 모여살고 있다.

어느 소작인 아들인 청년 영진(永鎭)은 대도시에 살다가 정신이상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와 지내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대지주의 마름인 오기호를 보기만하면 수시로 달려들어 개와 고양이처럼 싸운다.

어느 날 방학을 맞아 친구인 동창 현구가 마을로 돌아오는데, 영진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대신에 영진에게는 여동생 영희가 있는데, 오빠의 미래를 걱정하던 현구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마을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리는 날, 대지주 천가의 고약한 마름인 오기호가 영희를 노리고 기웃거리다가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겁탈하러 달려든다. 때마침 현구가 집에 돌아와 이 광경을 보고는 기호와 격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맹렬한 싸움이 계속되는데도 영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다가 환상을 보고는 갑자기 낫을 들고 후려치며 싸움에 끼어들어 기호를 찌른다.

순간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자 영진은 제정신으로 돌아오지만, 기호는 이미 낫에 찔려 살해되었다. 황급한 호루라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며 신고를 받은 순사들이 달려와 영진을 체포하고 굵은 포승줄로 묶는다.

마을 입구까지 끌려가다가 자신을 따라오며 눈물 흘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저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지만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다. 영진이 다시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리랑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모두 아리랑을 목 놓아 합창한다.」

 

영화 아리랑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날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린 말도 만타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 가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모두 일어서서 합창한다. 극장은 울음바다가 된다.

이와 같이 아리랑의 출현 시기에 대해서는 1926년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 아리랑에 아리랑과 유사한 가사가 나오고 리듬이 당시에 유행하던 흐름과 같기 때문이다. 영화 아리랑은 유행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이 무슨 커다란 노래인 듯이 민족노래라는 등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순한 아리랑은 단순한 신민요 유행가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그 유행가를 연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2.2 밀양 아리랑

밀양 아리랑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통민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 학계의 연구자들은 신민요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기록이나 노래 가사, 곡조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면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지금으로 치면 유행가 한 곡 연구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아 그래도 연구할 가치가 큰 것이 있다면 후렴구는 어디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무슨 뜻일까 정도 아닐까?

 

밀양 아리랑

 

1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2

정든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물고 입만방긋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3

다틀렸네 다틀렸네 다틀렸네

가마타고 시집가긴 다틀렸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4

다틀렸네 다틀렸네 다틀렸네

당나귀타고 장가가긴 다틀렸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그렇다면 밀양 아리랑이 기록에 출현한 1920년대는 어떠한 흐름 속에 있는 것일까?

1918년, 학계를 경악시키며 뒤흔든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沢庄三郎 )의 향가 처용가(處容歌)에 대한 최초 해독 (1918. 4)이 있었다.

그해 가을, 금강산 장안사에서 아리랑을 들은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는 패스워드 암호와 같은 노래라는 기록을 남긴다.

이어서 1920년대는 여러 방면에서 한국 문학이 활짝 꽃피기 시작한 시기이다. 와다 텐민(和田 天民)의 《조선의 향기》 (1921),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 房之進)의 향가 3수 해독 (1923. 9), 이광수의 「민요소고(民謡小考)」(1924),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1925) ,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1926) 등이 출판되고, 영화 아리랑(1926. 10. 1)이 상연 되었으며, 오구라 신페이(小倉 晋平)의 《향가 및 이두 연구(鄕歌及び吏讀の硏究)》 (1929), 김소운이 일본어로 번역한 편저 《조선 민요집(朝鮮 民謡集)》 (1929) 등이 빛을 발하여 가히 조선 국민 문학론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문학자로는 최남선, 이광수, 이은상, 김억, 주요한, 홍사용, 김동환, 김소운 등을 들 수 있다. 당대를 선도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조선 문학에 대한 반성과 발전적 방향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연구와 고민이 있었다.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던 날 《매일신보》에 노래 목록이 있고, 1929년 잡지 《별건곤》, 그리고 1930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 등에 밀양 아리랑에 대한 가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밀양 아리랑은 오래된 노래가 아니고 신민요라는 관련 학계의 주장에 대해서 놀라움과 아쉬움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비슷한 구조의 노래인 진도 아리랑은 또 어떠할까?

 

2.3 진도 아리랑

진도 아리랑이란 전라남도 부속 도서인 진도섬을 중심으로 불리우는 아리랑 노래라는 뜻이다. 출현 시기에 대해서는 1920년대에 처음 만들어진 신민요라는 주장도 있고, 심지어는 1926년 상영된 영화 아리랑의 영향으로 밀양 아리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형태의 구절과 관련이 있다.

 

진도 아리랑

 

1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2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3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리고 갈 길을 왜 왔던고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4

만경창파에 둥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노래 가사 중에 문경새재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은 당골래 설화와 관련된 까닭이라는 전설도 있다.

악곡 구성에 대해서는 남도 지역 토속 민요인 산아지 타령과 밀양 아리랑의 영향을 받은 곡이라는 주장이 대세다.

노래 곡명에 대해서는 원래 남도(南道) 아리랑이라고 불리던 것을 진도 출신의 대금 악사 박종기가 편곡하여 진도(珍島) 아리랑으로 개명하였다고도 잔한다.

그러니까 전라남도 또는 전라도 아리랑이라는 원래 의미와 명칭 대신에 지역을 축소시켜 진도(津島) 아리랑으로 국한하여 개명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취입된 첫 음반이 1928년 오케이판 진도 아리랑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도 아리랑에 대해 품고 있던 오랜 세월의 정통성이나 중량감은 사라지고, 단지 신민요 유행가에 불과할 뿐이라는 당혹스런 현실이 우리 앞에 남게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설령 밀양 아리랑이 변형된 것이 진도 아리랑이라 하더라도 후렴구의 형태와 의미 해석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를 바탕으로 진도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의 연원을 새롭게 추적하고 연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계속)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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