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남한산성의 '가는잎향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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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남한산성의 '가는잎향유'...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2.11.1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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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유종으로 그 자생지가 10여 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 한해살이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남한산성의 가는잎향유.

가는잎향유, 꿀풀과, 영명 Narrow-leaf mint (남한산성에서)

 

가는잎향유, 제가 맨 처음 이 꽃을 만났던 곳은 문경새재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남한산성에서 가는잎향유를 만났습니다. 꽃을 보니 분명히 가는잎향유였습니다. 알려진 이 꽃의 분포지로 봐서는 남한산성에서 자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꽃입니다.

놀라움과 의아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경새재에 다시 갈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일정은 대충 넘기고 맨 처음 만났던 그곳을 부랴부랴 찾아갔습니다. 남한산성의 꽃과 비교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몇 송이 꽃이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산이나 들로 야생초를 찾아다니다 보면 때로는 예상할 수 없는 뜻밖의 꽃을 만나는 수가 간혹 있습니다. 물론 원래 그곳에 자라고 있는데 예전에 미처 보지를 못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못 봤던 새로운 꽃을 만나면 참 기쁩니다. 식물도 종(種)에 따라 제각기 기후나 주변 환경에 따라 자랄 수 있는 곳과 없는 곳, 분포지의 생태적 한계가 있습니다.

야생화 탐방에 경력이 붙다 보면 식물의 분포지까지 파악하게 되고 분포지를 벗어난 식물을 만나면 대단한 발견을 하는 것만큼이나 기쁘고 놀랍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분포지가 남쪽 지방으로 알려진 식물을 중부 이북 지역에서 만나거나 자생지가 매우 제한적인 희귀식물을 알려지지 않은 다른 곳에서 만났을 때입니다.

그러한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있습니다. 그 지역의 미기록종을 발견한 셈입니다. 이때의 기분은 유행가 가사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와 같은 놀람이라 할까? 부정적인 황당함이 아닌 ‘심 봤다’와 같은 기쁨입니다.

남한산성에서 가는잎향유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이게 누구십니까 /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내 눈을 의심해보고/ 보고 또 보아도/딱 봐도 너야, 오 마이 너야/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 딱 그대로입니다,

가는잎향유의 분포지는 매우 한정적인 희귀식물입니다. 충청북도 속리산, 경상북도 조령산 일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입니다. 이 꽃 하나를 보기 위해 수년 전에 서울에서 문경새재까지 자동차를 끌고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숱하게 오갔던 서울 인근 남한산성에서 이 가는잎향유를 작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시기가 늦은 늦가을이라서 잎과 꽃이 말라비틀어지고 색이 바래서 가는잎향유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년을 기다린 끝에 다시 만나 위의 사진을 촬영했으며 비로소 가는잎향유라고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꽃을 누가 옮겨 심은 것인지? 언제,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왔으며, 한 포기에 여러 꽃줄기가 뭉쳐서 나오지 않고 어찌하여 딱 한 줄기만 자라 꽃이 피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에는 한 개체만 보았는데 올해는 꽃줄기는 하나씩이었지만 개체수가 불어나 주변에 네 개체가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행여 많은 꽃쟁이들이 이곳을 알게 되어 함부로 다루어 훼손하면 어쩌나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작품 사진 찍는 분들이 알게 되면 삼각대 놓고 조명기구 들이대며 주변을 분탕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꽃이 있는 곳이 길옆이 아닌 은밀한 장소임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 가슴 조이며 몇 년을 더 지켜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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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겉이나 돌 틈새의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가는잎향유, (문경새재에서)

 

가는잎향유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그 자생지가 10여 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 한해살이풀입니다. 분포지는 충북 속리산과 월악산 그리고 제천, 경북 조령산, 황장산 등입니다. 분포지가 한정된 희귀종으로 꽃이 아름다워 남획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줄기는 곧추서며, 네모지고, 높이 30~60㎝입니다. 잎은 마주나며, 선형(線形)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조금 있습니다. 꽃은 9~10월에 분홍색으로 피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빽빽하게 무리 지어 피며 꽃받침이 자주색입니다.

잎이 실처럼 가늘어서 '가는잎향유‘라 부릅니다. 생육지는 반그늘 혹은 양지의 돌 틈과 풀숲인데 주로 맨땅에서는 자라지 않고 비탈진 바위 위에 흙이 조금 모여있는 곳에서 자랍니다. 따라서 여러 줄기를 잡고 들어 올리면 한 포기가 뗏장처럼 들려지고 바로 바위 면(面)이 나타납니다. 문경새재에서 자라는 가는잎향유도 너른 바위 위 표면이 약간 파여 흙과 낙엽이 조금 쌓인 곳에 붙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종(種)으로 향유와 꽃향유가 있습니다. 이 두 종은 전국의 산이나 들에 흔하게 자라는 한해살이풀입니다. 향유는 풀 전체에서 강한 향기가 난대서 붙여진 이름이며 예로부터 욕실의 향료용으로 이용해 온 식물이기도 합니다.

꽃이삭의 모양이 한쪽으로 치우쳐 꽃이 핍니다. 꽃향유에 비해 꽃 모양은 소박하나 향기는 훨씬 뛰어납니다. 꽃향유 역시 전국에 흔하게 자라는 식물인데 꽃이 향유보다 더 크고 분홍색이 짙어 아름다워 '꽃향유'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잎이 넓은 타원형이라서 가는잎향유와 쉽게 구분이 됩니다.

분포지로 알려지지도 않은, 뜻밖의 곳에서 외롭게 자라 하나의 꽃줄기만을 올려 꽃을 피우는 남한산성의 가는잎향유를 보고 난 며칠 후 바로 문경새재에 가게 되어 참 잘 됐다 싶었습니다. 문경새재에 도착하는 날, 수년 전 처음 대면했던 그 장소에 가서 다시 만나니 옛 친구를 본 듯 반갑고 기뻤습니다.

널따란 바위 비탈에 자라고 있는 가는잎향유는 이미 절정기를 지나 시드는 중이었지만 한 포기에 많은 꽃줄기가 뭉쳐 자라서 무척이나 소담스럽고 풍성해 보였습니다. 바짝 마른 바위 비탈면에 군데군데 산발적으로 여러 꽃줄기가 무더기로 자라나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가물었는지 모두가 약간 마른 듯이 시들어가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바위 표면에 붙어 사는 식물들은 대체로 땅이 비옥한 곳에서는 다른 식물들의 세(勢)에 밀려 자라지 못하는, 경쟁력이 약한 식물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식물이 회피하는 척박하고 빈약한 빈 곳에 터를 잡고 자랍니다.

이들 식물은 비옥한 땅에서는 다른 식물에 밀려나, 어려운 여건과 환경의 바위 표면에 붙어 끈질긴 생을 이어가는, 알고 보면 애처로운 식물입니다. 가는잎향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남한산성의 가는잎향유, 기후도 환경도 적합하지는 않은 곳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계속 자랄 수 있을 것인지 염려도 됩니다. 부디 질기고 강한 생명력으로 계속해서 꽃 피워 번성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또 1년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2022.10월 남한산성과 문경새재의 가는잎향유)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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